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알고 지낸 동생이 있다.
진취적이고 사교적인 동생은 이른 나이부터 일을 시작했다. 꿈꾸기를 좋아하는 동생은 자신만의 비전이 있었고 그에 맞춰 영업, 마케팅의 일을 하다 B 회사에 입사를 했다. B 회사는 캐주얼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젊은 이들에게 인기 있는 브랜드다. 그쪽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그 브랜드가 동생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동생은 그 회사에서 승승장구했다. 매출도 높았고 동생을 찾는 고객들도 늘었다. 일 년 정도 지나자 이곳, 저곳에서 함께하자는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일을 하면서 동생은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실력을 키워나가고 싶은 갈증이 생겼고, 고민 끝에 동종업계의 다른 브랜드로 이직했다. 모든 이가 한 번쯤 일 해보길 원한다는 이직한 회사는 고급스럽고 중후한 느낌이 강했다. 입사 전, 후 연수 시간이 따로 있고 이전 회사에 비해 페이퍼 업무도 많았다고 했다. 몇몇의 이야기만 들어도 체계적인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자유로운 성향의 동생에게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전 회사에서도 동생은 바빴지만 우린 종종 만나 삶을 나누었다. 하지만 이직한 후 동생과는 카카오톡을 나누기도 쉽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은 동생이 회사 근처로 자취 집을 얻었는데 그 집이 우리 집과 불과 5분 거리도 안되었다는 사실이다. 카톡을 하는 것조차 부담이 될까 조금씩 연락이 뜸해진 어느 날,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동생의 삶은 지쳐있었고, 퇴사를 고민 중이라고.
일전에 "그만두는 건 모든 잘하는 일" 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만두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충분히 힘들었을 테니 그만두기로 한 발걸음을 응원을 한다는 내용이다. 동생의 오랜만의 연락이 힘든 이야기여서 마음이 아펐지만 왜 그러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이유들을 이야기하는 것도 진이 빠질 테니. 그냥 잘했다고 했다.
몇 주 뒤 우연한 기회에 동생과 비슷한 상황을 겪은 분을 만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젊은 감각의 여행 회사를 다니셨던 그분은 SNS에서 우연히 만났다. 나의 캘리를 좋게 봐주신 덕에 그분이 다니는 회사에서 준비한 기획에 손글씨로 참여했다. 그렇게 조금씩 친해져 우린 밥을 먹었다. 그때 그분은 여행 회사를 그만두고 일반 회사의 마케팅 부서로 이직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담당자가 바뀌어 대략 짐작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그분의 상황이 동생과 매우 비슷했다. 자유로운 회사에 있다가 체계적인 시스템에서 일해보고 싶어 들어간 회사였는데, 너무 갑갑해서 힘든 부분이 있다며 그만두고 싶은데 이직이 너무 잦아서 경력 관리를 생각하면 주저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덧붙어 나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응원한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그건 시작이 될 기회가 되기 때문이란 생각으로 말이다. 적어도 이 두 사람은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들에게 잘 맞는 조직의 분위기가 어떠한지 명확히 알게 되었다. 어떤 분위기의 회사에 가야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고, 가진 에너지를 120% 발휘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으니 다음에 또 이직을 한다면 회사 분위기에 대해 더는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선택의 명확한 기준이 생겼다는 건 엄청난 득이다. 그렇기에 난 이 깨달음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 경험을 잘 살려 다음을 선택하는 일만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버틸 힘이 있다면 다음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다.
두 사람 다 이직하기 전 직장에서의 공통점은
앞서 밝힌 자유로운 분위기, 진취적인 성향 외에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승승장구했다는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첫 직장에서 출판부 영업부로 이직을 할 때이다. 좀 더 체계적인 분위기에서 넓은 흐름을 배우고 싶어, 일에 대한 욕심으로 이직을 했다. 그리고 그 당시 나는 일을 꽤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즉 이직해서도 난 잘할 거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출근한 지 1주 만에 그 믿음은 박살이 났다. 나는 실수투성이, 무능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해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같은 직종이며 설령 같은 일을 한다고 해도 (같은 일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전혀 다른 회사 분위기 속에서 그 일은 엄연히 내가 이전에 해온 일과 다른 일이 된다.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행동을 해야 하는데, 자신의 경력과 승승장구한 기억이 과거의 행동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전과 똑같은 실력을 지금 당장! 내놓아야 된다고 스스로를 들볶았다.
3-4년 차의 대리급이 이직을 해도 새로운 직장에서 최소 한 달(그 이상)을 적응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바로 대단한 실적을 낼 수 없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아니 인지하기도 쉽지 않다. 그저 자신의 실수 혹은 느린 업무 처리에 답답해하며 이 회사와 내가 안 맞는가 보다, 이직을 괜히 한건 아닌가, 그만두어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나는 이 외에도 여러 이유들로 1년 만에 그만두었는데 그만둔 것은 후회하지 않지만 책을 출간하고 싶은 요즘 좀 버티고 있었다면 다른 많은 것들을 배웠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은 종종 든다.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이직 후, 지쳐있는 당신을 격려하고 싶다.
버벅거리고, 이전 같지 않다고 느껴져 잘못 선택한 걸까? 마음이 불안하다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필요한 적응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었으면 한다. 곧 이전처럼 잘 해낼 거라고. 당신은 다른 곳에서 눈여겨보다 함께 일하자고 권유를 받은 실력 있는 사람임을 잊지 말라고, 그리고 이 곳에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기억함으로 마음에 힘을 주길.
/ 매거진에 올린 지난 글들을 조금씩 수정하여 다시 올리는 중입니다. 2019.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