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랑하는 사이> (2017, jtbc)
초등학생 때 기억이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어릴 적 일들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때의 일은 생생하다. 학교 갈 준비를 하다 텔레비전 앞에 주저앉은 엄마 옆에 서 있던 불안한 그 느낌. 아침 7시 한창 바쁘게 출근을 하는 시간, 아빠가 회사로 가기 위해 꼭 건너야 했던 다리.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시절 우린 아빠와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빠의 소식을 알게 되기까지 그 시간은 공포 그 자체였다.
감사하게도 아빠는 평소보다 빠르게 다리를 지났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빠는 출퇴근 길 한강 위를 지날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질 때가 있었다고 말하셨다. 그때의 공포는 우리 가족의 삶에 잠깐으로 그치고, 순간으로 지나갔지만 어떤 이의 인생에는 그 순간이 잠깐이 되지 못했다.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소개는 다음과 같다.
“붕괴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가는 과정을 그린 멜로드라마”
보통의 드라마였다면 붕괴사고는 두 남녀가 사랑하게 되는 도구적 수단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말하고 싶은 사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 오프닝 타이틀은 다른 드라마들과 다르다. 보통 엔딩 크레디트에 나올 법한 제작, 프로듀서, 촬영, 조명 등 스텝 정보가 앞서 나온다. 그리고 그 뒤로 몇 개의 이미지가 지나간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떠오를 어느 날의 부서지고 무너진 조각들.
알쓸신잡 2 마지막 '강남'편에서 유희열과 황교익이 '청담' 지역 비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비에 새겨진 글을 통해 우리는 청담이 과거 어떠한 곳이었고,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심경을 알 수 있었다. 패널들은 '이러기 위해' 과거 조상들이 비를 세웠던 거구나, 깨달음을 나누었다. 그들이 말한 '이러기 위함'은 '기억하기 위함'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회차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오프닝 타이틀을 배치한 작가와 감독의 의도가 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린 이 모든 슬픔의 시간을 기억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생각은 6화부터 본격적으로 만드는 추모비와 마지막 회에서 유진의 대사에서 확실해졌다. 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 다시 쇼핑몰을 짓기로 한 청유 건설은 언론을 잠재우기 위해 일종의 보여주기 식으로 추모비 제작을 지시한다. 그리고 이 일을 사고의 희생자 가족이자, 피해자인 강두와 문수가 맡는다. 처음에 강두는 이 딴식의 위로가 무슨 소용이 있냐며 분노했고, 만들어진 추모비를 부시기에 이른다. 그러나 오랜 시간 추모비를 만들어 온 장인의 한 마디가 강두의 삶에 새로운 마음을 심었다.
죽은 사람만 기리자고 세우는 거 아니에요. 남은 사람들, 소중한 사람 보내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찾아와서 맘껏 슬퍼하라고 만드는 게 추모비야. ‘우리도 잊지 않았다.’ 이 돌덩이 하나로 위로해 주는 거라고.
강두와 문수는 다시 추모비를 만든다.
이번에는 모양만이 아닌 진짜 의미를 담기 위해 사고 희생자 가족을 만나러 다닌다. 이런 두 사람의 행동을 좋게 보지 않고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두 사람의 방문을 반기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지나간 일이다’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정말 지나간 일이라면 싫은 소리를 할 이유도, 반기지 않을 이유도 없다. 지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여전히 그날의 슬픔 속에 웃지도 울지도 못 하고 있다. 강두는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면서 깨닫는다. 살아서 불행했던 사람들의 인생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사고로 죽은 사람만 희생자인가? 아들이 죽은지도 모르고 십 년을 넘게 혼자 기다리다가 돌아가신 분의 이름은 잊어도 되는 것인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이 질문이 내내 잊어지지 않았고, 우리들이 해야 할 일로 말한 “기억하는 것”이 마음에 남았다.
추모비는 설립 과정을 통해 마음에 던진 ‘기억하는 것’의 의미를 드라마는 유진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한번 도전한다.
건물 붕괴의 책임이 있던 ‘청유 건설’ 은 당시 모든 책임을 주원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에 떠넘기고 회피한다. 유진은 당시 어렸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일로 아버지를 잃은 주원을 위로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두려웠고 막연한 죄책감에 붕괴사고도 주원도 외면했다. 그렇게 5년이 흘렀고 모두 잊은 듯 살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똑같은 실수가 반복됐고 크고 작은 사고로 이어졌다. “불편하니까, 시간이 지났으니까, 보상금 받았으니까. 그렇게 잊기 시작하면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같은 일이 반복되죠.” 이 대사는 뼈를 때렸다.
강두와 문수가 추모비를 만들며 과거 사건을 대면했듯 유진은 ‘청유 건설’로 돌아와 대외협력팀장이 되면서 주원과 갈등을 빚었고 그 갈등 속에 과거 사건을 다시 기억해 낸다. 그리고 그녀는 청유 건설의 대표가 되어 건설계의 오래 관행이었던 외주화와 다단계 하도급을 일절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이는 13년 전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청유의 의지임을 밝힌다. 과거를 잊지 않은 그녀가 마침내 책임을 지는 자리로 나아간 것이다. 사실 굉장히 드라마틱한 결정이라 본다. 하지만 드라마이기에 할 수 있는 결정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드라마는 기억하는 것의 의미가 잊지 않는 것과 더불어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 결정과 행동으로 나가는 것이란 걸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상처를 회복하고, 위로받고 극복하는 그 사람들 사이에 뭐가 있어야 하는가 물었을 때 그 답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드디어 ‘멜로’에 관한 이야기인가? 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랑은 너무 작다.
강두가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약장수 할머니가 떠났을 때 그는 또 한 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이런 슬픔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번에도 세상과 담을 쌓았지만 그 담벼락 앞에 이번엔 문수가 있었다. 그가 슬픔을 온전히 쏟아내고 올 수 있도록, 돌아왔을 때 혼자가 아닐 수 있게 문수는 기다려줬고 강두는 그 사건 이후 처음으로 슬픔을 슬퍼할 수 있었다. 3화에 나온 문수의 나레이션처럼 이들은 다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을 그 자리에 묶여 있지도 않을 것이다. “사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왜 이렇게 다를까, 시선의 차이와 간극이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고 김진원 감독이 말한 것처럼, 너와 나, 문수와 강두, 주원과 유진 모두의 사이엔 간극이 있지만 그 사이를 사랑이 들어오면서 이들은 상처를 회복하고, 위로받으며 조금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 상처가 사라지거나 완벽히 괜찮아지는 일은 없을 테니, 그 간극을 메우는 ‘사랑’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말하는 ‘사랑’은 완벽한 괜찮음, 완전한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약장수 할머니는 너무 애쓰지 말라고 했다. 애써서 될 거였으면 이미 되었을 테니까. 애쓰는 마음이 아니다. “슬프고 괴로운 건 노상 우리 곁에 있는 거니까, 그 대신 더 좋은 사람 만나서 더 재미나게 살면 돼. 너는 그렇게 할 수 있어, 걱정 마” 이 말처럼 텅 빈 마음 사이, 사이를 지나갈 수 있게 서로가 서로의 다리가 되어주자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가는 모습이 마치 사랑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겪은 일들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그들 안에 있다. 한 사람을 위해서 있는 힘껏 행복해지려고 하는 마음도 생겼다. 과거 일에 대해 억지로 덮고 잊고 무시함으로 끊어내려 했던 그때보다 이들이 서로 만나서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고 아픔을 드러내었을 때 더 행복해져 갔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이들은 이미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편하지 않은 드라마임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드라마를 간절히 추천하는 이유는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과 개인적인 상처를 보듬어가는 ‘사랑’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 21. 8. 수정하였습니다.
그동안 #기억하자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냥사랑하는사이 가 드디어 끝났다.
마지막에 강두의 간암 소식에 이보소 작가 양반! 이래야만 했냐!(feat. 김래원) 싶었다.
강두는 극적으로 살았다. 드라마니까 가능한 일이다, 삐죽거려지지 않았다.
어두운 시간을 혹독하게 살아온 강두, 문수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런 기적이 한 번쯤은 올 수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나는 이들의 행복을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