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 tv 드라마 <남남(2023)>
은미(전혜진 분)와 진희(최수영 분)가 함께 다니면 사람들은 자매지간이냐고 묻는다. 두 사람의 나이차가 14살 차이라 외관부터 엄마와 딸로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저녁 메뉴를 고르다 떡볶이에 볶음밥을 볶네 마네로 투덕거리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면 영락없이 자매다. 철부지 엄마와 세상 쿨한 딸. 이들은 종종 서로를 창피하며 모른 척할 수 있는 '남'이 되고 싶어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달려가는 '남이 될 수 없는', 가족이다.
의도를 담은 ‘19세 관람가’
지니 TV 드라마 <남남>은 ENA 채널을 통해 방영되며, 지니티비와 Tving을 통해서도 시청 가능하다. 접근성이 좋지 않음에도 드라마는 방영 2회 만에 입소문이 났다. 가장 화제가 된 부분은 아무래도 1회에 등장하는 '엄마의 자위'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 덕(?)에 1~2회는 19세 관람가다. 요즘에는 드라마에서도 '19세 이상 관람가‘ 표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다만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미성년자의 채널 접근을 제한하기가 어렵고, 한 편으로 끝나는 이야기 구조 또한 아니기에 일부 회차를 ‘19세 이상 관람가’로 제작하는 것이 이야기 진행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 생각하게 된다. 맥락과 상관없이 잔인하기만 한 폭력이나 선정적인 장면으로 이슈 몰이를 하는 몇몇 작품을 보면 ‘19세 이상 관람가’를 일종의 면죄부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진희는 그날에 대해 모른 척 넘어간다. 그런 진희에게(아니, 똑같이 모른 척하고 있었던 시청자들에게) 엄마 은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뭐라고, 내가 뭐 죽을죄를 지었냐!” 장덕현 칼럼니스트는 드라마 <남남>을 “이렇게 도발적으로 다가오는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뭉개버리고 지나가는 서사의 전개는 ‘남남’이 가지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낸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드라마 <남남>에서 ‘엄마의 자위’와 그에 대한 딸의 반응은 화제성을 위해 일부로 놓은 작의적인 장면이 아닌, 드라마가 가진 시선을 보여주는 용도로 의도를 갖고 1회에 등장한 것이다(엔터미디어, 장덕현, “자위하는 엄마와 목격한 딸, 그게 뭐 어때서라고 묻는 ‘남남’“).
드라마 <남남>은 이 이야기 말고도 강렬한 자극으로 풀 수 있는 소재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가령 2-3화에서는 이웃이 팬티도둑 변태였다 거나 환자로 찾아오던 성희롱범, 할머니와 자식을 때리던 가정폭력범이 등장하고, 4회에서는 스토킹을 당하던 피해자가 결국 살해를 당하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런 사건들을 하나, 하나 섬세히 다루지 않는다. 모른 척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그게 뭐라고' 뭉개버리는 것도 같다. 가령 여느 드라마였다면 두 모녀가 처음으로 휘말리게 된 유괴범과 아동학대범에 대한 이야기는 억울한 유괴범의 사연을 들어주며 사건을 해결하는, 더 깊은 이야기로 풀어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 <남남>에서는 모녀의 대화로 끝난다.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이러한 사건을 계속해서 보다 보면 피로해지기 마련인데, 드라마가 사건을 재생산하지 않고 흘려보내니 자극적이라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경찰인 진희를 통한 수사적 관점이 아닌, 일상을 사는 두 모녀의 시각에서 평범한 삶의 순간들로 풀어지면서 도리어 시청자의 공감과 이해를 형성한다.
남보다 못한 ’가족‘, 가족 같은 ’남‘
보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유쾌하다. 하지만 그 말이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한다. 과연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남과 남'은 누구인지. 진희는 자신의 아이를 유괴했다는 말만 듣고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여자를 유괴범으로 특정했으나, 은미는 딸의 안위보다 유괴범에게 빗자루를 휘두르는 엄마의 폭력성과 아이가 엄마가 아닌 자신을 데리고 도망치던 여자 품으로 피하는 반응을 보며 아동학대를 눈치챈다. “생판 남이 가족보다 나을 때가 얼마나 많은데, 피 섞였다고 다 뭐 가족인 줄 알아?” 은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속에 자랐고, 가장 도움이 필요했던 진희를 임신했을 시기엔 그런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친구 미정(김혜은 분)이네 가족과 함께 지내며 보살핌을 받았다.
어려운 순간마다 은미를 도운건 ‘남’이라 불렸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은미는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은미는 환자로 온 손님의 몸상태를 보고 가정폭력을 의심했고 경찰에 신고한다. 그 일로 인해 신고당한 아들이 은미 직장까지 찾아와 난동을 부리지만, 은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의 행동이 부끄러운 짓이었음을 깨닫도록 혼 내고, 여성을 스토킹 하며 쫓아가던 남자에게 필살기! 헤드락을 걸어 여성을 지키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은 끝내 살해당했고, 가해자는 은미 주변을 맴도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남’이라는 경계선 위에서
위험에 노출되면서까지 타인을 돕는 건 무모한 행동일까? 역시나 드라마는 진희가 위험한 순간마저 쓱, 지나간다. 그 순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은미는 자신이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것도 모르는 듯하다. 경찰인 진희의 눈이 예리하게 순간을 포착하는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위험 요소를 보여주는 식이다. 그렇게 흘러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장면은 일상의 공포를 건드리며 훨씬 더 큰 긴장감을 만든다.
우린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갈 뿐,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어두운 골목길에선 나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도 긴장하게 된다. 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흉기난동 사건만 보더라도 예기치 못한 위험한 상황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까 ‘남’의 일이 아니다. 타인을 돕는 일이 아니다.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나의 일이다. 그렇기에 ‘남’을 향한 도움은 나를 돕는 일이기도 하다.
앞서 드라마가 수사물이 아니라고 했지만 포커스의 무게가 적을 뿐 극 중에서도 수사는 이뤄지고 있다. 진희는 아무래도 엄마가 가해자의 또 다른 표적이 된 것 같다며 지구대 소장 재원(박성훈 분)에게 도움을 청한다. 재원은 그 상황을 전부 알고 있었고, 진희에게 은미의 상황까지 고려해 조심히 가해자의 동선을 쫓으며 수사하고 있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쯤 되니 이 드라마에 가졌던 무심한 시선에 대한 오해가 풀리는 듯하다. 느껴졌던 무심함은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앞서 상대의 삶에 함부로 들어가는 무례를 경계하던 조심함이었을지도.
‘남’이라 불리는 은미는 다른 집 사정이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남’으로 남아 있지 않는 선택을 한 것처럼, 드라마는 모르는 것 같고, 대충 뭉개고 넘어가는 것 같아 보여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며 필요한 순간에, 도움이 필요한 만큼, 상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단정한 모습을 보여 준다. 사건의 관계자가 아닌, 진희와 은미 중심으로 풀어가는 이야기 구조도 이러한 이유에서 일지 모르겠다. 덕분에 은미의 행동이 무모하게 느껴지지 않고, 지구대가 무능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니 사건들이 자극적 일리가.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의 방향이 그쪽이 아니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가족이라 불리지만 남보다 못 한 사이가 있고, 가족은 아니지만 남이라 말할 수 없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도 있다. 이처럼 드라마는 고정된 풀이에 얽매여 있는 ‘가족’, ‘남’이라는 개념들에 물음표를 던지며, 작금의 상황에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는 경계에 놓은 것들을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한다.
흉기난동 사건이 보도되면서 현장에서 다친 사람을 지혈하기 위해 곁을 지킨 고등학생 두 명의 이야기가 함께 알려졌다. 지구를 구할 순 없지만 내 옆의 한 사람은 도울 수 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은 좋은 이웃, 고마운 인연이 될 수 있다. 선한 힘은 꼬리가 길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도움은 ‘남’을 위한 것일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정말로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남’이 존재하기는 할까? 부디 공포와 악에 지지 않고, 좋은 이웃이 되는 용기를 낼 수 있길. 물론 이런 다짐이 필요 없는 세상을 더욱 간절히 바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