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보 Sep 25. 2017

팩트체크, 아르곤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기사들이 뜬다.

우리는 그 기사들을 믿고 본다.

왜? 기자들은 소명을 갖고 그 직업을 선택한 전문가들이니까, 전문가들에게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확인되지 않은 기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과도한 경쟁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라고 하는데,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사과는 없다. 정정 보도를 한다 해도 티 나지 않게, 소극적인 방법들 예를 들어 자막이나 앵커의 짧은 한두 마디가 전부다. 깊은 사과를 느낄 수가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
믿음에 배신당하는 일이 많아지자,

우리 사회에 "팩트 체크"라는 말이 생겨났다.




아르곤(Ar).
원자번호 18번. 산소가 다른 물질을 산화시키지 못하게 막는 안정화된 기체를 말한다. 산소가 오염되지 않도록 막는 것처럼, 가짜 뉴스들에 진실이 왜곡되지 않도록 오직 팩트로 승부하는 HBC 방송사 탐사보도팀의 상징적 이름이기도 하다.


사실 아르곤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다.
한 발 앞서 방송된 SBS "조작"이란 드라마에서 이미 거짓과 싸우는 언론인들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소재가 비슷해 지겨울 것 같은 선입견이 기대치를 낮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드라마를 보기로 한건 고작 "8부작"이었기 때문이다. 부담 없는 회차.


짧은 회차이기 때문인가, 드라마는 한 회차마다  많은 내용을 담았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지만 부드럽고 짜임새 있게 흘러갔다. 보는 내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이 느껴졌다.


드라마 "조작"과 다른 점도 있었다.
"조작"이 주인공 한무영(남궁민)이라는 개인이 겪은 사건을 중심으로 언론계의 거짓과 위선, 그 조작들을 파헤치는 것이라면, "아르곤"은 주인공 한 명이 아닌 탐사보도팀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기사를 기획하고 보도해야 할 이야기들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모습을 보였다. 꽃피는 연애도 없다. 주인공 인물의 개인사에 초점이 맞춰져 산으로 가버린, (외국 수사물의 한국작이라는) 어떤 드라마에 비해 훨씬 더 세련된 미드 보는 기분을 주어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게 하였다.



이들은 오래 걸리더라도 진실을 찾기 위해 인내하고, 혼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 겁도 먹고, 궁지에 몰려 버티기도 하며, 욕을 먹더라도 진실만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 과정 속에서 유독 뛰어난 한 개인의 역량이 아닌 함께 하는 팀의 모습을 보여준 점이 좋았다.

팀원들은 주인공 김백진을 사이코라고 부른다. 화내고 윽박지르고, 독설 장착! 에 그의 눈빛만 봐도 팀원들은 덜덜 떨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그와 10년의 시간을 함께 했다는 건, 그를 믿는다는 반증이겠다.


김백진은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강점을 알고 있는 리더이다. 그리고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애쓴다. 그가 앵커에 지원한 것은 개인의 사리사욕이 아님이 그래서 분명하다. 팀원들 모두가 그의 앵커 지원을 지지하지 않는가.

그는 자신의 자리가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임을 잘 알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흔들리는 팀원들을 향해 그는 말한다. "괜찮아. 자 일하자." 홀로 한숨을 쉬더라도, 팀을 진정시킨다. 앵커 선발을 앞두고 법정에 나가 조작된 진실을 스스로 고백함으로 자리가 아닌 팀원의 결백을 지킨다.




그가 팀원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고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며 나아가는 모습은 그의 사수인 최근화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최고 앵커 자리를 떠나는 최근화는 김백진에게만 자신의 말기 암 사실을 밝히며 말을 남긴다.


"뉴스 나인’의 앵커가 된다는 것은 HBC의 대표 목소리가 되는 거다. 지금처럼 편향된 색깔에서 벗어나 진짜 보도를 할 수 있다. 지금이 보도국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내가 하지 못한 걸 네가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어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김백진은 아르곤 데스크, 자신의 자리에 엄민호(심지호)를 앉히고 그에게 조언을 한다.

자신을 돌아보며 말이다.

 

"5년이면 데스크 맡을 때도 됐네.
  니 장점이자 단점은 책임감이 지나치다는 거야.
  너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하지 마. 여긴 팀이야.
  민호야, 넌 무게중심이 좋은 사람이야.
  선입견 없이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래서 다들 너한테 의지하고 싶어 해.
  그 균형감을 잘 유지해라. 회의할 때 애들 너무 다그치지 말고.
  핵심만 짚어주고. 나처럼만 안 하면 되지 뭐. 알지?"


최근화는 막내인 이연화에게 자신의 마지막 인터뷰를 맡긴다.

오승용, 박남규는 어느 사이 이연화를 용병 아닌 팀원으로 인정했고,

허종태는 이연화와 함께 취재에 나선다.

백작 가는 배신의 행동을 고백하는 막내 작가에게 말해줘서 고맙다는, 이해의 위로를 준다.
휘둘리지 말자며 자신을, 후배를 독려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관심. 팀원을 향한 믿음이 보였다.

그렇게 선한 모습이 밑으로, 밑으로 흘러간다.

혼자 다 가지려 하지 않고 하나, 하나 물려주고 떠난다.


자신의 일에 대한 긍지, 자부심 그리고 팀에 대한 신뢰.

기자들의 치열한 삶, 진실을 대하는 자세도 멋있었지만

팀워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주는 울림도 컸다.

드라마틱하지 않은, 무덤덤한 연출이 내겐 더 한몫한 것 같다.


아르곤은 단 2회가 남은 상황이다.
미드타운, 그리고 제보자의 죽음, 김백진의 행보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왠지 이대로 8부작씩 해서 계속 시즌제로 나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시즌2에는 육 작가가 돌아왔으면 좋겠고, 드라마이지만 때마다 시대를 반영하는 HBC의 기사를, 거짓에 맞서 밝히는 진실들을, 그렇게 함께 가는 팀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 아르곤 마지막회 김백진의 대사가 마음에 많이 남았다. 브런치 상단에 나는 말했다. 진실을 확인하는 일을 기자들에게 맡겼다고. 나는 책임을 전가해 놓고선 떳떳했다. 부끄럽게도 -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모두가 판단의 역할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의 온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