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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ug 25. 2017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억지

나는 회식이 어렵다.

고조되어가는 분위기 속 흐트러지는 모습들, 어지러워지는 말들과 소음들이 불편하다.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아이유에게 물었다.

"네가 집착하고 있는 게 뭐야?"

"저는 평정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제가 들떴다는 느낌이 스스로 들면 기분이 안 좋거든요."

아이유가 한 말의 의미를 나는 잘 알 수 있었다. 한 때 누구보다도 내가 그랬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 틀을 깼다며, 성장한 스스로를 내심 기특히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의 변화도 역시 겉모습뿐이었다. 남들 앞에서 티 나지 않게 같이 웃고 떠들고 소란스러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헤치지 않을 딱 그 정도. 뭐, 이 정도도 엄청 발전한 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속에선 여전히 무게 중심을 0 에 맞추려고 한다.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억지를 부리게 하는 회식은 내게 엄청난 피로감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그만큼의 외로움도 찾아온다.


오랜 동생 L양에게 드디어 남자 친구가 생겼다. 그녀는 A와 나에게만 말하는 거라며, "언니에겐 말씀드리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요."라고 했다.  순간 '나한테 왜? 내가 막 너에게 강압적인 사람이었나?'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내 속 마음을 알았다는 듯 그저 같이 노는 무리 속에서 내가 가장 언니이니, 내게는 말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나는 또 속상해졌다.


솔직하지 못한 관계인가 싶어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지 않은 건 서로를 배려한, 예의였다.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인해 누군가 어색해하거나, 당황해하는 게 싫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오랜 시간을 쌓아 온 가까운 사람들의 흐트러진 모습도 본 적이 없었다. 내 앞에서 누구 하나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난 그런 걸 받아주지 못하는 사람인 것 인가? 무슨 힘든 일, 실수하고 엉망이 된 일이 있어도 내겐 도움을 구하러 찾아오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이트 계열에 깔끔하게 정리 정돈된, 인테리어 잡지 속에나 나올 법한 모습, 

나의 관계가 연출된 장면같이 느껴졌다.

물론 엄청난 비약이다.  하지만 이 생각이 몇 해를 떠나지 않고 있으니, 나는 정말 이런 나를 깨트리고 싶다.



믿고 그래서 상처를 받을 것인가?

믿지 않고 그래서 외로울 것인가?

믿는다고 백 프로 상처를 받는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작은 상처에도 예민한 건가? (그렇다면-_- 배가 불렀다.)

사실은 내가 너무 엉망이라, 깨끗하고 곧지 못해서, 더욱 흐트러짐을 경계하는 건 아닐까?



드라마에서는 상처투성이의 수비력이 높은 여자 주인공에게 포클레인처럼 돌진하는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무리 여자 주인공이 밀어내도 그 남자 주인공은 끝까지 그녀 곁에 있어 철옹성 같은 그녀의 마음을 녹이고 상처를 치료한다. 하지만 그건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꿈같은 일이다. 현실에선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며 다가오는 사람이 없을 테니.


이런 내가 꿈꾸게 있다면 

누군가의 약함, 상처를 보았을 때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 앞에서 억지를 부리며 자신을 지키는 피로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사실 상처받을 용기 같은 건 없으니. 

그렇기에 설령 누군가의 약함,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아도 실망하지 않고,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길 꿈꾼다. 그렇게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나 자신을 깨부수고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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