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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Oct 19. 2019

동백꽃 필 무렵

한약을 먹게 되면 꼭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다. 흠 난 고기 파인데.

소화불량이 심했고 약이 비싸서 고기를 끊어보려 했다. 그렇게 비건 푸드에 시선을 돌려봤다.

두부 고기. 정말 고기 맛이 날까?


소스를 붓고 조리를 했더니 얼추 고기 맛이 났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나는 편견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비건은 맛이 없다는 것도 편견이었다.

생각보다 편견은 작고 사소하기도 했다. 크고 무시무시한 것만 있다는 것도 편견이었다.




고아에 미혼모에 술을 파는 주점을 한다는 건 한쪽으로 치우쳐진, 편견 된 시선을 받기 충분했다. 박복한 팔자, 고단한 인생, 운도 지지리도 없는 모든 불행을 다 때려 박은 팔자란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다. 살며시 웃기만 해도 남자 홀리러 온 여우가 되었으니 그녀의 얼굴이 어둡고 침울한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항상 등을 굽히고 땅을 보며 걸었다. 하지만 지켜야 하는 생명이 생겼기에 그녀는 상송장 같던 자신의 삶을 이만치 살려내 살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의 사연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박복한 팔자, 곁에 있으면 같이 불행하게 만드는 음산한 여인. 이미 그녀의 삶을 규정짓고 답을 정했다. 동정하는 손길로 구제해주려 하거나, 경계하며 다수의 영역에 끼지 못하게 밀어내는 것으로.


임상춘 작가는 전작 <쌈 마이웨이>에서 "내 주변에 완벽한 지지자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 겉과 속이 같고 행간을 살피지 않아도 되는 사람, 치이고 들어와도 믿어주고 지지해주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마음"을 담아냈다고 했다. 자극적인 소재와 고구마 전개 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청춘의 무게를 다룰 수 있었던 건, 작가의 이러한 바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고, <동백꽃 필 무렵>에서도 진면목이 드러났다.


작가는 동백이를 통해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인생을 그려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상의 편견은 사실 너무 흔하다. 이를 보여주려는 듯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들로 등장인물 소개했다.


동백이는 하마. 용식이는 곰. 종렬이는 퓨마, 제시카는 공작새 등.

동물들이 주는 첫 인생은 사람들이 주인공들을 보는 시선이다.


초식 동물 하마는 온순해 보인다. 술집을 하지만 드세거나 까칠하지 않고 다정한 동백이는 왠지 지켜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밀림에서 제일 무서운 건 하마다. 맘먹고 뛰면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다. 호랑이처럼 어흥하는 법도 없이 뛰어가 들이박으면 초원 평정. 쉽게 보다 다친다.

정의로운데 대책 없어 보이는 용식이는 푸우 같다. 귀엽다. 피글렛, 이요르, 티거 집으로 매일 출근하는 오지랖을 떤다. 하지만 꿀을 빼앗긴 푸를 본 적이 있는가. 꿀을 빼앗기면 그땐 나도 깡패가 되는 거... 아니, 불곰이 된다. 단순, 솔직, 순박, 충직한 용식이에게 동백이는 아끼는 꿀단지다. 건드리면 디진다.

겉보기에 그럴싸한 종렬이는 뜯어볼수록 애매하다. 맹수라기엔 사자 급이 아니고 과는 고양이인 퓨마. 그녀의 아내 제시카는 겉만 화려한 공작에 비유된다.


등장인물 소개를 읽어볼수록 철떡 진 비유에 놀란다. 사람 인생 겉으로 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 띄엄띄엄 보고 재빠르게 판단한다. 초원에서 다수의 무리가 우르르 몰려다니는 건 약한 초식동물이다. 자신들의 논리로 상대를 규정하고 그렇게 무리를 지키는지 모른다. 용식이는 그들과 달리 동백이를 알아차렸다.

자신이 지켜줘야 하는 연약한 인생이 아니라, 34년 혼자서 버티고 지켜온 그녀는 훌륭한 사람이며, 행복할 자격이 충분한, 반할 수밖에 없는 여자라는 걸 그는 알았다. 아이의 아빠마저 그녀를 불쌍한 인생이라고 말했지만, 용식이는 달랐다. 매일 그녀를 향해 건네는 용식이의 모든 말에 동백이는 지난 자신의 과거, 종렬에 대한 미련을 털어 내고 까불이 마저 이겨 낼 힘을 얻었다.


완벽한 지지자. 겉과 속이 같고 행간을 살피지 않아도 되는 사람. 용식이는 판타지다.

하지만 우리는 용식이의 말에 매일 위로를 받는다. 동백이가 피어가듯 우리 마음도 피어가고 있다.


그런 동백이를 까불이도 오래 지켜보았다. 편견 어린 시선 속에 살아가는 동백이가 자칫 마음을 달리 먹었으면 나는 일찍 감치 죽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동백이는 옹산에 처음 온 그때처럼 다정하게 사람을 대하고, 자신도 타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까불이가 까불지 말라며 죽일 명분이 없었을지 모른다.


인스타에서 인친들과 범인이 누군지 추리 중이다. 그러다 생각했다.

까불이는 어떤 사람일까? 동백이처럼 세상의 편견에 무너져봤던 사람인가?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죽인 일이 정당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왠지 까불이는 다정한 이웃, 영화 <옆집 사람>처럼 안전하다고 생각되던 사람일까 봐 사실 무섭다.


작가는 동백이를 통해 우리 안에 인지하지 못한 편견을 깨닫게 하고, 한 사람을 향한 다정한 지지, 그 아름다운 말들을 들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따뜻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로 돌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장 인물 소개는 드라마 홈페이지 글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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