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시를 읽기 시작했다.
왜, 어쩌다 시를 읽기 시작했을까?
생각이 들어 쓴 글이 한 달 전이되었다. (나는 어쩌다 시를 읽게 되었을까?)
나는 왜, 어쩌다 그리고 언제부터 시를 읽기 시작했을까?
드라마의 모티브가 되었을지 모를 동명의 책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저자 정재찬 교수는
'각종 스펙 쌓기와 취업에 몰두하느라 마음마저 가난해져 버린 학생들에게 이 책을 통해 시를 읽는 즐거움을 오롯이 돌려주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고 했다. (네이버 책 정보 중)
시를 읽는다고 하면
"와 시 읽는 여자네"
"오 감수성 터져"
라는 반응이 나온다.
나도 아직 시를 읽는 게 어색하다.
보고서, 계획안, 품의서 등
의도가 명확한 문장에 익숙하고
틀과 규격이 정확한 빽빽한 글들이 주변 삶을 덮고 있기에
행간에 여백이 많은 시를 보고 있으면 어색해져
뭐라도 채우려는 듯 억지로 저자의 의도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잘 있냐고
건강하냐고
그렇게만 적는다.
나머지 여백엔
촘촘히 내 마음을 적으니
네 마음으로 보이거든 읽거라.
써도 써도 끝없는 사연을
어찌 글자 몇 개로 그려낼 수 있으랴.
.
.
.
보고 싶다.
-여백, 류석우"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시의 여백은 그 마저도 글자였고 의미라는 걸 알게 되었다.
분주한 일상, 많은 소리에 지친 내가 시를 읽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분명히 전하고 싶지만 글자 몇 개로 그려낼 수 없는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있다면 아마 시에 빠져들 것이라, 감히 예언해본다. 문장 속에서 억지가 아닌 제대로 된 나만의 감동을 받게 되니 이제는 시를 곁에 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민호는 시를 읽는 보영을 멋있다고 말했지만 실은 유치하다,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선하고 성실한 보영에게 빠져드는 모습이 시에 빠지는 것 같아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이 무겁다면,
마음이 소란스러운데 무어라 단정 짓기 어렵다면,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발소리,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면,
지금 그대에게도 시가 필요하다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우리 삶엔 (오글거린다 해도) 낭만이 필요하기에.
드라마 '시를 잊은 그대에게' 속 소개된 시를 업로드해 나갑니다. (인스타 @by. y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