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남자는 국가대표라는 목표가 있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 고단한 시간을 보냈지만, 알아주는 서로가 있어 힘을 냈다. 둘이 함께라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충만함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상황은 점점 안 좋게 흘러간다. 가난한 집은 버거웠고,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컨디션은 회복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에게 사랑은 사치였고, 그의 마음은 부담이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 그녀는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녀는 국가대표에 떨어진다. 목표를 잃은 그녀는 다시 그에게 찾아와 매달린다.
"난 아무래도 너 아니면 안 되겠어.... 나 이제 잡을게 너 밖에 없어."
"그냥 너 혼자 설 생각해. 다 각자 인생이야. 동아줄 같은 거 없어."
그녀는 홀로 서는 법을 알지 못했다. 스스로를 치유하고 돌보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잔인하게도, 그가 가장 힘든 날 헤어지잔 말을 꺼낸다. 그의 아픔을 알았다. 하지만 그보다 자신의 조급함이 먼저였다. 자신을 위로하지 못하는 을 달래주지 못하는 약하고 상처 입은 그는, 그녀에게 더 이상 사랑이 아니었다. 신경 쓰이는 부담스러운 것이 되었다.
만약 그녀가 스스로 설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둘의 관계는 달라졌을까?
언제나 자신의 편이었던 그를 위해 그날 하루 자신의 조급함을 잠재웠다면, 그는 그녀를 더 큰 품으로 품었을 것이다. 그런 그라 그녀가 사랑했으니까.
둘이여도 우린 어쩔 수 없이 외로워진다.
나도 다 모르는 내 속을 다른 사람이 어찌 알 수 있을까? 다 안다고 느끼는 건 행복한 착각이다. 다만 이 착각이 외로워진 순간 잔인한 이기심을 발동시킨다. 상대의 사랑이 부족해 외로운 것이라며 오해하고 억울한 누명을 씌운다.
사실 나를 외롭게 만드는 건 상당수가 다른 이유였다. 과도한 업무가, 짜증 나게 하는 상사 놈이, 클라이언트가 나를 지치게 했다. 정신없이 하루를 살다 혼자 놓이게 된 잠시가 나를 외롭게 했다. 그럴 때 전화를 받지 않았다며 그를 미웠고, 건성건성 답하는 듯한 그에게 짜증을 부렸다.
텅 빈 그릇으로 당신을 찾아가 가득 체우라며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거지 같았다. 내 사랑이 거지 같다니...
<괜찮아 사랑이야> 드라마 속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도 사랑지상주의니? 사랑은 언제나 행복과 기쁨과 설렘과 용기만을 줄 거라고? 고통과 원망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과 불행도 주겠지?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낼 힘도 더불어 주겠지. 그 정도 돼야 사랑이지."
그 정도 되는 사랑은 기대어 있는 사람(人)을 닮았을 것 같다. 둘이 함께 사랑한다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곳이 되어준다는 것일 테고, 그 기댐이 이길 힘이 되어주는 듯 하다.
그렇기에 외로움에 사무치는 어느 날, 전화기를 들어 그에게 위로를 구할 수도 있지만, 가끔은 내가 나를 달래주기로 했다.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받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세어봄으로 외로 움을 달래보기로 했다.
가끔은 사랑하는 이가 텅 빈 그릇으로 나를 찾아와도 넉넉히 채워 줄 수 있도록 스스로를 챙기는 법을 배워두려 한다. 서로가 기대어 있는 모습의 사랑을 위하여, 둘이어도 외로울 수 있다는 말을 기억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