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궁금한 건,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려놓고 싶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노력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안마에 집중할 수 없이 이 문제에 골몰하게 되어버렸다. 어떻게 하면 내려놓고 싶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걸까."
-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저자.
생각이 유독 많은 밤이 있다.
자려고 누웠는데 잠은 오지 않고 생각이 꼬리를 무는 밤.
뒤척 거림이 심했는지 같이 자는 엄마가 깨서 물었다.
안 자고 뭐하냐고.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이 안 온다는 말에
엄마는 무심히 말하셨다.
생각을 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엄마. 생각을 어떻게 안 하는 건데?
대꾸하지 못한 대답마저 내 머리 속으로 들어와 둥둥 떠다녔다.
그 많은 생각들에 생각하지 않는 방법을 생각하는 생각까지 더해져 밤이 새하얗게 되었다.
어떤 일을 계획하는 생각은 끝이 있다.
'이렇게 저렇게 하고 요렇게 하면 대략적으로 모양이 잡히니까 우선 진행해보자.'
그렇게 생각은 일단락된다.
하지만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은 쉽사리 끝이 나지 않는다.
나는 왜 그 사람한테 그랬을까?
그 사람은 내게 왜 그랬을까?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이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까?
어떻게 해야 상처가 덜 할 수 있을까?
우리 사이에 슬픔이 없을까?
생각의 꼬리는 꼬리를 물어 밝은 빛이 보이는 곳으로 데려다 주기보다는
어둡고 무겁고 컴컴한 바닥으로 끌어내려주는 일이 잦다. 적어도 나의 경우, 그렇다.
그래서 명쾌하지 않은 생각이 들 때면 구구단을 세거나 가나다라를 외우거나 주기도문을 외워 생각을 쫓는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달라고. 안 그래도 어두운 밤, 나를 더 짙은 바닥으로 이끌지 말라고.
대부분의 쓸데없는 생각은 구구단과 주기도문에 패배한다. 그러나 이에 밀리지 않는 생각들이 있다.
아무래도 나는 이해하고 싶은 건가 보다.
누군가를.
너를 그리고 나를 이해하고 싶은 건가 보다.
놓아버리고 싶지 않아서,
돌아서서 잊히고 싶지 않아서,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아서
나는 생각의 끝을 계속 이어가는 거란 결론에 다 달았다.
위의 책에서 허 작가님도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어쩌면 뭔가를 내려놓기 위해 필요한 건 망각이나 체념이 아니라 이해하는 태도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이해 말이다."
생각들의 결론은 대부분,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이해였으니까.
결국 허 작가님의 말을 되풀이한 앵무새의 글이 되어버렸네.
짹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