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 없는, 죄 많은 세상의 모든 자녀들
사람들이 드라마에 빠져드는 건,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되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됨으로 공감과 충족을 함께 해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매거진의 이름이 "드라마 현실을 착안한 판타지"이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라 나는 여긴다. 세련된 포장, 화려한 영상, 극적인 진행, 그런 것은 없다. MSG 없는 자연 건강식 밥상 같다고나 할까?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엔 꼭 젊은이들과 늙은 어른들이 나온다. 그러나 가족 드라마 또는 주말극의 느낌은 아니다. 세대가 동 떨어져 각자의 삶들을 이야기하다 자녀의 결혼 문제 같은 어떠한 사건 앞에서만 모이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세팅된 식탁이나 다과상 앞에서 가족인 듯 흉내 내는 모습이 아니다. 세대를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 녹인다.
더욱이 주된 스토리를 이어가는 세대가 젊은 딸의 세대가 아닌 부모, 늙은 어른들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엄마 또는 아빠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딸이자 아들이다. 갈수록 개인화가 심해지면서 가족으로써의 책임을 무겁게만 느끼는 젊은 세대들의 지나친 쿨함과 여전한 전통적 사상 속에서 가족의 책임감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뜨거움 속에 낀- 안타까운 우리 부모님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엄마도 엄마가 있었어?
그럼 있었지. 너희 할머니
이상하다. 엄마가 엄마가 있었다는 게
나두 있었어. 엄마
그랬기에 공중파 밖에 드라마를 모르던 나의 엄마는 tvn 채널을 외우고 드라마 시간을 벽에 써 놓으면서까지 이 드라마를 챙겨보셨다. 야한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난 엄마가 이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으시면 조심스럽게 자리를 피했다. 너네가 딱 저렇다! 자식들은 죽어도 모를 거다! 공감을 바탕으로 한 잔소리가 쏟아지는 것도 있지만, 마음이 아파서... ... 자식 때문에 아퍼도 마음 편히 아플 수 없는 나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슬픈 눈에 눈물이 고인 나의 엄마를 보며 내가 우는 게 드라마 때문인지, 나의 엄마 때문인지 분간이 안돼서... 나는 드라마가 시작되면 그렇게 자리를 슬며시 피했다.
엄마와 드라마를 보다 보면 중간중간 스토리를 정리해 드렸어야 하는데 워낙 엄마의 삶이자 우리네 이야기여서 그런가, 이 드라마를 볼 때는 구연해야 할 설명이 없었다. 이것도 노작가님의 힘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이 드라마를 100% 다 챙겨보지 못했다. (항상 노작가님의 드라마는 이러는 듯;)
그래 놓고선 이렇게 드라마 리뷰를 쓰겠다고 끄적이는 것이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마지막회를 보면서 꼭 쓰고 싶다. 생각했다. 힘들게 살아온 우리 부모님들이 나이가 드니 훈장처럼 병을 하나씩 얻게 되었다. 보통의 드라마였다면 병에 걸린 부모님이 죽고 자녀들이 효도하지 못한 것에 힘들어하지만 결국 가족의 힘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이겨내는 뻔한 내용으로 마무리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희경 작가다.
사실 우리 주변에 암이나 기타 병을 안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 나의 엄마만 해도 그렇다. 모두 살아간다. 웃으며 울며 힘들어하지만 또 힘차게 살아가신다. "온갖 세상 일을 겪은 늙은 어른들이 거대하고 대단해 보이"는 이유며, 살아온 삶에 존경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마프에 나오는 늙은 어른들도 그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그 나이에도 "길 위에서 죽겠노라" 꿈같은 이야기를 삶으로 옮긴다. 살아갈 남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행동에 거침이 없다.
그런 마지막이 난 너무 좋았다. 그 외에 좋았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조인성, 연하가 주는 설레임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난 고현정 역할 너무 나 같아서, 이광수 역할이 꼭 나인 것만 같아 (실제로 나의 엄마는 김혜자 선생님 역할과 굉장히 비슷하다.) 자주, 많이, 깊이 감정 이입이 됐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늙은 꼰대들 때문에 속이 답답해지기도 많이 했지만, 세상 모든 자식들은 염치가 없기에, 목이 뻣뻣해질 정도로 힘을 꽉 주고 눈물을 꼭 참았다. 나의 지인은 드라마를 보고 나면 십 년의 생명력이 갉아 먹힌 것 같다고도 말했는데, 그분이나 나나 죄 많은 딸이란 소리겠다.
어린 왕자처럼, 나이가 들어갈 때마다 생각 날 것 같다.
엄마가 그리울 때 -
그렇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게 여러 역할들이 맡겨질 수록, 생각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