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나랑 어떻게 친해졌지?”
문뜩 궁금해졌다. 기억력이 똥인데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는 기억이 난다.
적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친절하지 못고 너는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참 별 이야기를 다 하고 있으니 문뜩 우리가 어떻게 하다 친해졌는지가 궁금해졌다.
“음.. 뭐.. 아무것도 모르던 때여서?”
“뭘 알았음 나랑 안 친해졌을 거야?
이거 기분 나빠지려 하네ㅋㅋㅋㅋ”
“아니. 뭐라고 표현이 잘 안되는데.
그냥 아무것도 모르던 어릴 때 만났잖아. 그러니 무엇을 본다거나, 무엇을 숨긴다거나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
맞다. 그 말이 맞았다.
나이가 들면 결혼하기 힘들어 진다고들 한다. 이 명제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한 부분에서 동의한다.
나이가 들면서 듣는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혼수는 얼마큼 해야 나중에 뭔 소리 안 듣는다, 결혼하면 이젠 너의 생활은 없다, 애 키우는데 돈이 얼마 든다 기타 등등. 왜 어른들이 결혼을 멋 모를 때 하라고 하는지 십분 이해가 간다. 결혼하기가 두렵더라. 이런 맥락에서 친구의 말도 이해가 되었다.
지금 만나도 너와 내가 친구가 되었을까?
어떤 이는 너의 무심한 말투에 상처 받지 않느냐고 물었었다. 넌 표현이 서툴 뿐 자기 사람들을 살뜰히 챙긴다는 걸 알기에 난 상관없다,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너를 처음 만났다면... 잘 모르겠다. 그때처럼 너를 알아갈 시간이 없었을 것 같다. 지금은 너무 바쁘니까. 거의 매일 널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와 다르니까. 사람을 대할 때 경계함이 심해졌고, 나이가 들면서 좋은 것보단 나쁜 것을 더 많이 보며 나쁜 걸 빠르게 배웠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앞서 내가 그럴싸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불필요한 애를 쓰느냐 널 만나기 힘들었을 것 같다. 그건 사실 특별히 너라서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까닭이겠지. 날카로운 첫인상과 다르게 덤벙대고 길 못 찾고 어디 쿵 저기 쿵 부딪히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 나이와 경력에 맞게 단정한 모습만 보이려고 할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가 좋은 사람이라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친구가 될 수 있다 확신하진 못하겠더라.
지오디가 최근 순례자 길을 함께 걸었다. 함께 순례자 길을 걷던 중 어느 날의 아침, 출발을 준비하는 모습이 20년 전 숙소 생활을 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걸 보면서 계상이 말을 했다.
“나이를 먹어도 그대로냐,
어떻게 하나도 안 변하냐.”
나이를 먹어도 그대로인 건 오랜 친구들 때문인 듯하다.
내가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도 뭐라 하지 않을 사람들. 어차피 ‘그때 우린 그랬으니까’ 하고 오히려 추억을 이야기할 사람들. 부족한 모습을 봐도 ‘얼~ 많이 컸네”라며 웃... 비웃을 사람들. 그런데 기분이 상하지 않는 신기한 존재. 나의 과거를 알고 간직하고 있는 그들과 함께 하면 자연스럽게 과거의 나로 돌아가게 된다. 그때의 우리로 만난다. 그러니 나이를 먹어도 그대로 인 것 아닐까?
함께 고단한 순례자 길을 걷는 지오디를 보면서 20년을 함께한 이들이 오랜만에 모여 떠난 여행이 어떤 위로를 주는지 느꼈다. 이전과 다를 것 없는 서로의 모습이 주는 익숙함 그리고 추억함. 어딘가에선 꼭 꼭 숨긴 나의 옛모습을 서스럼 없이 보여 줄 수 있는 편안함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 그들의 여정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그러면서 나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순수했고 무엇도 제지 않던 그 시절에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나도 여행 가고 싶다.
친한 친구들과 관광 말고 큰 짐을 메고 많이 걷는, 조금 불편한 여행을.
바빠서 메신저로만 이야기하고 있는 건조한 우리의 관계에 다양한 풍경들을 남겨 놓고 싶다.
10년 뒤에 이야기할 추억을 만들고 싶다. 10년 뒤에도 여전한 우리일 수 있도록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