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loser.

by 양보

스물여덞 하고도 절반이 지난가을에 사표를 냈다. 출판부서로 옮긴 지 일 년 만이다. 당시엔 서른이란 숫자가 커 보였다. 그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다시 없을 도전이라 생각하며 나는 사표를 내고 방송작가 아카데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소위말해 먼저 살아보신 분들의 조언을 따라 시작한 도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사표를 내고나니 가장 많이 들은 소리가 정신 차리라는 말이었다. 네 나이가 몇인데 무모하게 이러냐, 정신 차리고 하던 일이나 하라, 글로 먹고 사는 게 쉬운 줄 아냐 등 등 걱정을 가장한 나무람이 쇄도했다. 나의 도전은 길지 않았다. 몇 개월의 고민 끝에 나는 다시 회사원이 되었다.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했다. 다이어리 뿐만 아니라 작은 공모전에 글을 보내기도 하고 여러 플랫폼을 전전하며 생각을 적어왔다. 하지만 직업으로 삼을 정도로 잘하진 못 했다. 그래도 교육을 받으면 어느 정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 정도의 재능이 내게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무엇보다 악착같이 매달릴 자신이 없었다. 나는 좋아하는 주제의 글만 잘 쓰인다. 그러니 직업으로 글을 쓰게 되면 지금처럼 마냥 행복하게 글을 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후에 좋은 글쓰기 플랫폼을 만났다. 직업이 아니더라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로 돌아왔다. 잘하던 일을 선택했고 다시 회사원이 되어 일과 별개로 글을 쓰고 있다.


재미난건 사표를 쓰고 방송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나를 염려했던 사람들이 내가 그 꿈을 접고 다시 회사원이 되었다는 소식에 기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꿈을 이루지 못 한 나를 안타까워했다.

나는 왜 '무엇이 좋다', '무엇을 잘한다' 생각되면 그것을 직업으로 연결하여만 생각했을까. 어째서 '회사원' 은 지극히 평범한 직업으로, 매력이 없다고 생각한 걸까. 그래서 '바라고 원하는 직업'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운 인생이라 생각했던 걸까?


양보 생각, 양보 손글씨



다행히 이 시점에 임경선 저자의 ‘태도에 관하여’를 읽었다. 정리되지 않던 생각이 명확하게 정리된 글로 만나니 반가웠다. 더불어 나를 이해해준 문장에 위로와 힘을 받았다.


작가의 말처럼 나는 하고 싶던 일을 내려놨다. 그저 곁에 두자 자연스러운 행위로 찾아왔다. 취미가 되었다. 여전히 내 글 솜씨는 미비하지만 생각을 나누는 글 쓰기는 여러 방면으로 넓어졌다. 글을 쓰며 좋은 글귀를 따라 쓰던 행동은 캘리그래피(나는 손글씨라는 표현을 더 선호한다만)라는 또 하나의 활동이 되었고, 이러한 활동들을 인연으로 원데이 클래스를 기획하며 지금은 작업 공간을 갖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내가 이러한 꿈을 계속 꾸며 조금씩 실행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누군가의 인생이 멋져 보여도 그 인생만이 성공한 인생은 아니란 깨달음을 얻은 까닭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언뜻 보면 대치를 이루는 듯 하지만, 이렇듯 유기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나의 꿈에 단단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그러니 임경선 작가의 말처럼

좋아하지는 않지만 제법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일이 주는 힘을 기반을 삼으면 좋겠다. 그 안에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며 하고 싶은 일에 힘을 얻는 삶이 되길 응원한다.


성실히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아무도 실패자도, 패배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2019.04.29.에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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