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삼십 오 분

by 단소니

정규 교육과정 12년은 일생에서 가장 길고 지루한 시간이다.

6년에 3년 그리고 또 3년, 가장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며 백일몽처럼 성년을 기다렸다.

6교시가 끝나 해가 발치까지 기울어지면 학교는 텅 빈 채 깡통 같은 소음을 빚었다. 책걸상을 뒤로 밀며 먼지 나게 청소하던 친구들은 건성으로 마대를 휘두르다가 가방을 멘 채 운동장을 떠난다. 타닥타닥 멀어지는 그림자와 발소리. 내일 점심 방송 스크립트는 더 고칠 곳이 없다. 시보기 밑에 들어가 코 앞에 있는 기계에 종이를 대고 밑줄을 좍좍 긋다 보면 낮아진 해는 기울어져 새푸른 저녁을 밀고 올라온다.

4층에 불이 켜져 있는 걸 확인한 선생님은 아직도 할 일이 남았느냐 묻는다. 할 일은 애초에 없다. 집으로 가는 길을 유예하느라 종이가 구멍 날 때까지 글자를 고치고 밑줄을 칠 뿐. 학교는 늘 지루했지만 변수와 통제로부터 안전했기에 심심하니 다닐 만했다. 쓰는 게 좋아 생각 없이 지원한 방송부는 집에 갈 시간을 늦춰주었고, 갑자기 친구들이 생겼으며 누구랑도 무리 없이 어울렸지만 매 순간 조금씩 겉돌았다. 지루함이 만드는 깨지지 않는 평화가 있다는 것을, 아주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있기에 뒤바꾸려 노력하지 않는다. 교실 밖 삭막한 나뭇가지를 한참 보며, 가끔은 2층에서 힘차게 뜀박질해 구름을 걷어차는 상상을 하며.


술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알코올 한 방울 넘겨본 적은 없지만 말술을 들이부은 듯 떠올리면 진한 포르말린 냄새가 목 끝에서 느껴지고 삼킨 숨에 구역이 난다. 간접 음주의 경험은 그간 술이 쌓은 지난한 이미지, 현관에 12열 종대로 세운 초록색 병들과 야밤을 찢는 고함과 숨죽여 우는 새벽의 울음소리까지 섞어 마시는 술처럼 혼곤히 섞여 진창을 빚었다. 마셔본 적 없어도 익히 마신 것처럼 술 냄새를 맡으면 진저리가 쳐지곤 한다.

명멸하는 모니터 아래 시간은 한시 오 분, 막막한 밤은 깊어 가고 문 너머마다 잠든 가족과 잠들지 못한 내가 같은 지붕 아래 있다. 교외 글짓기대회는 학교를 합법적으로 빠질 좋은 기회다. 교내 대회는 수업 시간을 제칠 수 있으나 교외는 학교 자체를 제칠 수 있어 흐리멍덩하게 있다 대회로 차출되면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할 것, 이를테면 이틀 안에 데미안을 읽어야 한다든가 중학생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논리적이고 문학적인 질의응답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든가 그러니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잠 못 들고 모니터나 본다.


어른들의 알량한 칭찬이 좋아 적어 내리던 궁서체의 또박또박 글자는 머리가 굵어질수록 도피처가 되었다. 하교 후 돌아온 집이 전쟁 맞은 것처럼 김치 통이 깨져 사방은 김치로 칠갑이 되었다거나 문을 쾅 닫고 들어간 호적으로 연결된 입주자와 발에 차이는 술병들을 발이 다치지 않게 조심히 밀며 방으로 들어오면,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 숨을 얕게 쉬며 불안함에 떨던 밤, 할 수 있는 것은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뿌리는 머리가 커질수록 불안에 떨게 해 사방에 묻고 싶었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나요. 답 없는 회신에 웅크리고 쓴 서툰 글자만이 나를 끌어안는다. 잡히는 대로 썼더니 글짓기가 취미인 사람이 되었고, 지붕 아래 공간이 싫어 책을 잡았더니 독서가 가장 쉬웠다. 생존을 위해 모든 것에 무던했다면 참 좋을 텐데.


새벽 세 시, 모니터를 끄고 켠 티비 속에 심야 영화 파이트 클럽이 나온다. 언니는 내일 맞은 곳의 머리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한다. 파이트 클럽의 브래드 피트는 형형색색의 멍과 상처를 달고 끝없이 주먹질했다.


세 시 반, 학교에 가려면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등교를 좋아하는 보기 드문 학생이라, 아침이 밝아오길 염원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는다. 내 방이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혼자 잠드는 밤을 꿈꿔 보지만 복작한 가족의 숨이 시끄럽다.

눈을 감고 열을 거꾸로 센다. 열, 아홉, 셋, 둘.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찬 공기를 숨으로 덥힐 때. 어디선가 자그마한 웃음소리가 새벽을 열고 들어온다.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웃음소리가 15층 바닥에서 천장까지 울렸다가 사라지고를 파도처럼 반복한다. 오후 세 시 놀이터에서 자지러지게 웃는 어린아이들의 소리 같기도, 소곤소곤 뒷자리에서 속삭이는 소년들의 음성 같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 시간에 깨어있는 어린아이는 없다. 왼쪽 팔에서 올라오는 소름에 웅크리고 손에 손톱자국이 날 때까지 주먹을 쥔다. 이불 속으로 더 파고든다. 열넷, 첫 환청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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