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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ug 06. 2018

<라이프>

<라이프>가 촬영을 마쳤다는 기사를 보았다. 하나 이제 겨우 4회의 방송을 마친 <라이프>는 이제 시작이다.


그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법조계를 다루는 드라마는 봐주기 수사, 윗선의 압박, 밝혀지는 권력층의 음모, 이에 대항하는 사람에 관한 내용들이다. 그리고 부조리한 세력에 맞서는 사람들로는 대게 열정 가득한 신입이나 멋 모르는 초임 또는 어린 시절 권력층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해 복수의 칼을 갈고 그 자리에 온 사람들이었다.


네티즌들의 댓글을 보고 대본을 쓰는 건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매 회 모든 이들의 예측을 뒤엎었던 <비밀의 숲>의 이수연 작가는 그래서 (뒷) 통수 작가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리고 그녀가 보여준 법조계는 달랐다. 열정 가득한 신입도 없었고 복수의 사연도 없었다.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경찰이 있었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검사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나올만한 소재는 다 나온 것 같은데 <비밀의 숲>은 매회 새로운 이슈를 던지며 거침없는 속도로 법조계를 파헤쳤다. 마지막 회의 이준혁을 보고 느낀 소름은 드라마가 줄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었다. 이 드라마는 긴 호흡의 영화였다.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조승우 씨는 “본질은 뿌리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작가님을 쉽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글을 읽었을 때 ‘본질이 무엇인가’,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이번에도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실에 대해 알 수 있는 작품이”고 말했다. 배우 이동욱 씨는 “대본이 사실 한 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어떤 의도로 이 신을 배치했는지, 이 대사가 왜 나오지 생각이 든다. 후반부에 가서 앞에 궁금했던 것이 점점 풀려나간다. 작가님의 독특하고 섬세한 화법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빅피처가 특기인 이수연 작가님의 드라마를 고작 4회만 보고 <라이프>에 대해 글을 쓴다는 건 성급한 일이라 생각한다. 드라마가 시작하는 지금 내게 집중된 한 가지를 먼저 나누고 싶어 이렇게 성급한 글을 쓴다.


 



드라마를 같이 보는 언니는 매 회 비슷한 말을 했다.

“뭐야 조승우 악역이야? 아니야?? 문소리가 악역인가? 문성근 아저씨는 백 프로 악역이야!”


나도 처음에는 조승우가 악역인 줄 알았다. 이제까지 그려온 의료계 드라마에서 사장은 수익만을 원하는 욕심쟁이로 갈등을 조장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학습된 봐로는 조승우는 악역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사이다”구”사장이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주장 뒤에 숨은 의사들의 이기심을 콕 집어 내 촌철살인을 가하는 그의 대사는 특급 사이다였다. 엄혜란과의 케미는 웃음을 불러일으키고 대지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이 거래를 성사시키고 싶지 않은 그의 마음도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사장이었지만 실제로는 고액 연봉을 받는 직장인에 불과했다. 악역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모르게 정이갔다. (같은 직장인으로서 엄혜란의 자리가 옮겨지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학습된 바로는 사장과 대립하는 의사들은 선한 캐릭터여야 했다. 하지만 비치는 의사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뒤가 구리다. 의사들의 근무 환경, 환자들의 치료 등 타당한 말들을 늘어놓지만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표되는 예진우 마저도 항상 긴장돼 있고 꽤 차갑다. 그가 이 일에 끼어든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궁금증이 그를 마냥 선한 역할이라 생각하지 않게 만든다.


다시 한번 제작발표회에서 배우들이 한 말을 인용하겠다.

“진우는 보통의 의사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 때문에 마음의 변화가 일고 인간을 위한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인물이다.”

“구승효는 병원의 적자를 뜯어고치기 위해 총괄 사장으로 부임한다. 병원에서 배워가는 게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 변화해가는 모습도 나올 거 같다. 초반에는 강자에게 엄청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 재수 없는 ‘극혐’ 캐릭터다. 그게 뒤로 가면 어떻게 될지, 시청자들이 봐주시길 바란다.”


악역/선한 역 이렇게 하나의 캐릭터로 제한하기에 인간이란 존재는 단순하지 않다. 상황, 가치관, 대상에 따라 사람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 나만해도 하루에도 여러 번 착했다, 나빴다 하기를 반복한다. 인간이란 존재가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다양한 사건들 속에서 드라마 속 인물들도 한 결 같을 수 있겠는가.


이수연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 내가 감히 뭐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가님의 작품을 기다린 마음을 말하자면, 작가님은 같은 소재도 다르게 나타낸다. 그건 당연히 조직의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있었겠지만, 그 조직을 파헤치듯 사람의 이면도 함께 파헤치기 때문인 듯싶다. 드라마를 보며 인물을 이해하다가도 원망하게 되고 미워하다가도 안쓰러워하게 된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 없이 그저 사건만을 본다면 놓쳐지는 본질적인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예를 들어 나쁜 행동인걸 알지만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잘못한 사람을 해당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만으로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 아무리 정의로운 사람이라도 그 자리에 들어가서 같은 잘못을 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 만약 흔들리지 않았다면 그러할 수 있었던 이유도 우린 알아야 한다. 사람과 시스템 모두, 뿌리를 찾아야 본질적인 나아짐이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잘못된 유추일 수 있지만 나는 <라이프>라는 제목이 병원에서 다루는 ‘생명’ 말고도 다양한 ‘삶’이 만들어 낸 인간의 내면에 대한 의미도 담고 있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관심에서 비롯될 것 같다. 뉴스, 시사프로그램보다는 좀 더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라는 형태를 통해 우린 많은 사회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관심들은 여러 변화를 가져왔다. 1-4회까지 진행된 <라이프>는 병원의 이익 추구를 위한 구조조정에 시작해서 드라마에서 조차 잘 다루지 않으려 하는 의료 사고까지 흘러왔다. 죽은 원장의 비리까지 더해진다면 나올만한 의료계 소재는 대략 다 나온 듯싶다.(아, 병원에서 사랑하는 이야기는 아직이지만:)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제 시작이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의료계에 대한 어떠한 사실들을 알려줄지 궁금하다 못해 긴장된다. 법조계도 그렇지만 의료계는 우리 삶에 굉장히 밀접한데 비해 너무나 넘사벽인 영역 아닌가.


작가님이 던져주실 메시지에 주목하며 다음 회를 기다린다. 이 드라마로 우린 어떠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성과급제는 마약 같아요. 중독성이 있어요. 인센티브가 동기부여가 되는 직종들도 물론 있죠. 근데 어떤 일에선 그 업종 사람들을 파괴시켜요. 자발적으로 나서야 하는 일들, 책임의식, 보람이 중요한 일들, 우리 일요. 

스위스 마을 사람들은 그걸 따졌던 거예요. 그래 맞아 어딘가에 짓긴 지어야 해. 우리가 책임이자. 그게 옳은 거야. 그런데 거기에 돈이 들어와 버리니까 생각하는 회로 자체가 바뀌어버렸어요.

뭐가 옳은 거지 에서 뭐가 나한테 이득이지, 이걸로. 일단 그렇게 돼버리면 왜 그 위험 한걸 내 앞마당에, 이게 결론이죠. 저 많이 봤어요. 그 이전으로 못 돌아가는 사람들. 움직일 때마다 돈이 생기는 성과급에 중독돼서, 책임지자, 이게 옳아. 그게 아주 없어져 버린 사람들. 저는 구승효 사장님이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일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릇된 행동을 바로 잡을 기회를 준다는 것. 용서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다.  그릇된 행동이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후회하는 반성과 되돌리고자 하는 양심이 있을 거라고 믿기엔 우린 이미 상처를 받았으니까. 묵묵히 걸음을 내디뎌가는 사람들과 그에 반응될 사람들. 그래 반응될 사람들이다. 영향은 선한 쪽이 끼치게 마련이다 믿는다. "




드라마 라이프가 끝났다. 누군가는 따로 떼어내면 좋지만 각 각의 캐릭터에 많은 이야기가 있어 어느 이야기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공감 안 되는데 의사들끼리 진지하기만 하다고도 했다.



구승효, 예진우 이 곳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반응할 때 각 자의 삶에서 경험했던 일이 영향을 끼친다. 아버지를 일찍 잃음에서 나온 책임감이 예 선생을 병원을 너머 인간의 본질까지 생각하게 했고, 생명의 숭고함이 더한 병원이란 곳에서 구 사장도 많이 배웠고 스스로 변해갔다. 우왕좌왕하던 의사들도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저지시키고 버틸 힘을 기르는 변화를 계획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각 각의 캐릭터의 이야기는 따로 노는 이야기라 볼 수 없다. 배우들도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진우는 보통의 인간이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 때문에 마음의 변화가 있다고. 구 사장 역시 병원에서 배우며 스스로 변화해나갈 것이라고. 반응하는 여러 인간의 군상에 대해 이야기할 거라는 제작진의 의도에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가 공감가지 않는 그들만의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언뜻 보기에는 병원에서의 권력을 다투는 듯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병원 진료의 실태, 의료계 종사자들의 업무 과중과 그 배경, 거대 자본과 결탁, 의료민영화 그것이 의미하는 것 등에 대해 잔인하다 느껴질 정도로 현실성 있게 이야기했다. 평생을 사면서 법정에 서지 않은 사람은 있으나 병원에 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우리 모두에게 미치는 이야기가 된다.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작가의 조사력이 거의 종사자 수준이라고.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의료계를 배경으로 쓴 건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해서가 아닐까? 나는 이 드라마가 왠지 사회면에서 종종 언급될 것 같다. 이미 의료기계 판매 업자가 의사를 대신해 시술했다는 기사가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을 인용하며 나왔으니. 


"상국 대학병원, 지켜볼 겁니다."

구승효 사장의 마지막 인사처럼 우리도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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