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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r 31. 2017

모든 용기의, 김과장

  "김과장"에서 묵직한 울림과 차분한 미생을 기대했는데 그곳엔 돌아이, 티똘(TQ의 또라이)이가 있었다.

  그는 삥땅 전문가였다가 의인이 되고 그 후엔 티똘이가 된다. 한 드라마에서 한 인물이 이렇게 많은 별명으로 불린건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른 역할들도 상당히 재미난 별명들이 붙어진다.


  서율 이사는 소시오패스에서 먹보 소시오패스로 진화했고, 개망나니 본부장은 막내 멍석이로 부르는 호칭이 탈바꿈했다. 윤대리는 하경씨로 불리기도 하고 추부장은 형님으로 불리기도 했다. 마지막회쯤엔 서율이 자신을 “율인데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덕분에 애착이 가는, 밉지 않은 악역들이 탄생한 듯싶다. (악역 없는 드라마를 격하게 환영하는 일인으로써 이 드라마가 더욱 좋았다.)


  단, 박 회장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박 회장으로 불렸다.     




  키미노 나마에와?

  영화 “너의 이름은”의 영향으로 이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이름,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친밀함을 띤다. 이들의 호칭에서도 그런 친밀함이 느껴진다. 함께 여러 일을 겪고 해결해나가면서 서로를 잘 알게되고 그런 사이에 믿음이 쌓이면서 그 믿음에 반응하는. 딱딱함은 떨어져 나가고 다정함이 생겼다.
   
  처음부터 김과장이 달라지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강제 의인이 되면서 의인 효과를 보려 했을 때만 해도 그는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건 손해 보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의인이라는 말의 씨앗이 경리팀과 장 회장의 믿음 속에서 꽃이 되어  피었다.  그 믿음에 반응하듯 김과장은 잘못 걸어온 과거의 길을 되돌아 갈 용기를 낸다. 그리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TQ의 의인, 티똘이가 된다.  



     누구와도 함께 하지 않았던 김과장이 의인으로 불리면서 그는 함께 하는 법을 배워가는 성장을 보인다. TQ 택배 회생 안이 실패에 그쳤을 때 그래서 그는 괴로워했다. 처음으로 자신이 선택한 옳은 일이었기에. 과거 자신의 잘못에서 돌아서려던 첫 발이었는데 호기롭게 시작함과 달리 그는 부정함에 지고 만다.                     


  자신의 잘못에 자책하며 실의에 빠져있는 김과장에게 윤대리는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 적과 싸울 때나 해당된다. 과정이 좋으면 사람이 남는다.”라고 말한다.  경쟁이 심한 이 시대에 우린 어느 사이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삶엔 적용되지 않는 굳어져버린 "정답"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대사를 통해 과정이 왜 중요한지가 삶으로 다가왔다. 내가 뽑은 김과장 베스트 대사이기도 하다.


  김과장도 이 말이 마음에 남았나 보다. 믿음을 받은 김과장은 그렇게 서율과 멍석이에게도 과거에서 돌아설 기회들을 준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 과거의 잘못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하지만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부끄러워하고 창피해할 줄 아는, 그래서 돌아올 기회를 선뜻 잡지 못했던 서율 이사와 망나니 본부장 박명석의 모습에서 이런 사람들이라면 “돌아설 기회”를 줘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기회가 달라지고 싶은데 과거에 발목이 잡혀 달라지지 못하고, 그래서 더 악해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아직 어렵다. 정말 큰 믿음 없이는 주지 못할 기회다. 나라면 과연 윤대리처럼, 김과장처럼 믿음으로 손을 내밀 수 있을까? 나라면 서율과 박명석처럼 돌아올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드라마 보면서 또 오버하는 거 일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김과장을  단순히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로만 보이지 않았다.     


  뭐, 안 봐도 마지막 회 엔딩의 답은 나와 있다. 박회장의 몰락.

  그만큼 돌아올 기회가 많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놈들이 감히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나? 누구보다 가장 탐욕스러웠던 놈들이 어!"
   "우리 이제 바뀌었어요. 특히 회장님 사시는 거 보고 그렇게 추악하게 살면 안 되겠더라고요."
   
  20화. 박회장과 김과장의 대화.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늦은 거라는 말이 생겼다. 하지만 잘못된 길이라면 늦었다 하더라도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과오를 되돌리는 일이 쉽지 않지만, 자존심도 상하고 그래서 두렵기도 하지만 앞으로 나가는 것보단 되돌아가는 일이 맞다. 앞으로 더 가봤자 결말은 박회장이다.

  드라마 OST를 통해서도 작가는 끝인 없이 말하고 있다.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네 너무 멀리 와버렸다네
    정신없이 걷다가 보니 이미 끝이 보이네

    뭐 어때 돌아가면 된다네 잃을 것도 하나 없다네
    아직 내게 남은 청춘 있다네  "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과거를 바로잡으려는 용기.

     걸음을 멈추고 돌아가려는 용기.

     믿어줌의 용기.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닌 "어설프게나마" 이러한 신념을 쫓으려는 용기.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용기 일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갑이 을에게 한 부당대우들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일명 "미생"드라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마저도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이 형성되면서 흐지부지해진다.  그래서 유쾌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으며 풀어낸 성장물로써 김과장의 시즌2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들의 에너지가 TV를 뚫고 나와 우리가 사는 현재에도 퍼 저나 갔으면 하는 소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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