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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an 17. 2019

땐뽀걸즈

시은은 영특하다.

좋은 성적을 가짐에도 시은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닌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녀도 누군가의 물음에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거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엄마의 강요로 그녀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지 못 했다.


그녀의 엄마는 조선소 본사 용접공이었다. 그러나 정리해고를 당하고 현재는 하청 물량팀으로, 이마저도 고용이 불안한 상태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서울로 대학을 보내 놨더니 정신 못 차리고 거제로 돌아와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는 큰 딸을 보고 그녀의 엄마는 시온의 진로를 그녀와 상의도 없이 취업으로 정하여 실업계 고등학교로 보낸 것이다.


시온의 매일은 독이 올라서 있다. 자신의 꿈을 무시하는 엄마로부터, 지긋지긋한 거제로부터, 대학을 가고 싶은 열망으로부터... 그녀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도, 엄마의 고용 상황도 자신이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이유도 무표정한 얼굴 아래로 슬쩍 덮는다. 그리고 필요할 때에 미소를 띠며 그 위에 거짓을 뿌린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여기서 삐끗, 발을 디디면 전혀 다른 장르의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거짓말을 합리적이면서도 명분이 있는 행동이었음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고, 어쩌면 그러한 생각이 그녀를 오만하게 행동하게 했던 것 같다.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혀 삶을 그르치고 주변을 망가트린 인생들을 생각해 볼 때, 그녀의 삶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삐끗, 발을 디디어 추락하는 삶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좌지우지할 수 있을 거라고 만만하게 생각한 땐뽀(댄스스포츠) 반에 입성한 뒤로 그녀의 인생이 바뀐다. 청춘 성장드라마로 말이다.



KBS에서 제작하는 학원물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학교 시리즈처럼 고전물도 좋아하지만 정글피쉬나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같이 장르물을 섞은 드라마들도 재미있게 보았다. 학교에서 연애하는 스토리가 아닌 학교에서 일어나는 청소년들의 일상과 그들이 처한 상황들 그래서 갖게 되는 고민들에 대해 진정성 있게 다루려는 노력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드라마들의 끝은 대게 비슷하다.

좋은 선생님 그러니까 이 드라마에서는 규호 샘 같은 인물을 만나 어른들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갈등을 빚던 친구들과 치고받고 하는 과정 속에 진정한 우정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건강한 성장을 이룬다. 이 드라마도 그런 흐름을 탄다.


다만 이 드라마가 달리 느껴진 건 연출 때문일지 모르겠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느낌이 뭘까 싶어 찾아보니 몇 달 전에 방송된 드라마스페셜 '너무 한낮의 연애'와 연출(유영은)이 같았다. 물론 박현석 연출가와 공동 연출이기에 완벽히 이전 작품과 같다고 할 순 없지만,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느꼈던 몽환적이면서도 신비한 느낌이 이 드라마에서도 느껴져 한 회, 한 회가 독립 영화 혹은 뮤직 비디오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의 사정과 속 마음은 굳이 대사로 옮기기보다는 짧은 내레이션에,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장면들로 대체했다. 대사를 옮겨 적기 위해 화면을 캡처하는데 장면 전환이 빨라서 애를 먹을 정도로 였다.


그렇다고 장면 전화의 빠름이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야기의 속도를 빼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느껴졌으며, 텍스트보다 영상으로 소통하는 요즘식 대화 같이 느꼈다(물론 일도 모르는 이의 주관적인 느낌이다).


요즘 아이들, 이라고 표현을 쓰면 늙은 거라는데- 은 예전처럼 뒤에서 속닥이고 앞에서 모른 척 시치미를 떼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도 그랬다. 아이들은 바로 이야기하고 금방 사과했다. 그 사과에 진심이 있었고 그 마음을 아이들은 무시하지 않았다. 이러한 아이들의 시원시원한 다툼이 실제보다 미화된 연출이라고 해도 개인적으로는 보기 좋아 보였다.



하지만 가장 좋은 이야기를 뽑으라면 나는 한동희 선생의 변화를 들 것이다.

규호 샘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특별히 나은 것이 없어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려준 인물이다. (물론 시온이에게는 순애보적 사랑을 보여준 권승찬도 있었지만) 하지만 직업의식보단 공무원으로의 삶으로 교사를 생각하는 한동희 선생에게도 규호 샘은 믿을만한 어른이 되어주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는 일도 어렵지만 성인이 된 누군가에게 믿고 따를만한 어른을 만나는 일도 힘들다. 하지만 규호 샘은 동희 샘에게 그것도 같은 직장에서 상사로써 믿을만한 '어른'이 되어주었다. 단호할 땐 단호하고 너그러울 땐 한없이 너그러우며, 희생할 줄 아는 어른을 만나 학생을 대하는 교사로서의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동희 샘은 거제에 머물기로 한다. 혹, 땐뽀걸즈를 보겠다면 동희의 선생의 성장 이야기도 눈여겨보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어른을 꿈꾸며, 어디서라도 꼭 만나 보고 싶은 성장 판타지가 있는 "땐뽀 걸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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