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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Oct 10. 2017

신의 퀴즈, 신의 질문


"아.. 씨 필리핀으로 가는 게 아니었어. 태국, 태국으로 갈걸."


영화 [마스터]의 마지막, 교도소 병원에서 꾀병을 부리고 있는 이병현의 대사이다. 마지막의 마지막을 이 대사로 끝 낸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7년 전 작품인 신의 퀴즈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신의 퀴즈는 미스터리 수사물로 희귀병을 찾아내서 수사를 돕는 부검의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이런 독특한 드라마에서 요즘 고민하고 있는 주제들을 맞닥들이다니, 신의 퀴즈란 제목이 꼭 신이 내는 질문으로 다가왔다.



이 드라마는 독특한 소재의 강자인 OCN에서 2010년에 시작되었다. 지금도 시즌제가 드문데 시즌4까지 이어졌다. 요즘은 미스터리 추리물에 익숙하나 그 당시 엄청 신선한 장르였을 것이다. 의학적 지식에 수사 과정까지, 어려운 것들이 모였는데 드라마는 어렵지 않았다. 쉬울 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들이 갖는 고뇌들을 함께 하고 있을 정도로 가깝게 다가왔다. 그만큼 연출과 극본이 열일을 했다는 것이겠지.




죽은 시체를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부검의들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대면하며 산다. 그렇기에 삶에 대해 더욱 진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부검하기 전 잠시 갖는 묵념 장면은 매 회 등장한다. 이런 진지한 자세가 좋았다. 짜임새 없이 잔인한 장면들로 가득 채워 불쾌한 자극만 주는 요즘 드라마들이 오히려 고민 없이 만든 듯, 가벼워 보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영화 [마스터]의 마지막 장면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건 무엇일까? 아마도 죄에 대해 둔감해지는 현상을 말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이병헌은 죄 없는 사람들의 등을 치고 심지어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었음에도 자신의 잘못은  태국이 아닌 필리핀을 선택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속은 그들이 멍청한 거고 멍청한 게 나쁜 거지 똑똑한 자신이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을 분명 갖고 있을 것이다.


요즘 '나는 죄 없다, 나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주 한다.  '괜찮아.'라는 말의 범람. '그럴 수도 있지'의 태도. 무엇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논점을 피해 가는 비겁함이 삶을 물들이고 있는 듯하다.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각자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지금, 우리가 혼란스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작가는 2010년도에 일찍이 말하고 있었다는 게 놀랍다.



인간이 태어나는 방법은 한가지 이지만,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수 없이 많다. 무수한 죽음의 방법 중, 자신의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종의 행복일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은 단순히 무언가를 증명하는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마지막 행복을 온전히 되찾아 주고 신의 물음에 충실히 답안지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리들 자신이 진정한 인간임을 증명받을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신이 아닌 죽은 자들로 부터 산 자의 자격을 부여받은 것이다. 우리 모두. 어쩌면 그것이 신의 목적이었을지 모른다. 가혹한 문제를 던지고 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닌 죽음이라는 거울을 우리에게 비춰주는 것. 우리는 내일 또 다시 거울과 대면할 것이다.        
-시즌1. 마지막 나레이션-



이후 작가는 굿닥터, 블러드와 같은 의학 요소에 인간애를 담은 드라마를 썼고 최근에는 김 과장을 썼다. 세상에 대한 냉철함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잃지 않는 건, 그가 전작을 통해 보여준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 덕분이 아닐까 싶다.


행복하게도 류덕환 배우의 전역과 함께 신의 퀴즈 5가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거대 조직의 실체는 밝혀질 것인가? 2017년 지금 그가 보는 삶의 자세는 무엇일까?


이 드라마를 통해 생각하게 되는 삶에 대한 신의 질문이 나는 궁금하다.


★ 위 손글씨 사진을 개인적 사용(프사, 배경 등) 및 리포스트 등 모든 이용의 경우, 출처를 꼭 밝혀주세요. 더불어 수정은 안됨을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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