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렇게 생각하던 미래에 갔을 때에도 난 또다시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는 거야.”
휴게소 음식이 먹고 싶어 시간이 오래 걸려도 버스를 탔다. 하지만 바라고 기대했던 휴게소에 들렀을 때 나는 잠시 후 먹을 점심을 떠올렸다. 여기서 무언가를 먹으면 점심을 먹기에 배가 부를 것 같아 결국 휴게소의 간식들을 포기하고 버스에 올랐다.
이런 나를 놀리듯 같이 간 동생은 지금은 지금이고 나중은 나중이라는 띵언을 날렸다. 맞다. 이 여행도 숱한 계획 속에 미루다가 올해가 가기 전엔 가야 하지 않겠냐며,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로 급하게 떠난 것이었다. 근 몇 년간 휴게소 자체에 들릴 일이 없던 나인데... 휴게소에 또 올 일이 언제... 있을까? 다시 오기 힘들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상상하던 미래에 왔는데 그 순간 다른 미래에 가느냐 바빴다.
그 날의 여행에서 나는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지만 남은 건 안목 해변의 푸르름과 휴게소에서의 내 모습이었다.
나는 현재를 그런 식으로 참았고, 넘겨왔던 걸까? 만기 된 통장을 그대로 이월해 새 통장을 만들듯 계속 그렇게 넘겨 온 것인가?
사실 그렇다고 불행하다거나 괴롭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나의 삶에 후회가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음에’, ‘나중에’, ‘이따가’라는 말로 현재를 넘겼더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한 게 없었다.
'다음에' 하면 더 잘할 수 있고, '이따가' 하면 좀 더 많이 할 수 있고, '나중에' 보면 사실 그렇게 갖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은 것 같았지만, 정작 했을 때 즐거웠고 만족했으며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작이 되기도 했었다. 어쩌면 나는 그저 짐작함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습관처럼 미래의 나에게로 만족을 넘기려고 했다.
그렇다면 미래의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만족하기보단 미련이 남아 과거의 나를 미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나는 현재의 나보다 미래의 나를 생각하고 있다. 이런 배려를 받는 미래의 나는 과연 행복할까?
지난 주말에 중경삼림을 봤다. 익숙한 노래를 기다렸지만 먼저 만난 건 금성무였다. 영화 속 남자들은 하나같이 참도 잘 기다렸다. "여자들은 기다리는 거 싫어하는데, 기다리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화가 나거든. 나중에는 걱정돼서 미칠걸? 맘이 있었으면 일찍 왔어야지." 극 중 단골가게 사장님이 금성무에게 일침을 날렸다.
그러게요 사장님. 마음이 있었으면 일찍 왔어 여지, 나는 왜 내 마음에게 기다리라고만 할까. 정작 나는 기다리는 거 싫어하면서. 돈도 써본 사람이 쓰고, 노는 것도 놀아 본 사람이 논다고, 만족도 행복도 누려봐야 미래의 나도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무작정 오늘을 즐긴다는 것이, 오늘의 만족감만을 생각하며 소비한다는 것이, 현재를 사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코코카피턴의 사진전을 보면서 꿈을 좇으며 열심을 내는 삶은 미래의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먼저 되고 정확한 건 오늘의 나를 위한 것이란 생각을 얻었다.
나의 열심이,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사실 과거, 현재, 미래 어느 시점을 살던 모두 나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더불어 모든 시간의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후회 속에 잠겨 미움이 생기지 않길, 오래 기다리며 미루다가 놓쳐버리지 않길.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