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tvN, 2018)
[Live] 경찰이 시민(국민)들에게 공권력으로 각인되기보단 대다수의 경찰이 이야기하는,
제복 입은 성실한 국민과 시민, 민원과 치안을 해결하는(시달리는) 감정노동자로 기억되길 바라는 염원을 담으려 한다. -드라마 LIVE 기획의도 중.
어떤 직업은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있다. 가령 교사는 모범적일 것 같고, 의사는 건강할 것이고, 경찰은 정의롭고 사명감이 투철할 것이라는.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어렸을 때 직업에 대해 고정된 이미지로 배워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그 이미지는 몇십 년, 아니 세기를 거쳐 축척된 사회적 산물이다. 수학공식처럼 그대로 굳어진 이미지는 그대로 따라가기도 하고, 자연히 기대하게 되면서 그렇게 또 굳어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도 정신 상담을 받기도 하고,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는 드라마 감독도 사랑이 무서울 수 있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앞에 든 정신과 의사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혜수(공효진 분)고, 드라마 감독은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 등장하는 준영(송혜교 분)이다. 작가는 그의 작품에서 직업이나 상황 등으로 쉽게 대체해버리는 '인물'에 집중한다. '왜 그는, 그녀는 그랬을까?' 말이다.
드라마 <라이브(tvN, 2018)>는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희경 작가가 지구대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한 건 촛불집회 때였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원해서 이 자리에 있는 건가'에 대한 질문이 드라마 <라이브>가 되었다. 그리고 2화에 작가가 의문을 품었던 생각이 연출된다. 학교 총장실을 무단으로 점유한 학생들을 경찰들이 끌어내던 장면.
그 장면에서 정오(정유미 분)와 상수(이광수 분), 그들의 동기들은 그 현장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지시를 받으며 움직여야 할 자신들이 곧이어 무언가를 하게 될 상황이 오고 있음을 무서워했다. 버티면 다친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상수는 진압 과정에서 팔을 다치고 반깁스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보다 학생들이 더 많이 다쳤을 거라고 씁쓸하게 말하던 장면에서 드라마를 보며 밥을 먹고 있던 나는 목이 메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원해서 이 자리에 있는 건가?'
예전에 소개팅으로 경찰이 직업인 사람을 만났다. 그는 지구대 생활을 마치고 수사팀에 들어간 지 몇 년 되었다고 했으나 그가 들려준 이야기의 90%는 지구대 때 겪은 일이었다. 그가 근무한 지구대는 험하기로 유명한 지구였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그가 마주한 여러 형태의 부패한 시체 상태와 옥상에서 떨어져 두개골이 깨진 사람의 모습이 어떠한지, 칼에 찔릴 뻔했을 때의 공포감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런 현장도 힘들지만 가장 그를 힘들게 했던 건 '민원'이었다고 했다. 차라리 죽은 시체를 마주하는 게 낫겠다 싶은 때도 있었다고.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전부 다 들은 건 아니고, 그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나는 어쩐지 그에게서 지쳐있는 느낌을 받았다. 첫 살인 사건 현장을 다녀온 정오에게 선배 명호(신동욱 분)는 평소 주량의 반만 마시고 자라고 조언한다. 그 순간은 술의 힘을 빌릴 수 있을지 몰라도 다음 날엔 또 마주할 다음 날의 현장이 있기 때문이다.
이 힘든 일을 이들은 왜 하는 걸까. 나는 자연스레 '사명'을 떠올렸다. 그 선입견은 너무도 자연스레 정의감, 강인함을 함께 요구해 왔다. 하지만 이제 막 경찰이 된 정오, 상수, 혜리(이주영 분)나 승재(백승도 분)는 먹고살기 힘들어, 밥벌이로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고자 경찰 시험을 치렀다. 그렇게 경찰이 된 이들에겐 사명감보다는 잘리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버텼고 성과를 보며 일을 했다. 정의감, 사명감 같은 것은 없고 죽은 시체를 보고 나서 두려워 떠는 그냥 평범함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경찰로서 현장을 다니고,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두려워하며 도망치기보다, 두렵지만 더 깊이 들어가는 쪽을 택한다. 어쩌다 경찰이 되었지만 어차피 된 경찰이라면 능력 있는 경찰이 되고 싶어 졌고 그렇게 어떤 경찰이 좋은 경찰인지를 고민하기에 이른다. 이들의 고민은 직업적 사명을 감당해내는 선배들을 보며 시작되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그들이 보고 배운 선배들의 입에서 사명감을 잃어가고 있다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이 그들에게 주어졌고, 이들은 그 사명을 착실히 수행하려 한다. 사명감은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그 마음가짐을 자꾸만 무너트린다. 우린 그들에게 사명을 요구하지만 그런 그들은 누가 지켜주고 있는지. 그들의 사명감 하나 지켜주지 못하면서 나는 그들의 목숨을 버리고 내 목숨을 지켜달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밤새 술잔을 기울이던 극 중 인물들을 보면서 경찰이 직업이던, 어쩐지 지쳐 보이던 그 사람이 떠올랐다.
"누가 감히 내 사명감을 가져갔습니까!" 라며 징계위원회에서 울부짖던 오양촌(배성우 분)은 다리가 나은 뒤 교통경찰로 복귀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는, 아니 그들은 또다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러 간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결말은 우리 사회가 경찰이란 직업에 가진 이미지를 더 단단하게 하는 덧칠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이 경찰이 되는 데 있어 드라마틱한 설정을 두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과거 사건의 피해자가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경찰이 된다거나, 경찰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어 그러한 경찰이 되려 하는 등의 서사가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밥벌이를 하기 위해,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직업'으로 선택한 경찰이다.
하지만 보는 것과 실제는 다르고, 생각한 것과 현실은 다르다. 등장인물들은 이 직업이 단지 직업일 수 없음을 현장에서 부딪히며 깨닫게 되었고, 스스로 '경찰'이 되기 위해 진부해져 버린 경찰의 이미지 속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거기에 의미가 있다. 처음부터 경찰이 어디 있나, 우린 사람이고 경찰이 되어가는 거지. 그러니 경찰도 똑같이 가정을 느끼는 사람임을 우리에게 기억해주길 당부하는 듯하다.
법원 근처에 사무실이 있어 자주 시위가 있다. 탄핵으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울 때라 하루 걸러 하루 길 전체를 막고 이뤄지는 시위들이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비가 억수처럼 내리는 날에도 경찰들은 길거리 위해 서있었다. 하루는 대기조가 비를 피해 건물 로비로 들어왔을 때 회사 관계자분이 들어와 목이라도 축이고 가시라며 탕비실을 열어준 적이 있다. 이 글을 쓰는데도 비가 온다. 그날에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려는 그저 사람. “열심히 해주고 계시네요,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한마디부터 시작될 수 있다. 믿어주는 마음에 분명 반응해줄 것이다. 부디 이 드라마가 '사명감'을 원래의 온도대로 지켜지게 돕는 방향 잡이가 되어주길.
드라마 라이브를 검색하니 운영 중인 브런치가 뜨네요.
인스타나 페북으로 홍보하는 드라마는 많이 보았지만 글이 위주인 브런치를 이용하는 드라마는 처음 보네요.
브런치에서는 지구대 경찰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혀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만든 의도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좋네요. 드라마 라이브 브런치에도 한번 들려보시길:) https://brunch.co.kr/@tvlover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