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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y 15. 2017

엄마도 N포세대

오랜만에 엄마와 티비 앞에 앉았다. 도란도란 수다의 꽃을 피우는데 티비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에게 말을 건 프로그램은 jtbc 비정상회담. 세계 각국 청년들이 모여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펼치는 이 프로의 이번 주제는 "욜로(You Only Live Once), 한번 사는 인생 미래보다 현재가 더 중요한 나 비정상인가? " 였다. 


엄마는 내게 물었다. 
"넌 현재야? 미래야?"

"저건 토론 이잖아. 일부로 이분법적으로 주제를 던진거지만 이건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이야기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미래만을 위해서 현재를 무조건 희생할 수 없지. 적당히, 잘 해야지." 

나는 일부로 딱딱하게 말했다. 근래 집에 택배가 많이 오고 있어서 잔소리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미래야. 일할 능력이 있을 때 모아놔야 나중이 편하지."

나중에 편한 게 누구일까? 그 앞에 감춰진 주어는 "너희"로 표현될 나와 언니임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이 육십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자식에게 주려고 하는 엄마의 대답에 차라리 잔소리를 듣는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엄마는 삶의 여유를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몸이 안 좋아지면서 경제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자신에게 쓰던 그 조금의 돈 마저 줄여 가며 저축을 하기 시작하셨다. 

커피 한잔 마실 여유조차 잃은 엄마는 매일 집에만 있었다. 하루종일 부엌을 벗어나지 않는 엄마를 보면 답답했다. 나가서 커피도 마시고 산보도 하라고 말하면 그게 다 돈이라며 "엄마는 이게 노는거야"라고 말했다. 넉넉히 용돈을 드릴지 못하는 내가 싫은건데, 자꾸 엄마 탓을 하며 엄마에게 화를 냈다. 


허리가 아파 디스크 수술을 받고서도 잔업과 주말 근무가 있다면 자진해서 일하러 나가는 아빠도 나는 화를 냈다. 그러니까 허리가 계속 아픈 거 아니냐고, 몸이 아프면 좀 쉬면서 하라고 걱정해도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지."라며 주말마다 일하고 돌와 오면서 내가 좋아하는 과일들을 사다 주는 아빠가 너무 안쓰러워서 나는 화를 냈다. 



오늘은 이 바람만 느껴줘, 청춘유리 저자, 양보 손글씨


"우리도 나이 든 사람들을 N포세대로 부를 수 있어요. 시간과 취미 등 사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산업화 역군이 돼 살아왔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어른들을 그렇게 부르진 않죠.” (기사 바로 가기)


우연히 보게 된 동아일보 기사에 시선이 갔다. 기자는 '세대 간 시각 차이', '세대 간의 갈등'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인터뷰 내용에 공감 가는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그에 앞서 위에 인용한 인터뷰 일부가 계속 마음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삶에 여유가 없는 것 같은 우리 가족이 난 세련되지 못한 것 같아 싫었다. 요즘 때가 어느 때인데 이렇게 사냐고 못난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도 쉼을 포기하고 산업화의 역군으로 살아온 다른 형태의 N포세 대였다. 


엄마도 아빠도 커피 한잔의 여유와 여행의 즐거움을 아는 분들이셨다. 그러나 부모님들에겐 나는, 자신들의 젊음과 즐거움을 포기하고서라도 선택할만한 가치였나 보다. 그 포기가 나를 키워냈다.

그런데도 난 쉴 줄 모르는 바보라고 엄마를, 아빠를 답답해했다.


사실 진짜는
이렇게 나이가 먹어서도 엄마, 아빠의 손을 타는 내가 답답한 것이었는데

좋은 것 보면 내 생각부터 하는 엄마, 아빠에게 편안하게 누리게 해드리지 못한 내가 미안한 건데

나는 엄마, 아빠가 구식이고 답답하다고 탓을 돌리는 한심한 모습이었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신회 저자, 양보 손글씨




작품에 인생을 담기기로 유명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중 "디어 마이 프렌즈"가 있다. 이 드라마는 '황혼기 청춘들의 인생 찬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중장년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 우리 엄마는 소녀 같은 김혜자 씨(조희자 역)를 닮았다. 그리고 남편이 세계일주를 시켜주겠다고 한 약속을 붙잡고 여행 채널 앞에서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는 나문희 씨(문정아 역)의 모습도 엄마와 닮았다. 그녀들의 삶도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었다. 그들에겐 자식이 자신보다 더 귀한 가치 있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 가치 있는 존재인 나는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엄마와의 부산 여행을 계획 중에 있다.

모든 비용을 내가 부담할 생각을 하고 보니 이번 달에 하려고 했던 머리, 사려고 했던 가방이 아른아른거렸다. 끝까지 철딱서니가 없다. 나는 과연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엄마와 아빠의 삶을 위해서라도 나는 좀 더 좋은 딸이 되어야겠다.


엄마야, 아빠야,

우리 앞으로 함께 쉬는 시간을 갖자. 

현재도 미래도 이렇게 오래오래 함께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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