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소독약 냄새는 늘 밥맛을 떨어트렸다.
슴슴한 간에 맛이랄게 딱히 없는 밥은 때마다 나오는 시간 알람 같을 뿐 늘 반도 비우지 못한 채 복도 트레이에 밀어 넣었다. 희부연 한 낮의 백열등과 복도를 하염없이 걷는 환자복 그림자들, 짓눌린 누룬내 같은 오래된 병의 씁쓸한 냄새는 어디를 가도 정물처럼 있다. 열리지 않는 창문은 무수한 구멍만 가득하고 구멍에 코를 대고 바깥 공기며 흩날리는 눈발을 구경했다, 그러니 시간이 작은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는.
질문 의도가 조금씩 다른 문항에 거침없이 마킹한다. 수학에 재능 없음을 일찍 깨달아 숫자에 쏟을 애정을 다른 과목으로 이관한다는 결정을 혼자 내렸는데, 쉽게 말해 키워준 엄마가 수학 선생님인데 수포자가 돼 수학 시험지에 핑퐁 핑퐁 제멋대로 마킹하고 책상에 고개를 묻었던 학창 시절보다 더 빠른 속도로 MMPI 항목을 채워나간다. 입원하고 처음 며칠은 병원과 내가 서로 탐색하는 시간을 가진다. 몇 달 전 있었던 사람이 아직도 있어서 어색한 인사를 한다던가, 입원했는데 그들은 설레는 퇴원 일자를 받아두고 퇴원 후 하고 싶은 리스트를 작별 인사처럼 나누고 바톤 터치를 한다든가.
PTSD와 우울증으로 가볍고 지루하게 시작한 병명은 입퇴원을 반복할수록 뚜렷한 양상과 형태를 띠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문항까지 검정으로 칠하다가 문득. 도사리고 있던 조울은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지 혹은 내가 먹이를 주어 쑥쑥 자라난 괴물이었는지 궁금하다. 이틀 전 입원한 학영은 강박증이 심한데 마지막 문항까지 까만 칠을 하는 것조차 강박이 걸려서 남들보다 3배는 시간이 더 걸리는 듯했다. 이걸 도와줄 수도 없고, 참. 학영의 끙끙거리는 소리가 회색 그림자처럼 발밑을 뒹군다.
진단이라는 것을 받기 위해, 낙인을 땅땅 찍고 안전한 케어를 받기 위해 600여 개의 문항에 까만 칠을 하고 시일에 걸쳐 까만 그림 카드를 보며 앵무새처럼 대답하면, 안전에 가까운 약물과 모든 시간을 느리게 하거나 멍하게 하는 그런 약물과.
“흐림씨 화장실에서 담배 피웠어요?”
담배를 열심히 숨겨 들어온 것까진 어떻게든 성공했으나 기민한 간호사의 눈과 귀와 코를 숨기기에는 역부족이었나보다. 스무 살에서 스물한 살이면 길 가던 강아지도 담배를 피울 수 있으나, 무슨 심리였는지 탐정 놀이를 하고 싶었는지 부득이 숨기고 흡연실도 마다하고 방 화장실에서 환기팬을 돌렸다. 한숨을 내쉰 간호사는 10분여를 잔소리하고 담배를 빼앗은 후 데스크로 돌아갔다. 은빛 안경에 깐깐한 인상, 입퇴원을 반복하며 두어 번은 본 것 같았으나 단 한 번도 웃는 얼굴을 보여준 적 없이, 생각해 보니 그녀가 찡그리고 엄하게 호통치는 모습에 팔 할은 내가 원인이었으니 할 말이 없다.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환기팬은 제 할 짓을 잃고 원망하듯 쩐내를 안으로 뿜는다. 숨겼던 꽁초를 집어 밖으로.
좁다란 정원에 영시가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볕을 쬐고 있다. 더 다가가 보니 무어라 무어라 작은 목소리로 끝없이 욕하고 있어 잠시 앉아 경청. 담배는 영시에게 배웠다. 영시는 18살 칼같은 앞머리에 그 당시 보기 드문 시크릿 투톤의 염색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키가 작고 마른 것에 반해 말투는 캡사이신처럼 매웠다. 미성년자가 학기 중에 일반 병동에 어슬렁거리는 건 드문 일이라, 호기심에 지켜보니 일과가 욕으로 시작해서 담배나 피고 다시 욕으로 끝나는 일과가 대부분이었다.
“영시야 근데 너 담배는 누가 사다 주셔.”
“엄마가요. 떨어질 때 되면 말보로 레드로. 담배는 말보로 레드죠.”
영시는 여자를 좋아해서 병원에 집어 넣어졌는데 여자를 좋아하는 건 정신병원 감이고 미성년자에게 말보로 레드를 사다주는 엄마의 심정은 무얼까, 이 공간에서 전제를 고민한다는 건 참 의미 없는 짓이라 그냥 같이 담배나 피고 멀리서 뛰어오는 보호사를 피해 온 정원을 뛰어다녔다. 영시는 거의 매 순간 목이 쉬어있었는데 상스러운 욕을 많이 해서인지 간지템이 분명한 말보로 레드인지 인과가 분명하지 않았다. 영시야 넌 그래도 여자라도 좋구나, 나는 사람이 싫은데. 이런 말을 할 때면 영시는 할머니 같다고 질색하며 짝사랑하는 언니의 부드러운 팔과 목소리 같은 흔한 사랑의 말을 늘어놓았다.
까무룩 한 정신과 정체된 시간, 세상에 나왔다가 들어갔다를 반복하다 까만 상자에 나를 가두면 친구들은 군대 간 애인을 기다리듯 편지하거나 네이버 예약 창이 열리길 기다리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냥 손쉽게 면담을 신청하고 나를 면회실로 불러냈다. 민폐 끼치는 게 싫어 모든 세상을 만류하는 나를, 열아홉과 스물 한창 세상을 흡수하던 친구들은 종종 그렇게 나를 떠올리며 대학병원을 찾아왔나 보다. 거의 한 학급의 친구들이 면회를 온 것으로 숫자를 세가던 중, 온 병동에 79병동에 맛이 좀 많이 간 애가 있는데 사실 걔가 연예인이더라, 하루에 두 번도 면회를 한다는 알 수 없는 헛소리가 퍼졌고, 소문을 신경 쓸 일 없는 친구들은, 클럽에 처음 갔다는 친구가 면회실 한 귀퉁이에서 내 얼굴을 붙잡고 화장 연습을 했다.
담배를 처음 들킨 날, 키워준 엄마는 망설이지도 않고 무슨 담배를 피우냐고 물었고 기겁하는 아빠를 다그쳐 담배 셔틀을 시켰다. 주로 학교에서 담배 피우는 애들을 잡으러 다녔던 그녀는 무슨 마음으로, 그리고 딸내미의 손에 담배를 쥐여주는 아빠의 마음은.
일 년 반 정도의 추적 끝에 조울에 더하여 경계선 인격, 보더라인까지 땅땅 확정받던 날. 나는 버려지길 원했으나 세상은 아무것도 나를 포기하지 않아서, 왜 삶을 놓지 않았을까, 가만히 떠올려봐도 답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귀한 휴가 때 병원으로 뛰어와 내 앞에서 한참 울던 군복 입은 수웅의 정수리를 가만 보다가. 저물어가는 정신에 혼란한 소리가 더해도, 끝끝내 삶을 놓지 않는 건, 어쩌면. 소식 없다가 나타나 가만히 나를 안던 너의 작은 품이, 유행처럼 번진 정신이상자 흐림과의 면회가. 어쩌면 그것은 내 그림자까지 끌어안은 사랑. 사랑이었다. 고작 어린아이 하나 살리겠다고 가시만 주던 세상이 사랑의 포대기를 던져 나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래서, 죽지 않기로, 살기로 다짐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다짐을 비웃 듯 여러 번 고꾸라지고 역경을 들이마셨으니 저 순간은 그렇게 강렬하게 생각했다.
흐린 기억 속에 무언가 새침한 난동을 부렸는지, 집에 가겠다고 네발로 기었다면 다행이고. 코끼리도 진정시킨다는 진정제를 얌전히 맞고 데스크 옆 독방에 누워 천장을 말가니 보면. 단단히 내 팔을 붙잡던 그녀의 배가 둥그스름하게 부풀어 있었던 것 같은데. 은빛 안경 너머로 찌든 피곤과 단호함이 스치고 숙여진 등을 두 번인가 도닥이고 나간 그녀가.
“수속 끝났으니 보호자님이랑 가시면 돼요.”
환자복을 받아들고 침대에서 네임택을 수거하던 그녀가 등을 돌려 잠시 눈을 맞춘다.
봄이 오려나 공기가 훅하니 따뜻하고 완치일 리 없지만 시간이 흘러 제정신이었고 대학 병원 입원은 3개월이 맥시멈이었으니. 등을 돌린 그녀의 배는 완연히 둥글어 완만한 동산 같았다.
“흐림씨, 그만 좀 들어와요. 꽃가루 조심하고.”
네애하고 길게 늘인 대답을 뒤로하고 병실을 나선다. 둥글게 솟은 동산 안의 아가는 꽤 험한 태교를 하고 있었으려나, 단단한 팔과 새초롬하게 스친 눈웃음이 은빛 안경에 반사돼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