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마음이 가는 사람을 만났다.
쑥스러움이 많았지만 내게로 다가오려는 발걸음은 정확했다.
한 번의 어색한 만남을 지나 두 번째 만났을 때 우린 조금 더 친해졌고 그는 내게로 와도 된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정확한 방향에 속도까지 더해져 내게로 오기 시작하는 그를 보자 나는 반대로 뛰기 시작했다.
처음 고백했던 남자아이가 내 마음을 받아주었고 다정하게 지내다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일로 싸웠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 싸움이 어떻게 끝났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그냥 그대로 헤어졌던 것 같다. 감정을 대면해야 하는 어려움으로부터 도망쳤던 나의 마지막은 이후 다른 마지막에도 영향을 주었다.
끝이 두려워 시작을 못하는 바보.
사랑을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나는 사랑에 대해 도망치는 법 밖에 모르는 실패자가 돼 있었다.
오랜 연애가 끝난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말했다.
가정에 상처가 있었던 그녀는 그래서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목표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고 종종 말했었다. 남자에 대한 믿음이 유달리 적었던 그녀 곁에 우직한 그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를 통해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목표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때에 둘의 연애는 갑자기, 허무하게 끝이 났다. 인생의 목표였던 그가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실패를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 거나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진다, 거나
사랑을 하다 보면 사랑하는 법을 배울 거다, 라는 말은 약이 되어줄 수 없었다.
인생이 끝난 듯 슬픔 속에 있는 그녀를 보면서
오랜만에 마음에 들었던 그 사람이 생각났다.
사랑에 실패했다고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면 그를 받아들이는 일이 달랐을까?
여러 번 겪은 실패들에 마침표로 마무리 짓지 않고 콤마를 찍어왔다면 그 끝엔 다른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과연 인생을 살면서, 살아 있는 동안에 마침표를 찍을만한 일이 있을까?
실패 뒤에 마침표를 찍을지 콤마를 찍을지 결국 내 몫이구나 싶었다.
실패가 무서워 성급히 끝이라고 말하고,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고 실패라고 단정 짓고 있지 않았나.
성공의 모습을 하나로 규정 지을 수 없고, 성공의 길이 단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실패한 기억이 이어 줄 길은 기대조차 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시작만 하느냐 지처 또 다른 실패를 만든 건 아닌가.
일반론에 입각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녀와 내겐 새로운 사랑이 올 것이다.
사랑 말고도 올 것이다. 내가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면, 끝났다고 생각한 그 지점에 새로운 시작이 올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를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