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가 필요해> 사단이 만든 드라마라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내게 이 드라마를 볼 이유는 충분했다.
<로맨스가 필요해>는 내 또래에게 로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드라마다. 사실 우리의 연애는 멋있지 않다. 드라마처럼 우아하거나 낭만적이기만 하지 않다. 오히려 지질하고 한심하다. 이런 우리의 현실 연애를 <로맨스가 필요해>는 잘 녹였다. 남녀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한 대사로 많은 이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던 <로맨스가 필요해> 제작진이 오랜만에 모여 만든 드라마라니 큰 기대를 했고 현재까지 너무나 만족스럽다.
그런데 왜 제목이 <로맨스는 별책부록>일까?
처음에는 단순히 출판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그런가 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드라마가 회를 거듭할수록 제목이 눈에 보였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서 강단이, 그녀가 다시 시작하는 삶의 이야기가 본편이고, 로맨스는 제목대로 별책부록, 보너스가 아닐까?
츤데레 동생 은호와 달달한 지서준이 주는 설렘이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두 남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여주를 그리고 있지 않다. 더욱이 1화는 가득히 강단이 이야기만 담겨있다. 60분 내내 결혼 후 단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에게 말해 준다. 이 이야기는 단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 자신했던 은호조차 모르는 이야기였다.
1화에는 결혼식에서 느끼는 두려움, 행복했던 추억, 이혼의 아픔, 경단녀에게 차가운 현실 등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여성이라면 경험했고 느꼈을 이야기와 감정이 녹아있었다. 남주의 존재감이 적었던 1화였지만? 나는 드라마에 몰입했다. 그렇다면 이는 로맨스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우리를 끌어당겼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1화에서는 새로운 로맨스를 알리 듯, 맨발로 비를 맞으며 소주를 마시던 강단이에게 왕자님처럼 지서준이 등장한다. 구두를 신겨주는 장면은 너무나 로맨틱했지만 현실감은 없다. 아무렴 어떨까, 로맨스 드라마의 진부한 장치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그 순간 단이가 이렇게 말했다.
"근데 신데렐라 이야기 믿기엔 내 나이가 좀 많아요. 난 내 힘으로 살고 싶어요."
단이의 모습에서 주열매가 보였다. 창피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단이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당당하고 솔직함이 매력이었던 주열매가 자연스럽게 떠 올랐다. 마치 <로맨스가 필요해> '그 후' 주열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는 2014년에 방영되었다. 하지만 시즌3은 연출이 다르다. 이정효 연출과 정현정 극본이 함께 한 작품은 시즌 2까지다. 2012년에 방영이 종료된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 2>로부터 <로맨스는 별책부록>이 나오기까지 약 7년이 걸렸다. 강단이가 결혼을 하고 나서 경력이 단절된 년수와 같다. 억지스러운 짜맞춤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로맨스가 필요하다 외치던 주열매가 결혼 후 7년이 지나 강단이로 다시 세상에 나온 듯이 느껴졌다.
지금 드라마에서는 은호가 자신의 마음을 단이에게 표현하고 있는 중이다. 지서준과의 알콩달콩 데이트도 시작되었다. 그리고 단이가 회사에서 조금씩 인정받고 있으며 조직에서 필요한 존재로 스며들고 있다.
단이는 단단해서 강단이인걸까?
한 때 잘 나갔던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웃었고 조직을 이해했으며 다시 힘을 냈다. 사람을 믿고 사랑할 줄 알았던 그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놓지 않았고 건강한 자세로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삶은 자연스럽게 주목되는 듯하다. 그녀의 모습 하나, 하나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빛이 나지 않은 일부터 다시 처음으로, 신입으로 돌아간다는 그녀의 내레이션이 굳어져 다시 뛰지 않는 나의 열심을 되돌아보게 했다. "다시 처음부터"라는 마음을 지키는 일은 나를 위한 일이었다는 걸, 무기력과 싸우는 지금 깨닫는다.
서른일곱, 마흔일곱, 미운 일곱 살이더라도 자신을 웃음 짓게 하는 일이 뭔지 알아가는 걸 놓쳐서는 안 된다고, 그건 매일 삶 속에서 행복을 찾는 일과 같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어제 없었던 것을 오늘 만들어낸다는 자부심', 책 뒷면에 적힌 이름에서 느낄 수 있는 감격, 책의 후기를 통해 얻는 보람. 잠시나마 출판사에서 일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보다 더 안 좋아진 출판 시장이 안타까웠고, 책 한 권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 땀 흘리는지 알기에 내가 옮긴 책의 구절, 시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이를 쓴 작가, 시인의 삶은 어떠할까 헤아려 보게 했다.
이제 이야기는 절반을 지나왔지만 웬만한 드라마 한 편이 완결 났을 때보다 많은 대사를 손으로 옮기고 있다. 단이의 삶에서 나는 이렇게나 많은 울림을 받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찾아온 로맨스가 기쁘다.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단이는 주열매처럼 로맨스가 필요하다가 말할 여유도 없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는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4>가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안정적인 정규직을 찾는 게 급선무고, 머리 하나 편히 누울 곳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 그녀의 삶에 예상하지 못했던 로맨스가 등장한다. 로맨스란 물론 남녀 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단이에게는 두 명의 남자 말고도 책을 만드는 기쁨,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동료들 사이에 사랑도 생겼다.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받으면 더 기쁜 보너스처럼, 열심히 살아온 그녀의 인생에 로맨스가 별책부록으로 찾아온 듯 보였다. 나는 매주 본방 사수로 단이에게 찾아온 로맨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홀로 견뎠던 추운 7년의 삶 이후, 이제 어떻게 살지가 너무 궁금하다.
방영 중인 드라마에 대해 리뷰를 쓰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끝까지 봐도 실망이 없을 듯하고 무엇보다 나누고 싶은 대사들이 많아 글을 써보았습니다. 대사는 계속 업로드할 예정이고 빠르게 보시려면 인스타로 들어와 주세요(프로필에 링크)
참고로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 홈페이지에도 예쁘게 편집된 대사들이 올라오더라고요. 주소 공유드려요:)
로필 꼬리말 http://program.tving.com/tvn/bonusbook/19/Board/List
로필 밑줄 긋기 http://program.tving.com/tvn/bonusbook/18/Board/List
경단녀의 현실과 더욱 위축된 출판시장,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자부심으로 일하는 출판사의 모습이 꽤 현실적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뤘다.
책의 문장을 통해 삶을 비유하고 감정을 나타내 준 많은 장면이 감성적이었고, 더 할 나이 없이 빠르게 스쳐가는 미디어에서 책을 읽는 낭만을 느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 드라마가 생각났다. 지난 게시글을 보며 잊었던 시를 다시 떠올렸다. 이번 봄에는 몇 개의 시를 외워봐야겠다.
누군가의 삶에 다정한 위로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