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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ug 09. 2022

길게 나눠야 할,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

드라마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tvN, 2022)>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드라마 <너는 나의 봄>을 보면서, 드라마 <킬미 힐미>를 보면서... 아니 꼭 정신과 의사가 나온 드라마가 아니라도 나는 자주 살아야 한다고, 그래서 내일을 보자고 주인공들을 통해서 말했다.


사실 글의 도입부는 요즘 읽고 있는 천선란 작가의 신작 [노랜드(한겨레출판사, 2022)]에 쓴 작가의 말을 따라한 것이다. [노랜드]는 단편을 엮인 소설집이지만 공통된 주인공을 하나 들자면 '지구'가 아닐까 싶다. 황폐해진 지구,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 지구는 변화무쌍하다. 그런 지구에서 사는 인간의 이야기는 살아가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살아남는 자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어떤 인물은 마지못해 사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청탁받아 따로따로 쓴 이야기인데 모아 놓고 보니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작가는 "이유 없이 살아가자는 말을 너무 길게 한 것 같다"라고 말한 듯하다. 하지만 살아가자는 말이 과연 짧게 할 수 있는 말일까?

 


새로 시작한 드라마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tvN, 2022)>의 1, 2회를 보면서 이 드라마도 살아가자는 말을 길게 할 거란 느낌이 왔다(드라마가 시즌제로 제작 되었다고하니, 어떻게 보든(?) 긴 이야기가 맞겠다).

드라마는 유 의원(김민재 분)이 침을 놓지 못하게 된 사건의 배후를 찾아 진실을 밝혀나가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가 침을 놓지 못하는 의원이 되어 죽고자 했던 마음을 돌이키고 비록 침은 놓지 못하지만 의원 됨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를 세우는 이야기의 시작에서 이미, 살아가자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스스로를 꺽지 않는다고 한다. 매서운 태풍에 가지가 꺾여 나간 모습은 본 적이 있으나 스스로 자신의 가지를 꺾은 나무는 본 기억도, 들은 기억도 없다. 하지만 사람은 스스로를 꺾기도 하고 타인의 마음을 꺾기도 한다. 살아야 할 이유가 많다지만 꺾인 이들에겐 그만 살아야 할 이유도 많다. 그러니 살아가자는 말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마음에 생긴 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사람에게 어쩌면 살아가자는 말을 듣는 것, 그 자체로 또 다른 버거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더욱이 이 말은 길게 나누어야 하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마음속에 맺힌 말은 출구를 찾아 나오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니까.

유 의원은 자신을 구한 여인(김향기 분)이 스스로 제 가지를 꺾으려 하는 것을 보고 그녀가 자신을 살릴 때 했던 말을 다시금 해준다. 살아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지 않냐고. 그렇게 두 사람은 긴 이야기의 물꼬를 트면서 살아서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유 의원은 줄을 타지 못하게 되자 술만 찾고 삶의 소망을 잃은 패짱을 치료하며, 꼭 침이 아니어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있고, 의원은 침을 잘 놓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여인은 병자호란 때 살아 돌아와 환양녀 소리를 듣고 살아야 했던 치매에 걸린 할망이 아들과 화해하는 것을 보며 느꼈다. 언제까지나 남들의 시선에만 갇혀 살 수 없다는 것을.


이후 두 사람은 함께 동행한다. 의원인 유세풍 곁에서 매서운 관찰자의 눈을 가진 여인, 은우 아씨는 이들을 찾아오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 보고 듣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느낀 것을 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긴 이야기, 길고 긴 이야기는 살아서 기다려야 하는 그 시간까지 이들이 스스로의 가지를 꺾지 않도록 인도해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살자고 말하는 이 긴 이야기에 나는 또 매료될 수 밖에 없다. 살아 있어서 보고, 듣고, 느껴야 할게 아주 많은 건 유 의원이나 은우 아씨만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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