K-기록의 DNA

별다기 (별 걸 다 기록한다!): 기록에 미친 나라

by 박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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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는 '조선왕조실록'의 책수와 글자수다. 후자는 "청와대 비서실 일지"라고 할 수 있는 '승정원일기'의 책수와 글자수다. 책수는 그렇다 하더라도 글자수까지 카운트한 사람, "대에~ 단하다!" 요즘 유행어로 "돌은 자"다. 미쳤다.


조선은 기록에 미친 나라다. "별다기" (별 걸 다 기록한다)의 나라다.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승지(청와대 비서관에 해당)와 사관이 따라다니면서 기록한다. 승지는 '승정원일기'에, 사관은 '왕조실록'에 기록한다. 파파라치가 따로 없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왕의 합궁 절차가 자세히 나온다. 얼핏 "별다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왕과 왕비의 합궁은 국가 행사다. 종묘사직과 왕실 번창을 위한 국가 대례다. 관상감 (기상청장에 해당)과 제조상궁 (상궁 서열 1위)이 길일(갑골문 '길'은 위는 남자 소중이, 아래는 여자 소중이 형상) 택한다. 일단, 왕비의 생리가 끝난 지 5일째라 못 박고 있다. 1일과 15일, 그믐은 피한다. 초하루와 그믐은 달이 안 보이고, 보름은 달의 에너지가 꺾이는 시점이다. , 천둥, 번개 치는 날 빼고, 호랑이와 뱀이 들어가는 날 빼고, 일식, 월식 빼고, 제삿날 빼고, 왕이 전날 밤 후궁과 방사한 날 빼고... 차 떼고, 포 떼면 한 달에 한번 행사 치르기도 힘들다.


천재일우로 길일이 잡혔다 해도, 합궁 자체가 왕과 왕비에겐 스트레스다. 합궁의 총지휘자는 제조상궁이다. 나이 50세 이상의 상궁 8명이 합궁방을 에워싼다. 4 면과 4 모서리에서 "인간 CCTV"로 실시간 체크한다. 사각지대가 없다. 조선판 "벽치기" (국회에서 열리는 비공개회의를 엿듣고자 기자들과 비서진들이 회의실 벽에 귀를 갖다 대는 행위)가 벌어진다. 정사 소리와 정사 시간을 실시간 체크한다. 왕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시간이 길어지면, 수석 상궁이 한마디 한다. "전하, 옥체를 보존하옵소서! 그만하시기를 청하옵니다!"


합궁 시 왕비의 금기사항까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불을 꺼야 하고, 눈을 떠면 안 된다. 왕의 얼굴을 본다거나, 몸매 감상은 포기해야 한다. 신음소리도 내면 안된다. 쾌락으로 몸을 떨어서도 안된다. 일단, 왕의 왼쪽에 누워 방사를 시작한다. 허용되는 체위는 '정상위'다. 왕은 위에, 왕비는 아래다. 갑골문 '길'과 같은 체위다. '카우걸 체위'와 '후방위'는 엄격히 금지된다. 가끔씩 옆으로 나란히 누워서 하는 '측위'가 허용된다. 이건 사랑 행위가 아니라, "성노동"이다. 그것도 "노가다판 중노동"이다. 왕자를 생산하기 위한 "성스러운" 성노동이다.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노동이다.


당연하게도, 왕은 "소외된" 노동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후궁과의 방사를 통해서다. 상궁들의 "겐세이" (간섭)가 일단 없다. '카우걸 체위'와 '후방위'를 마음껏 즐긴다. 후궁의 신음소리는 쾌락의 강도를 더 높인다. 당연하게도, 회임 (임신) 가능성은 왕비보다는, 후궁 쪽이 훨씬 높다. 왕비와의 합궁에서 상궁들의 겐세이를 불허한 유일한 왕은 '연산군'이라 전해진다. 연산군은 진정 "소외된" 노동을 거부한 조선의 유일무이한 왕인 셈이다.



합궁의 실시간 기록은 '서사 상궁'이라는 직책을 가진 "전문직 여성 공무원"이 행한다. 서사 상궁이 기록한 "원자료" 합궁 기록은 '승정원일기'로 "정사 보고서" 형태로 넘겨진다. 이중 "야마" (신문 1면의 제목)가 될 만한 "정사 정보"는 '왕조실록'에 기록된다. 첩보가 정보로 격상되는 셈이다. 서사 상궁이 기록한 첩보는 언문 (훈민정음)으로 작성된다. 여담이지만, 궁서체는 서사 상궁이 창안했다. 조선 최고의 궁서체 달인은 조선말, 신정왕후 (조 대비)의 대필을 맡았던 '이담월'로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별 걸 다 기록하지만, 어차피 100% 다 기록할 순 없고, 사관의 역사 인식에 따라 취사선택이 불가피하다. '인조실록'에 보면,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인조에게 보낸 나체여인 조각상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모문룡 도독이 물건 40가지를 보냈다. 그중 '춘의' (봄의 뜻)라는 것이 있는데 상아로 나체여인을 조각한 것이다. 승지 '권진기'가 무례함을 아뢰고, 돌려보냈다."


사관은 나체여인 조각상만 기록했지만, 사실 "야마"는 성인용품이다. 사관은 이 성인용품을 실록에 옮기기가 너무 민망해서 뺐던 것 같다. 그 성인용품은 상아로 남녀를 조각해 작동시키면 성교하는 모양새다. '박양한'이라는 학자가 야담집 "매옹한록'에 그날의 일을 상세히 기록한다. "명나라 말 음란한 풍속이 나날이 심해져서 남녀가 성교하는 조각이 유행했다. 이를 '춘의'라 한다. 중국의 사신이 예물로 바쳤다. 작동시키면 남녀가 성교하는 모양새였다." 그 와중에 그 성인용품을 감상하느라 동공이 풀린 신하도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삭탈관직당했다는 기록도 있다. "인조는 당장 부숴버리라 명을 내렸다. 이때 조정의 신하 가운데 이 성교 조각상을 완상하는 자가 있었다. 그자의 벼슬길을 막았다."



조선은 별 걸 다 기록했지만, 유교 사상에 반하는 서적들을 살처분하기도 했다. 조선판 분서갱유(焚書坑儒: 진시황은 역사책, 유학책을 불사르고, 유학자들을 생매장)다. 태종은 고려 시대의 풍수지리서와 음양서를 대대적으로 수거하여 불태웠다. 고려 왕 씨 세력의 반란을 억제시키고, 조선 건국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다. 명나라를 의식, 고려가 중국 대륙까지 진출했다는 지리 정보를 말살했다. 말하자면, "불온서적"을 미리 단속했다.


조선의 유교 이데올로기 지배층은 고조선이란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다. 고조선이 중국을 배척했다는 이유에서다. 고조선 관련 서적들은 모조리 압수했다. 압수대상은 개인이나 가문에서 보관해 온 고조선 관련, 삼국 관련 서적이다.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 유교에 반하는, 중화에 반하는 역사 자료다. 태종부터 세조, 예종, 성종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소중한 역사 자료는 그렇게 자취를 감춘다. '세조실록'에 의하면,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같은 사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했다." 작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해 논란이 됐던 한단고기(桓檀古記)에서 언급된 문헌이 "불온서적"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언문 분서갱유"라는 것도 있다. '연산군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연산군을 비난한 익명의 투서가 언문으로 작성됐기 때문이다. 투서 범인을 밝혀내지 못해 "꼭지가 돈" 연산군은 "앞으로 누구도 한글을 쓸 수 없다"는 명을 내렸다. 한글로 토를 단 한문 서적도 불태우라는 명까지 내렸다. 연좌제는 덤이다. "언문을 아는 자를 신고하도록 하고, 알고도 고발하지 않는 경우에는 이웃사람까지 함께 벌주라.”



우리나라가 "기록에 미친 나라"이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의 반 타의 반" 기록이 많이 소실됐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일본서기'에 언급은 되지만, 남아있지는 않은 우리의 역사책은 있다.


고구려는 영양왕 때 '신집'을 편찬했다.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침략군을 도륙한 후였다. 어려움을 겪고 난 후, 재정비하자는 뜻으로 기획한 역사 편찬 국가 프로젝트다. 그동안 전해오던 '유기' 100권을 5권으로 축약해서 새로 펴낸 게 '신집'이다. 그러나 당나라의 침략이라는 "타의"로 수도 평양의 왕실 서고가 불탔다. 역사 사료들도 함께 재가 됐다. 고구려의 역사가 지워졌다.

백제는 근초고왕 때 '서기'를 편찬했다.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전쟁을 마무리한 후, 재정비를 위한 국가 프로젝트다. '서기'는 '백제기' '백제본기' '백제신찬'이라는 백제 3 서로 구성된다. 일본 최초의 역사서 '일본서기'라는 책제목은 백제의 '서기'에 일본을 앞 붙였다. 일본이라는 나라이름도 백제의 별칭이었다 한다. 대륙 백제가 자리 잡았던 중국 동해안의 백제인들이 한반도 내 고향 백제를 해가 뜨는 본국이라 하여 '일본'(日本)이라 불렀다 한다.


신라는 진흥왕 때 '국사'를 편찬했다. 역시 영토확장 전쟁을 마친 후, 재정비를 위한 국가 프로젝트다.



'고려왕조실록'도 있었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조선총독부 시절에는 "조선판" 갱서 분유로 압수된 서적 20만 권이 "총독부판" 분서갱유로 사라졌다. 그중 사료적 가치가 높은 서적은 일본 왕궁 서고로 옮겨졌다.



우리 고대사는 '일본서기'가 훨씬 풍성하다. '일본서기'는 "백제서기"이기도 하다. 백제인의 시각에서 썼기 때문이다. '일본서기'가 발간된 720년은 백제가 망하고, 왕족과 귀족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백제인들이 대거 디아스포라(해외 이주)해서 정착하는 시기다. '야마토 왜'가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으로 재출발한다. 재출발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역사편찬이라는 국가 프로젝트가 필요했다.

백제의 사관 출신, 지식인들이 대거 동원됐다. 망국의 한을 역사편찬에 쏟아냈다. 분노, 원한, 시기심, 질투, 열등감, 자괴심이 뒤섞인 '르 쌍띠망'으로 쓰인 역사책이 '일본서기'다. 그러다 보니 화려한 필빨로나마 신라를 유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일종의 정신승리다. '야마토 왜'가 아니라, 백제인의 나라 '일본'이 한반도를 유린하는 정신승리다. '임나일본부설'이 여기서 나왔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우리의 기록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기록에 진심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K-기록의 DNA가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문자와 영상으로 기록하는 걸 "차~암" 좋아한다.



브런치 (카카오가 운영하는 글쓰기 플랫폼)의 작가 수가 7만 명이고, 4,300 명이 7,600 권 출판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유튜버 공화국"이라 부른다. 인구대비 세계 최대 유튜버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2025년 현재 50만 개를 넘어섰다고 한다.


참 대단한 K-기록의 DN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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