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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l 29. 2023

어르고 달래줄 안다면, 당신은 ‘어른’입니다.

O'PENing Tving <썸머 러브머신 블루스(2023)>

신인작가의 작품으로 구성되는 O'PENing 2023 중 하나인 <썸머 러브머신 블루스>는 인생에 갈피를 잡지 못 한채 나아가고 있는 세 사람이 서로를 만나 방향을 찾는 성장서사를 담고 있다.


성장서사에서 나이 차가 나는 인물들이 등장하면,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많은 쪽의 인물이 길잡이가 되는 상황을 쉽게 상상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위안을 얻는 건 스무 살 드림(아린 분)이라기 보단 사회통념상 어른이라 불리는 인물, 이수(고수 분)다.


이수는 명문대에 입학했으나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졸업도 놓치고, 취직한 무역회사는 1년 만에 문을 닫는다. 계속된 실패에 그는 집에만 있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문 밖을 나설 일이 생기면 밤이라 해도 선글라스를 낀다. 선글라스를  껴서 질끈 감은 눈을 가린다. 어두운 밤, 눈까지 감고 걷는 그의 걸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아슬아슬하게 위험한 상태라는 걸 그는 알지만, 그를 보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선글라스가 감은 눈을 가려주니까. 그렇게 그도 괜찮은 척 살았다.


드림이 명문대 진학을 준비하는 이유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명문대를 나오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믿는 모습이 두 눈 감고 살아가는 이수와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아직 어린 드림에게 명문대 진학은 그가 아는, 미래를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우연한 기회에 이수는 드림의 수학 선생님이 된다. 그는 드림이 가까이에서 접하게 된 어른이었지만 하필 어른이라는 사람이 눈을 질끈 감고 사는 사람이었다. 병으로 돌아가신 엄마, 사업실패 후 도망간 아빠. 드림의 주변에 어른다운 어른이 없어 보인다.


어릴 때, 엄마 화장품을 훔쳐 바르고 헐렁한 구두에 발을 넣어보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시절 내 눈에 어른은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모든 다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 반짝반짝 빛나는 멋짐이 가득했다. 하지만 막상 어른의 세계를 살아보니, 하고 싶은 일 몇 가지를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배나 많이 해야 하더라. 이수도 그런 것 같다. 비록 눈을 감고, 감은 눈마저 선글라스로 가리는 게 어딘가 모자라 보이지만, 망한 무역회사에서 퇴직금조로 준 물건을 성실히 팔고 있고, 불안한 걸음임을 알면서도 가야 할 곳을 향해 갈 때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두렵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그냥 가는 존재가 어른이라 생각하는 이수는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른의 세계는 생각만큼 멋지지 않다. 그 사실을 인정할 때 어른으로 한 걸음 올라서는 것 같다. 드림 곁에 제대로 된 어른이 없는 것 같다고 했는데 저마다 사정을 안고 그럼에도 어른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내 안에 어른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음을 느꼈다. 이수는 물론 비록 세상 사는 법은 미숙한 드림이지만, 이수와 도망간 아빠를 이해하며 그들을 반기는 드림 역시 나이가 어릴 뿐 어른이었다.


나이 많은 사람도, 애라고 불리는 나이 어린 사람도 모두 상처받고 흔들리는 그저 “사람”일뿐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어르고 달래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드림 피셜처럼 ‘어른’을 결혼유무, 나이, 신체적 변화를 기준으로 두지 않고, 어르고 달랠 줄 아는 존재로 본다면 '어른'은 많아진다. 불안한 생을 만났을 때 한 번이라도 이런 위로의 마음이 들었다면, 우리 모두 어른의 마음을 가진 셈이다. 나이가 어려서 상한 마음에 건네고 자하는 손길을 주저할 이유가 없고, 나이가 많다고 다가온 손길을 자존심 상해할 필요도 없다. 우리 모두 그저 다정한 다독임이 필요한 ”사람“일 뿐이니. 이렇듯  #썸머러브머신블루스 에 담긴 '어른'에 대해 시선은 ‘어른스러움’에서 거창함은 빼고 실질적으로 표현될 마음의 형태를 담아 두었다.


드림과 이수는 물론 수찬(윤종빈 분)까지 각자 의미 있는 새로운 시작으로 끝남으로 깔끔한 성장 서사를 완성시킨, 꽤 괜찮은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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