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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Feb 09. 2017

'착하다' 말은 칭찬일까?

  "그 애 착해."

  그 말로 소개팅 남에 대한 설명이 끝났다. 외롭다고 소개팅 시켜달라고 떼를 쓰긴 했지만 소개남을 설명하던 많은 꾸밈 말이 '착하다'는 표현 앞에 모든 매력을 잃어버렸다.


  분명 '착하다'는 말은 칭찬인데 어느 순간부터 내게 '착하다'는 말은 더 이상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뭐랄까... 맘 약해 손해 보는 멍청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이용만 당하는 멍청이, 답답하고 눈치 없는 바보라는 표현을 돌려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깨비, 써니 대사, 김은숙 작가, 양보 손글씨


착한 건 나쁜 것

  면접 때 3개월의 계약직이 끝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월급을 올려 준다고 했었다. 출근 첫날 선임이란 분이 나를 보자마자 인사도 생략한 채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다른 회사 알아봐요."라는 말을 했다. 어리둥절했던 나는 근무한 지 일주일 만에 그 말을 듣을걸 후회를 했다.


  일의 양이 많고 적음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일하는 즐거움을 쫓는 사람인지라 할 수 있는 일이 많음이 좋았다. 단 대표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로 인해 모든 일들이 어렵게 느껴질 정도로.


 정규직으로 전환을 약속한 3개월이 지났다. 신입이었지만 3개월 사이 나는 많은 매뉴얼과 시스템을 만들어 놨고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라는 듯 사무실 사람들도 나의 업무 실적들을 칭찬해주었다. 성실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일을 했으니 좋은 평가로 정규직 전환이 될 거라 믿었다. 이 믿음에 과장님도 힘을 보태주셨다. 그러나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날짜 계산이 다른가? 싶어 한 달을 조용히 기다렸다. 월급 문제는 안 그래도 예민한 부분이라 누구와도 상의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거렸다. 그러나 4개월이 되는 월급날에도 급여는 인상되어 있지 않았고 그렇다고 누구 하나 내게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 회사의 입장을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고민하다 부장님께 조심스럽게 상의를 드렸더니 대표가 까먹고 있었다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답을 듣게 되었다. 아무 말 없었기 때문에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대표의 반응에 나는 잠시 어이를 가출시켜야만 했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라도 인상된 급여로 들어오겠지 싶었는데 5개월이 되던 차에도 내 급여에는 변동이 없었다.

  결국 화가났다. 성실함과 예의 바름이 나의 밥그릇을 지켜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크게 화가났다. 결국 지지고 볶고 울고 불고 그만둔다는 한바탕 난리를 피운 뒤에 약속된 정규직 전환과 인상된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혹자는 약속된 정규직이란 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약속을 했으면 그때엔 정규직 전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용히 기다린 내게 대표는 말을 안 해 몰랐다는 어이없는 대답을 했고 그다음 달엔 까먹었다는 핑계를 대었다. 얌전하게 한 말은 들리지 않았나 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 말, '착하면 손해 본다'는 어른들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까지 나는 여러 번 목소리 큰 사람이 되었어야 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 회사를 다닐 동안 나는 착한 건 나쁜 거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버렸고 독해지기로 했다. 눈 뜨고 코베이는 일 없도록 독해지고 악착같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독해지는 것이 못되지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건데 착한 나를 바보로 아는 것 같아 못 되지기 까지 했다.

똑똑해지기를 바랄걸, 

착함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졌다.



착한 건 뭘까?

  '호의가 계속되면 호구인 줄 안다'는 말이 한때 유행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상대의 호의에 고마워한다. 그러나 그 호의가 계속되면 익숙함에 당연한 게 되어버린다. 나를 위해 상대가 어떠한 희생과 노력을 하는지 잊게 된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호의, 착한 마음씨는 더 쉽게 무시된다. 가족, 절친 그리고 회사가 상습범이다.


  취직한 후배들이 와서 회사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면 나는 뒷방 늙은이가 되어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아라. 눈에 띄지 말고 그냥 평균만 찍어라." 인생 다 산뜻 말한다. 순수했던 열심히 여러 번 무시당하면서 상처가 컸다. 알아줄 거라는 믿음에 자주 배신을 당했다. 누군가를 배려해주고 순수하게 그들의 성공을 응원해주기엔 세상의 경쟁은 치열했다. 물론 댓가를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순간 기대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의 배려가 똑같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후배들은 그런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싶어 저런 기운 빠지는 소리를 해댔다.

   

  어쩌면 착함을 무시하는 몇 몇이 기대하는 "착함"은 고마운 마음으로 화답되어지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쉽게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말없이 따라와 주는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원하는 편리한 반응이 나오지 않을 경우 그 사람의 착함을 평가 절하하며 어리석고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해버리니 착한 사람들은 악해져 버리거나 위축되어져버리는 등 점점 사라져 버리게 되는 건 아닌가 싶다.


  이런저런 논리 가운데 나 역시 착함을 지양해버리게 되었다. 착한다는 것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착한 남자를 소개받기 싫어하고(그렇다고 나쁜 남자가 더 나은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파트너를 고를 때에도 착한 사람은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격 좀 못돼도 되니 일 확실히 하는 사람이 낫다면서... 성격이 나쁘면 욕이라도 할 수 있는데 착하면 욕도 못하니... 내가 기대하는 착함은 이런 건가보다.


달이움직이는소리, 윤지운 작가, 양보 손글씨

똑똑하게 착한, 두 마리 토끼

  글을 쓰면서 착한 사람들이 욕먹는 세상을 만드는데 나도 일조했단 생각이 들어 착잡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착한 걸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내 자식한테 "착하면 무시 당해. 착한 건 결국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그러니 나쁜 사람이 되거라."라고 가르칠 순 없지 않은가.


  그렇네. 지금 나보다 내 자식이 살 세상을 생각하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착한 사람이요. 좋은 사람이요."라는 대답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바보 같은 생각일 수 있겠지만 대통령! 연예인! 과학자! 선생님! 만큼 "착한 사람"이 되는 게 좋은 거란 생각이 우리 아이들은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이기적이고 욕심 있는 사람들 때문에 정말 선한, 착한 사람들이 바보가 되지 않도록, 착한 마음으로 성실히 일한 사람이 제대로 된 기회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나부터 착한 행동들을 인정해줘야겠지. 똑똑하게 착한 마음을 지켜 나가는 지혜도 필요하겠다. 어쨌든 착함이 착함으로 인정받아지는 그런 환경들이 만들어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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