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 착해."
그 말로 소개팅 남에 대한 설명이 끝났다. 외롭다고 소개팅 시켜달라고 떼를 쓰긴 했지만 소개남을 설명하던 많은 꾸밈 말이 '착하다'는 표현 앞에 모든 매력을 잃어버렸다.
분명 '착하다'는 말은 칭찬인데 어느 순간부터 내게 '착하다'는 말은 더 이상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뭐랄까... 맘 약해 손해 보는 멍청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이용만 당하는 멍청이, 답답하고 눈치 없는 바보라는 표현을 돌려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면접 때 3개월의 계약직이 끝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월급을 올려 준다고 했었다. 출근 첫날 선임이란 분이 나를 보자마자 인사도 생략한 채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다른 회사 알아봐요."라는 말을 했다. 어리둥절했던 나는 근무한 지 일주일 만에 그 말을 듣을걸 후회를 했다.
일의 양이 많고 적음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일하는 즐거움을 쫓는 사람인지라 할 수 있는 일이 많음이 좋았다. 단 강압적인 스타일의 대표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로 인해 모든 일들이 어렵게 느껴질 정도로.
정규직으로 전환을 약속한 3개월이 지났다. 정리하며 일하는 타입인지라, 3개월 사이에도 나는 업무에서 여러 매뉴얼과 나름의 시스템을 만들었고 업무 결과가 좋았다. 사무실을 함께 쓰는 다른 팀 분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성실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일을 했으니 좋은 평가로 정규직 전환이 될 거라 믿었다. 이 믿음에 사수였던 과장님도 힘을 보태주셨다. 그러나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날짜 계산이 다른가 싶어 한 달을 조용히 기다렸다. 월급 문제는 안 그래도 예민한 부분이라 누구와도 상의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거렸다. 그러나 4개월이 되는 월급날에도 급여는 인상되어 있지 않았고 그렇다고 누구 하나 내게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 회사의 입장을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고민하다 부장님께 조심스럽게 상의를 드렸더니 대표님이 까먹고 있었다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답을 듣게 되었다. 아무 말 없었기 때문에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대표의 반응에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정규직 급여로 들어오겠지 했는데 그다음 달에도 급여는 변동이 없었다.
화가 났다. 대표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태도에도 화가 났지만 성실과 예의 바름이 나의 밥그릇을 지켜주지 않는 현실에 더 크게 분노가 일었다. 결국 지지고 볶고 울고 불고 그만둔다는 한 바탕 난리를 피운 뒤에야 약속된 인상된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혹자는 약속된 정규직이란 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채용 당시 정규직 전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그렇다면 적어도 그 일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라도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용히 기다린 내게 대표님은 말을 안 해 몰랐다는 어이없는 대답을 할 때,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다음 달에는 까먹었다는 핑계를 대었다. 얌전하게 한 말은 들리지 않나 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는 말, '착하면 손해 본다'는 소위 말하는 어른들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까지 나는 여러 번 목소리 큰 사람이 되었어야 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 회사를 다닐 동안 나는 착한 건 나쁜 거라는 공식이 정립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일하면서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때 베긴 쓴 불가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독해지는 것이 못되지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건데 선한 마음을 멍청하다고 하는 것 같아 못 되지기로 했다. 똑똑해지려 할걸, 착한 마음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졌다.
'호의가 계속되면 호구인 줄 안다'는 말이 유행한 적 있다.
처음에는 상대의 호의를 고마워한다. 그러나 호의가 계속되면 익숙해지면서 당연한 게 되어버린다. 나를 위해 상대가 어떤 희생과 노력을 하는지 잊게 되고, 당연하다는 듯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태도에 응하지 않으면 변했다며, 이상하게 몰아가는 경우도 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호의, 착한 마음씨는 더 쉽게 무시된다. 가족, 절친 그리고 회사가 상습범이다.
취직한 후배들이 와서 회사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면 나는 뒷방 늙은이가 되어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아라. 눈에 띄지 말고 그냥 평균만 찍어라." 인생 다 산 듯 말했다. 순수했던 열심히 여러 번 무시당하면서 상처가 컸다. 알아줄 거라는 믿음에 자주 배신을 당했다. 누군가를 배려해 주고 순수하게 그들의 성공을 응원해 주기엔 세상의 경쟁은 치열했다. 물론 대가를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순간 기대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의 배려가 똑같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후배들은 그런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싶어 저런 기운 빠지는 소리를 해댔다.
어쩌면 착함을 무시하는 몇몇이 기대하는 "착함"은 고마운 마음으로 화답되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쉽게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말없이 따라와 주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자신이 원하는 편리한 반응이 나오지 않을 경우, 그 사람의 착함을 평가 절하하며 어리석고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해 버리니 마음 약한 사람들은 악해져 버리거나 위축되는 식으로 점점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저런 논리 가운데 나 역시 착하지 않기로 했다. 착한다는 것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착한 남자를 소개받기 싫어하고(그렇다고 나쁜 남자가 더 나은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파트너를 고를 때에도 착한 사람은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격 좀 못돼도 되니 일 확실히 하는 사람이 낫다면서... 성격이 나쁘면 욕이라도 할 수 있는데 착하면 욕도 못하니... 내가 기대하는 착함은 이런 건가 보다.
글을 쓰면서 착한 사람들이 욕먹는 세상을 만드는데 나도 일조했단 생각이 들어 착잡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착한 걸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훗날 내 아이에게 "착하면 무시 당해. 착한 건 결국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그러니 나쁜 사람이 되거라."라고 가르칠 순 없지 않은가.
그렇네. 지금 나보다 내 아이가 살 세상을 생각하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착한 사람이요. 좋은 사람이요."라는 대답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좀 바보 같은 생각일 수 있겠지만 대통령! 연예인! 과학자! 선생님! 만큼 "착한 사람"이 되는 게 좋은 거란 생각이 우리 아이들은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이기적이고 욕심 있는 사람들 때문에 정말 선한, 착한 사람들이 바보가 되지 않도록. 착한 마음으로 성실히 일한 사람이 제대로 된 기회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나부터 선한 마음을 올바르게 보며 사랑해 줘야지. 현명하게 바른 마음을 지켜 나가는 지혜도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