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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ug 15. 2023

‘진심’의 모양이 언제나 ‘진실’이지 않았다.

tvN 월화 드라마 <소용없어 거짓말(2023)>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드라마 <소용없어 거짓말>을 보다 보면 이 속담이 자꾸만 생각난다.


솔희(김소현 분)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의 말에서 거짓말을 구분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드라마 <소용없어 거짓말>의 제목은 이러한 능력을 지닌 솔희를 설명하기도 한다. 처음 솔희의 능력을 접했을 땐 드라마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는 ‘사이다’ 장치라고 생각했다. 가령 2화에는 남자 주인공인 도하(황민현 분)가 정황상 변태로 오해받는 장면이 나온다. 동네 주민들은 그 주변에 출몰하는 변태와 그의 차림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를 변태로 확정시하고 있었지만, 솔희는 변태가 아니라는 도하의 말속에서 거짓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에 모두 앞에서 그가 변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물론 솔희가 믿는 것과 사람들에게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건 별개의 일이지만, 적어도 두 사람이 위기의 순간 괜한 오해로 서로를 믿지 못해 겪는 고구마 같은 시련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단 1회 차만에 전환점을 맞는다.



솔희는 자신이 지닌 특별한 능력을 구구절절 설명하기 힘드니 신 내림을 받았다고 속인다. 솔희가 모시는 신은 '진실의 신'으로 상대의 말에 거짓을 확인해 준다. 하루는 남자친구가 자신과 조건이 맞아 결혼을 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자신을 사랑해서 결혼을 하려고 하는 건지 알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왔고, 솔희는 의뢰인과 남자친구의 저녁 식사자리에 참석한다. 의뢰인의 남자친구는 다정했지만 그날도 역시 핸드폰에 정신이 팔려있었고, 의뢰인의 물음에 모두 거짓으로 답했다.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는 질문에는 급한 전화를 받아야 한다며 자리를 피하기까지 했다. 


더 볼 것도 없는 상황. 솔희는 의뢰인의 남자친구가 연락하고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까지 확인해 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의뢰인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한다. 사랑하게 된 그를 떠날 수 없으니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솔희의 말보다 그를 믿어보겠다고 한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솔희는 물론이거니와 이 상황을 보고 있던 시청자 모두는 두 사람의 결혼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란 미래에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레스토랑에 결혼행진곡이 퍼진다. 의뢰인의 친구들이 꽃다발과 풍성, 케이크를 가지고 줄지어 들어오고 맨 마지막엔 의뢰인의 남자친구가 수줍게 무릎을 꿇고 반지를 건넸다. 그가 바빴던 건 그의 말처럼 일 때문이 아니었고, 회사 단톡방과 연락을 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의 말은 전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서프라이즈 프러포즈를 준비하기 위해 바빴고, 문 밖에서 등장할 타이밍을 기다리는 친구들과 연락을 하느냐 정신이 없었다. 그의 말은 거짓말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진짜였다. 



솔희는 행복해하는 의뢰인을 보며 지난 자신의 사랑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린다. 행복하게 해 주겠다던 남자친구(강민 분)는 그로부터 한 달 만에 거짓말이 늘고, 급기야 내년에 자신과 결혼할 거라는 그의 말에선 거짓의 종이 울렸다. 솔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를 떠났고, 그도 그녀를 잡지 않았다. 숱한 거짓말을 구별해 내면서 솔희에게 있어 거짓말은 변해버린 마음이나, 숨기고 싶은 진실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의뢰인을 보면서 솔희가 당시 이별을 떠올렸던 건 그의 말만 듣고 마음은 확인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진심’의 모양이 언제나 ‘진실’이지 않았다. 김밥 한 줄을 놓고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고 말하는 엄마와 자신은 이미 충분히 배부르니 엄마 먹으라는 딸의 대화는 전부 거짓말이지만, 당신을 사랑한다는 진심이 담겨있는 것처럼. 그렇기에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정말 맞다. 하지만 의뢰인과 솔희의 지난 상황에서 ‘믿음’을 선택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은 믿는 도끼에 발 등 찍힌다는 말로 신뢰를 주는 일을 자주, 어리석은 행동이라 말하지 않은가. 그렇게 놓쳐버린 진심은 무엇일까? 말과 말 사이에 다 헤아리지 못한 숨은 마음이 얼마나 많을까? 


솔희는 조금씩 도하가 궁금해진다. 신기하게도 그의 능력이 도하 한정으로 통하지 않는 건지 그의 말에는 거짓의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면 솔희 앞에서 거짓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건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솔희가 도하에게 갖게 되는 호기심은 마스크 뒤 숨겨진 얼굴에서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진실성’으로 옮겨간다. 이렇듯 드라마는 솔희의 능력을 전면에 부각해 ‘거짓말’에 시청자의 시선을 집중시키지만, 예상과 반대되는 상황을 연출함으로 도리어 ‘진심’이란 과연 무엇인지 다른 시선으로 생각해보게 한다.

‘진실’보다 ‘거짓’이 난무하고, 속고 싶지 않아 경계하게 되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는 상대의 ‘진심’까지 가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 ‘진심’의 모양이 언제나 ‘진실’이지 않기에 그 용기의 이름이 있다면 '믿음'이라 불릴 것 같다. 이후 솔희는 도하의 말에서 거짓의 소리를 듣게 되지만 과거처럼 상처받고 싶지 않아 떠나는 대신, 그가 보여준 신뢰를 붙잡고 '믿음'을 가지고 '거짓'속으로 들어가 '진실'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무모해 보이지만 이러한 믿음이 끝내 두 사람이 가진 어두운 과거에서 구원해 줄 것이다.


사실 비주얼에 집중해 가볍게 보려고 한 드라마인데 ‘거짓말’을 통해  ‘말’ 이면에 담긴 '마음의 진심'에 닿는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진심’에 닿기까지 우린 얼마나 많은 순간을 헤맬까. 그렇다 해도 “우리의 오랜 떠돎은 결국 무용하지 않았다고*,” 말하게 될 엔딩의 순간을 기다린다.


* 김금희 <사랑 밖의 모든 말들>,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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