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환혼(tvN, 2022)>
거울이 말을 걸어왔다.
"그래 나는 허상이야. 너의 모습을 비추는 허상.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어.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을 볼 수밖에. 그러니까 네가 너라고 알고 있는 너의 모습은 거울에 비친 허상이야. 다른 사람 눈에 비치는 너의 모습도 마찬가지지. 자기들이 보고 싶은 대로, 자기들 마음대로 만들어 낸 허상."
‘거울’과의 대화는 드라마 <환혼(tvn, 2022)> 7회 속 장면으로 말을 걸어온 ‘거울’은 사람의 마음을 홀려 그 영혼을 취하는 요물이다. 이 요물은 장욱(이재욱 분)에게 네가 원하는 모습, 사람들이 네게 바라는 모양의 ‘가장 완벽한’ 너를 줄 테니 네가 가진 수기를 달라고 유혹한다.
장욱은 술력을 쓰는 술사들이 나라를 지키는 대호국에서 장욱은 4대 술사 집안 중 하나인 ‘장 씨’ 집안에 장남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왔다. 그의 아버지 장강은 그가 태어난 뒤 종적을 감췄지만, 당대 가장 뛰어난 술사였기에 장욱은 가문과 나라의 기대 속에 태어났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순간, 장강(주상욱 분)은 아들의 모든 기문을 막아 술력을 쓸 수 없는 몸이 되게 했다. 가장 강한 술사 집안의 자제이나 가장 약한 존재. 그런 그를 두고 장강의 아들이 아니라는 소문이 퍼졌고, 그 소문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장욱으로 하여금 자신이 장 씨 집안의 장남이자 천무관을 물려받을 후계자임을 증명하게 만들었다.
앞서 ‘거울’은 장욱의 여종 무덕(정소민 분)을 그 안에 가뒀는데, 무덕을 떠올리던 세자(신승호 분)와 술사 율(황민현 분)에게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세자에게는 평소 그를 도발하게 할 정도로 당찬 모습으로, 율에게는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아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거울이 말한 ‘가장 완벽한 나’는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모습이었다. 장욱이 후계자의 면모를 증명하려 했다는 건, 그에게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 때문이다. 모두가 원하는 모습, ‘거울은’ 그걸 준다고 했다. 그가 그토록 증명하기 위해 힘써온 일이 한 번에 해결될 수 있는 기회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것이 기회가 아닌 유혹임을 장욱은 바로 간파한다. “근데 내가 비쳐야 허깨비든 허상이든 만들어지는 거 아니야? 뭔가를 비추고 있지 않으면 거울은 아무것도 아닌 거잖아.” 거울의 용도는 어떠한 대상을 비춰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비출 대상이 중요하다. 장욱은 이제까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장 씨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후계자가 되어 천무관 관주의 자리를 이어받아야 한다고 들었고, 그게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송림 수장인 박진으로부터 그가 아버지의 아들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오랜 시간 지켜온 비밀을 밝히게 된 배경은 따로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장강의 아들’이 되고자 노력해 온 일이 결국 허상을 쫓는 일이었음을 인정하고야 만다. 그리고 허상이 깨진 장욱은 박진에게 이렇게 말하기에 이른다. “이젠 전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열심히 저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드라마 <환혼>은 사람의 영혼을 바꾸는 환혼술로 엉켜버린 운명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심인물인 장욱은 환혼술로 인해 뒤바뀐 몸에 의해 태어났고, 무덕은 술사들을 죽이던 살수, 낙수의 혼을 담고 있는 환혼인이다. 무덕이란 여종 안에 들어간 낙수가 오랜 시간 술사들을 죽여온 데에는 술사들에 의해 죽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였지만, 이 또한 허상이었다. 사실은 환혼인으로 세력을 키우려 한 단주가 거짓된 증오로 낙수를 살수로 만든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거울’을 깨트린 건 허상이 깨짐을 상징함과 동시에 성장으로 나아가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를 계기로 이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들여다 보기에 이른다.
20부작인 <환혼>은 이제 막 전환점을 돌았다. 낙수를 살수로 키웠던 단주가 환혼술로 세력을 키워 송림뿐만 아니라 왕실 곳곳에도 환혼인을 심으면서 대호국을 집어삼키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겉모습과 다른 속 사람을 가진 환혼인들. 어쩌면 내가 보고 있는 이 사람은 그저 허상일지 모른다.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들이 싸우는 싸움을 술력 대결이 아닌 내가 누군지 아는 것의 싸움이 될 것 같다. 장욱과 무덕은 허상을 깨트렸고, 스스로를 들여다 봄으로 타인에 의해 그려진 삶의 목표가 아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는다.
자신을 들여다봄으로 무덕을 향한 마음이 사제간의 정 그 이상의 연모임을 알게 된다. 더욱이 사람들은 환혼인이라고 하면 모두 사람의 기를 빨아먹고 폭주하는 괴물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사람들은 낙수를 잔인한 술사로만 알고 있지만, 장욱은 낙수가 의리와 도리를 알며 괴물이 될 바엔 죽음을 택할 강직함이 있음도 안다. 자신을 들여다보니 일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있게 했다. 장욱은 무덕과의 관계를 통해 환혼술은 그 자체로 사술이 아니라, 환혼술을 쓰는 이의 마음에 따라 악용될 때 사술이라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장욱은 환혼인인 무덕을 세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실력을 쌓으며 이 싸움에 참여하게 된다. 술력이든 실력이든 내가 누구인지 알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가치를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거라면, 이들의 전쟁에서 중요한 건 다름 아닌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힘이 아닐까?
정말로 요즘 세상은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을 요구한다. 직업부터 투 잡, 쓰리 잡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고, 부캐라는 말도 등장했다. 사회에 요구대로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직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I형 인간인 나는 사회화된 E형 인간이 되어 살고 있다. 착한 딸,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한 노력도 성실히 한다. ‘능력 있는, 착한, 좋은’ 기타 등등이 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나란 사람에 대한 생각 없이 무언가만 되려는 몸짓은 무엇이 될 수 있게는 하나 그것들이 비출 ‘나’를 잃어버리게 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건 허상을 쫓는 일에 진하지 않다. 애쓰는 열심에도 점점 허무해지고, 공허해지는 이유일까.
무협 판타지 물이라 호불호가 갈리기 했지만, 스토리 구조도 좋고 떡밥과 복선으로 점철된 대사 속에 빠르게 진행되는 흐름에 지루할 틈이 없다. 게다가 눈치 빠른 주인공들로 인해 딱히 고구마가 없는데 가장 속시원한건 자기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바로바로 각성함에 있다! 게다가 적절한, 환혼만의 개그감이 서브들의 매력까지 높이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초반 표절 시비가 있었고, 2막으로 넘어가며 여주가 무덕에서 낙수로 교체될 상황에 감정선이 흔들리지 않을까 염려되는 건 있지만,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환혼>은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 딱 좋다. 그런 드라마에서 갑자기 알을 깨고 나와 자신의 세계를 만난다는 데미안의 한 대목을 떠올리다니, 또 과했나 싶은데 한번 이 생각이 드니 자꾸만 내게 어디로 가는 중인지, 나는 무엇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라고 말을 건다. 나를 잃어버리고서 수많은 모습으로 비친다 하더라도 그건 모두 허상이고, 허깨비로 살 순 없어 그런건지도.
이야기는 마침내 낙수, 무덕 그리고 욱이가 자기의 자리를 찾아가며 끝날 것이다. 계속되는 위기와 시험 속에 더 강해지는 악의 세력들이 만드는 거센 흔들림을 속에도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놓지 않을테니말이다. 나도 끝까지 보며 그 시선을 따라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