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소원을 말하면(KBS, 라이프타임 2022)>
시한부 환자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자원봉사자들을 ‘우리 호스피스 병원’에서는 ‘팀 지니’라고 불렀다. 맞다, 알라딘의 소원을 들어주었던 그 지니! 지니처럼 소원을 들어주는데 그 일을 팀을 이뤄하니 ‘팀 지니’라고 불렸다. 소원을 말하면, 정말로 이뤄질 것 같은 믿음직한 이름이다. ‘팀 지니’는 드라마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KBS, 라이프타임 2022)>에 나오는 가상의 설정이지만, 실제로 말기 암 환자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재단이 네덜란드에 있다. 드라마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은 그 재단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어린 시절, 소원을 말해보라던 소녀시대의 노래 가사가 내 안에 여전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소원은 내게 있어 말하기보다 비는 형태에 가까웠다. 생일 초를 불 때나,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고, 이렇게 빈 소원들은 말하면 이뤄지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에 의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무언가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은 소원이나 꿈이나 비슷했지만, 소원은 홀로 비는 마음이어서 그런지 간절함의 농도가 달랐다. 남들 눈엔 별거 아닌, 유치한 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내겐 의미가 큰, 사적인 성질을 가졌고 자연히 내적으로 더 친밀한 바람이었다. 그래서 선뜻 꺼내보기엔 무시당할 것 같아 주저하게 되고, 말한다고 해서 이뤄질 수 있다는 확신도 없으니 그저 속으로 담아두기만 했던, 그런 소원을 말했다는 건 누군가 내 마음을 들여다 봐줬기 때문일 것이다.
윤 씨 할아버지의 먼저 간 아내는 동해 바다가 보이는 곳에 그 묘지가 자리해 있다. 그곳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것이 윤 씨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었으나, 겨울은 나실 거라던 의사들의 예견가 달리 할아버지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팀 지니’는 ‘팀 지니’를 만들었던 윤 씨 할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8월에 크리스마스를 만든다. 눈을 뿌리고 겨울 옷을 챙겨 입고, 함께 동해로 향한다. 어렵사리 도착한 부인 묘 옆에서 동해바다를 보며 눈을 감은 할아버지의 표정은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유족들은 병원에 계셨다면 편안히 돌아가셨을 텐데, 아버지를 무리해서 동해까지 데려갔다며 ‘팀 지니’ 에게 항의를 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지만, 유족이었던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3개월 전부터는 고의로 병원의 연락을 피하며 방문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히 아버지가 그 힘든 여정을 감행한 이유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의 고가의 시계가 강태식 반장(성동일 분) 손에 있는 게 못 마땅할 뿐. 내 눈엔 자식들의 화는 매정한 저들의 불효를 감추기 위해 부풀린 거짓된 몸짓처람 보일 뿐이었다. 만약 자녀들이 아버지의 마지막 표정을 보았다면 지금처럼 원성을 높이진 못했을 테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간절한 마음에 대해선 돌아가신 후에도 관심이 없었다.
윤 씨 할아버지의 마지막 표정이 평온했던 건 바라던 동해에 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동해까지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환자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려는 ‘팀 지니’의 활동을 유난스럽게 보는 시선이 병원에 있다는 걸, ‘팀 지니’를 만든 윤 씨 할아버지가 모를 리 없다. 더욱이 자신의 체력이 그 먼 곳까지 버텨줄지도 의문이었다. 게다가 효율성이나 경제성 같은걸 따지기 좋아하는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팀 지니’의 수고는 낭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꺼져가는 삶이라며 가족조차 외면한 마음이지 않은가.
하지만 숨이 붙어 있는 한 생명은 소중하다. ‘팀 지니’는 차고 넘치는 안 되는 이유와 불가능한 상황이 아닌 윤 씨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소원에 시선을 두었다. 이들의 마음은 윤 씨 할아버지의 인생을 마지막까지 존중받았던 삶으로 만들었고, 삶의 끝자락까지 쌓였던 간절함의 무게를 가볍게 비워주어 마음 편히 떠날 수 있게 했다. 소원을 말하면, 이뤄줄 거란 믿음을 준 이들의 진심과 진짜로 이뤄진 소원 앞에 할아버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차고 넘치는 행복과 감사 속에 평온히 생을 마감하셨을 거라, 평온한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조령수 작가는 이 작품을 준비하며 ‘마지막 순간에 함께하는 마음’을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드라마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놓인 이들 곁에 있는 ‘팀 지니’를 통해 그 마음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놓인 사람은 병원에만 있지 않다. 더 이상 살아갈 소망이 보이지 않아 방황하고 있는 윤겨레(지창욱 분)도 어떤 의미에선 마지막에 놓은 사람이다. 그래서 ‘팀 지니’ 사람들은 병원 울타리를 넘어서, 겨레에게도 마음을 쓴다.
살고 싶어서 보육원으로 스스로 도망쳤던 겨레는 소년원과 교도소 생활을 거치며 자신의 삶에 희망 같은 건 없었다는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다 끝내려고 동해로 가던 중 자신을 쫓는 준석(남태훈 분)을 피하려다 윤 씨 할아버지를 이송하던 구급차랑 부딪히는 사고를 낸다. 이 사고로 구급차를 운전하던 강태식(성동일 분)이 다리를 다쳤고, 결제해지라며 강제로 운전석에 앉힌 강태식에 의해 그리고 준석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겨레는 구급차를 운전한다. 그리고 이 교통사고로 사회봉사명령을 받게 되면서 겨레는 우연인 듯, 인연으로 우리 호스피스 병원에서 사회봉사를 하게 된다. 스쳐 지나갈 사이가 인연으로 이어 진건 강태식이 윤겨레가 병원에서 사회봉사를 할 수 있도록 법원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겨레는 아니라고 했고, 그만하자는 심정으로 동해를 찾아 바다로 걸어 들어갔지만, 숱한 죽음을 곁에서 지킨 태식의 눈엔 보였다.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발걸음에 묻은 머뭇거림이, 한 순간이라도 좋으니 행복하고 싶은 그의 바람이, 깊이 감춰진 진짜 소원이 말이다. 태식으로 인해 엉겁결에 ‘팀 지니’의 마지막 소원 프로젝트까지 함께 하게 된 겨레는 ‘팀 지니’의 따뜻한 모습을 보며 마음이 꼭 비 맞은 강아지처럼 낑낑거리고 있음을 느낀다. ‘팀 지니’는 그의 안엔 꼭꼭 숨겨둔, 홀로 간직하고 있는 진짜 소원을 들을 수 있을까? 소원을 말하는 순간, 이뤄지는 때가 올까?
1화 서두에 ‘팀 지니’가 윤 씨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는 장면에 이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소원일 수도 있겠네요”
죽음은 끝이고, 그 자체로 더 이상 어떠한 힘도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윤 씨 할아버지의 자식들이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을 앞둔 이의 소원 같은데 관심이 없는 것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윤 씨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겨레를 ‘팀 지니’로 이끌며 그에게 새로운 시작을 열어주었고, 2화에 등장하는 편 씨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겨레의 마음을 연 것은 물론 깨지고 상처 입어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않게 된 한 가정을 지지고 볶으며 부대끼며 사는 가족이 되도록 삶의 물꼬를 열어준다. 마지막 순간에도 이렇듯 분명한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극의 시작인지라 바라본다. 겨레 못지않게 얼어붙은 인생을 사는 끝자락에 놓은 준경(원지안 분)과 석준(남태훈 분)의 삶으로도 이 생명력이 흘러가길 말이다.
‘팀 지니’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소원은 우리가 되지 않고서야 혼자선 이룰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팀 지니’에게 소원을 말할 때, 이뤄지는 순간에 마음이 일렁거렸나 보다. 각박해져 가는 시대 속에 이런 이야기는 다른 결의 판타지 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마지막 순간에 애정과 존경을 담는 이 드라마는 보는 순간 자연히 마음을 주게 된다. 이렇게 빼앗긴 마음은 작가의 바람처럼, 나 또한 작품 속 수많은 죽음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지길 바라게 됐다.
과연 내 안에 이타심은 안녕한가? 소원을 말할 때, 이뤄지는 순간 하나가 될 우리를 상상해보며, 무더웠던 여름의 맹렬한 기세가 꺾여가는 이 계절에 마음 따뜻하게 하는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을 권해본다.
*본 리뷰는 콘텐츠 제휴로 업체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주관적 평가를 포함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