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 병원 데스크

by 단소니

눈물 없이 부르튼 눈이 따가웠다.

이쯤 되면 울어야 하는데, 슬픈 영화와 드라마를 보아도 얼어버린 눈물샘은 굳어 배출하지 못한 물기에 눈꼬리가 아릴 뿐이다. 스스로도 의아한 것은 증상이 기세 좋게 발현하기 전까지는 우는 애를 엄하게 다그쳐도 좀처럼 그치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많은 푼수였기에 뻑뻑한 눈가는 낯설기 그지없었다. 두어 번 입원의 시도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누군가는 사춘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토닥이며 상담을 시도했고 꿈 치료를 하겠다고 덤벼서 안 꾸던 꿈에 시달리던 것이 며칠 전이다. 꿈을 기록만 하면 된다고 하기에 음성 언어로 지난한 상처를 헤집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내심 기뻐 신난 상태로 잠들었던 것이 패착이었다. 정신병이 있는 사람은 꿈 꾸지 않는다는 카더라 인터넷 정보는 사실이었는지 골똘히 떠올려봐도 지난밤 남아있는 꿈이 없는 아침을 맞이했다.


“그래서 꿈을 기록해 왔나요?”

“네, 선생님 근데요,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상한 악몽을 꿔요, 생전 꾸지 않던. 입을 더 열면 또 약이 올라가거나 대학병원 프리패스권을 탈까 무서웠기 때문에. 상담에 잡혀갈 때면 본론을 삼키는 것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 인대가 다쳐 근육 치료를 받고, 위가 아파 내시경을 찍듯 조울도 약 먹고 일어나면 씻은 듯이 나았길, 환청 없는 깨끗한 세상에서 새벽을 맞이하길 바랐으나. 어쭙잖은 대화로 상처를 들쑤시고 다시 헤집고 잘난 프로이트의 순리에 따라 본능과 무의식을 가지고 노는 과정이, 특히나 이런 부실한 꿈의 대화는 없던 악몽을 일깨울 뿐이다. 이 치료는 분 당 또 얼마나 하려나. 아무렇게나 기록한 파편화된 꿈의 조각을 들려주며, 주로 새벽 3시에 친구가 괴물로 끝없이 도주하는, 그런 연상호 감독식 영화 같은 개소리를 떠듬떠듬 내뱉다 문을 닫고 나오면 집안의 기둥은 살짝이 흔들렸고, 꿈꿔야하는 밤이 두려웠다. 하얀 머리 성성한 나이가 아마도 지긋한 프로이트 신봉자가 분명한 선생님은 갸웃갸웃하며 꿈을 기록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억지로 쥐어짠 그리고 오면서 창작한 꿈에 아마도 다음 주면 이 치료는 중단될 것이고 또 병원 대기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흐리멍덩한 와중에도 인지하고 있던 것, 그럼에도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기숙사 방학 때 짐을 싸 집으로 향하듯 프로급의 손길로 병원 짐을 싸며 들리지 않는 한숨을 내뱉는다. 집안 기둥을 뽑지 않으려고 버틴 유년 시절이 부메랑이 되어 가세가 기운 집안에 지진을 일으킨 꼴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크로스백이 너무 낡아 모양새가 안 난다. 몇 번 더 가야 할지도 모르니 값이 싼 에코백을 사자.


“언니 거식증이죠.”

정강이를 치면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눈이 큰 언니, 기진 언니는 거꾸로 누운 내 위에서 말없이 나를 내려다본다. 새로 온 고양이를 탐색하는 눈으로, 대답 없이 한참을 보더니 서랍 위를 열어 희고 매끄러운 떡 하나를 건넨다. 인사도 없이 떡을 주는 병실 메이트는 처음이라.


“먹어, 아침에 뜯었어.”

“이거 언니가 먹기로 약속한 거 같은데. 왜 날 줄까.”


큰 소리로 웃어넘기며 떡을 수거해가는 언니의 손목이 너무 앙상해서, 홀쭉한 뺨이 너무 파리해서, 병실 천장을 울리던 맑은 웃음소리가 상냥한 참새 소리 같아서.

꺼지지 않는 낮은 조도 아래 침대 한 켠에 숨어 언니와 술빵 하나를 나누어 먹었다. 목이 멘 언니는 절반도 먹지 못했고, 병실은 대낮처럼 밝은 채 밤이 깊어 갔다.


재입원, 최종의 최종, 최종의 최종으로 기대할 입원하는 날은 으레껏 추웠다. 기침을 많이 하는 사람이 밤이 되면 밭은기침을 더 하듯, 밝을 때 잠잠하던 그림자는 사위가 어두워지면 불쑥 귓가로 찾아와 속살거렸다. 문밖에 서성이는 가족들의 발소리에, 모두를 불면에 빠트릴 수는. 78병동 데스크 간호사 선생님들은 날카로운 물건이 없는지 잘 숨긴 담배를 익숙하게 찾아 서랍 밖으로 빼내고 잘 개킨 환자복을 내어준다. 줄줄 외울 수 있는 안내 사항과 저녁 식사 시간과 투약 시간을 확인받은 후 침대에 몸을 던진다. 어떻게 할 수 없이 깊은 겨울이었고 나이와 인적 사항을 적는 차트에서 잠시 망설인 것이 그날 기억의 마지막이다.

스무 살인지 스물한 살인지 혹은 열셋인지 마흔다섯인지 깨져버린 자아는 나이를 망설이게 하거나 속수무책으로 정체된 길에 버려지게 했다. 그럼에도? 낯선 신호등이 깜빡이듯 생존의 이유로 이따금 노란색 경고음을 빚어냈다.


“흐림 우리 저거 먹자.”

“언니 먹지도 않는 거 사서 저 먹이지 마세요.”

“네가 너무 안 먹잖아.”


기진 언니는 툭하면 내 손을 붙잡고 병동 매점으로 향했다. 그림의 떡일 뿐인 진열된 음식이 뭐가 맛있어 보이는지 포장된 빵이며 컵 떡볶이 따위를 양손 가득 안고 먹이를 주는 주인처럼 쳐다보곤 했다. 안 먹겠다고 실랑이하는 옷깃을 붙잡고 거식증은 난데 네가 영역을 넘본다고 화내는 언니와 한 입씩 먹기로 협의하고. 밀가루맛이 나는 보름달빵을 초승달만큼 베어먹어 치우던, 한 낮의 매점.

앙상한 언니의 손에 붙들려 매점으로 향하면 그날은 외출하는 날이고, 성가시게 침대를 맴돌며 캐러멜을 던지면 아프다고 대꾸하거나 대거리를 하면 그날은 사람과 말하는 날이었다. 사람이 오래 굶으면 정신도 이상해지는구나, 그러니까 이 먹을 거 넘치는 세상에 못 먹는 병은 왜 걸려서. 언니는 아마도, 나를. 홀쭉한 뺨을 하고도 내가 데스크 한 켠에 시들어가는 식물처럼 말라버릴까 봐. 그렇게도 귀찮게 했는지.


언니가 퇴원하는 날은 삼 일 내 내리던 겨울비가 멎은 드물게 맑은 날이다. 12시 이전 퇴원 절차도 끝나고 보호자도 도착해 복도 끝에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데, 언니는 영 갈 생각이 없이 끈끈하게 내 손을 붙잡고 있다. 주머니를 뒤지고 또 뒤져 사탕과 초콜릿을 꺼내 손에 쥐여주고 돌아선다. 언니의 등에 손을 댄다. 갓 찐 찐빵 같은 온기가 느껴지는. 조금은 살이 오른 작은 등.


“네가 너무 안 먹어서 먹다 보니 내가 퇴원해, 이게 무슨 짓이야.”

“좋은 짓이지, 얼른 가, 언니.”


다시는 이곳에 오지마. 이곳과 나를 깨끗이 잊고 살아. 걸음이 빨라지는 언니의 발소리를 들으며 돌아선다.

살이 조금 오른 언니는 참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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