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보 Feb 27. 2016

아무 일 없이, 주말

자고 일어났는데, 입술에 물집 같은 작은 혹이 생겼다.

'아 피곤한가?? 피곤했나? 뭐가?'

뒤척이며 일어나려 했는데 누군가 몸을 누르는  것처럼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이 피로 곰들...


오랜만에 아무 일정 없는 토요일.

나의 계획은 적당히 기분 좋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여유롭게 아침을 먹은 뒤, 집 앞 카페에서  따뜻한 라테에 생크림을 추가해서 천천히 맛을 느끼며 미뤄 놓은 책들을 읽을 참이었다. 날씨가 따뜻하다면 그 뒤엔 동네 뒷 산에 산책을 나가야지- 기분 좋은 하루를 꿈꿨었는데,

현실은 참혹하게  이불속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자자. 무엇이 그렇게 피곤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 지난 한 주-

어쩌면 몇 주, 쉬지 못할 주말이었을 테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것들이

이렇게 몰려 터진 것인지도.

그래서 젊은 날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쉬는 날에도 퀘스트를 만들어서 수행하려 했고, 얻은 피로감을 무슨 보상인 듯 여기며 자기만족을 했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부스스하여진 머리를 바로 묶고 식탁에 앉은 딸에게 엄마는 핀잔을 주지 않으셨다. 그렇게 늦은 점심을 아침으로 얻어먹고, 이불을 끌고 나와 거실 바닥에 누워 애벌레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엄마가 옆에 앉아-


"시체처럼 피곤에 찌들어서 자는 모습을 보기 좋지 않아.

  차라리 이렇게 멍하니 편하게 누워 텔레비전 보는 모습이 보기 낫다.

 난 네가 편안한 표정일 때, 무엇을 하던 보기 좋더라."


그리고 서른 넘은 내게 궁둥이 팡팡을 힘차게 행하시곤 일어나서 보쌈을 만들러 가셨다.

이번 주말 저녁은 가족과 함께 먹을 수 있다고 하며, 보쌈이 먹고 싶다던 내 말을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힘들게 왜 ~ 고기를 사서 삶고 있어. 사서 먹지. 애벌레의 말에 엄마는

가족을 위해 무언가  만드는 게 좋다고 하셨다.


오랜만에 집안 가득 채워진 음식 냄새, 엄마의 움직이는 소리를  끌어안고 자다 깨 다했다.

쉬는  모습마저 성실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

긴장을 풀고 그렇게 오랜만에 엄마 품에서 자다 깨다 쉬었다.

파크라이프, 요시다 슈이치 저자, 양보 손글씨
매거진의 이전글 기대해도 좋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