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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r 07. 2020

이태원 클라쓰

어릴 때 아빠가 즐겨보던 드라마가 있었다.

기억이 퇴색되어 정확한 이야기는 생각나지 않지만 대략의 스토리는 이러했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젊은이가 작은 가게에서 시작해 성실과 지혜를 기반으로 굵직한 기업가가 돼가는 자수성가 형 경제 성장 드라마. 이런 장르의 드라마는 열심히 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IMF 이후 이런 류의 드라마는 조금씩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정말로 오랜만에 자신의 힘으로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을 보고 있다.

#이태원클라쓰 속 주인공 박새로이다. 박새로이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바르게 배웠고 배운 대로 행동한 결과 억울한 퇴학을 당한다. 그 뒤에도 정의롭지 못 한 사회는 그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아 간다. 좌절하고 무너질만한 상황에서 새로이는 아버지가 유산처럼 남겨주신 바른 신념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느려 보이지만 그가 세운 계획대로 한 단계씩 밟아 나간다. 물론 쉽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새로이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소신을 지키면서 정의를 이루고 그가 목표한 국내 요식업계 최고의 CEO가 된다.

다만 8-90년대 드라마와 달랐다.

억지로 교훈을 심어주지 않고 박새로이 자체를 매력적인 인물로 보이게 했다. 내가 새로이에게서 가장 부러운 건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다. 세상은 돈이 최고라고 말한다. 경영학을 배울 때 모든 시간마다 기업의 이윤 극대화에 대해 배웠다. 장사꾼에게 이윤 추구는 당연한 것인데 새로이는 같은 논리로 살지 않는다. 사람 그리고 소신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자유를 꿈꾼다.


이상주의자,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비웃지만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새로이는 사랑하는 수아가 반대 편에서도 괜찮다고 끄떡없다고 한다. 오히려 그녀가 내린 선택을 격려해주기 까지 한다. 속 없는 바보인가? 아니, 상대의 어떠함으로써 자신을 정의하지 않은 자의 단단함이다.


우린 이런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반응할까?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면서도 새로이 곁으로 가지 못 하는 수아와 이상주의자에 착해 빠진 그라 생각해도 새로이와 함께 가기를 선택하는 이서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이서의 선택이 맞고 심지어 옳지만, 현실에서는 새로이가 걷는 좁은 길을 함께 걷기 두려울 수 있다. 수아를 맘 편히 욕할 수 없는 이유다.

새로이와 함께 우리는 이서에게 또한 빠져든다.

그녀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반 사회적 성향인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인물이다. 보통 드라마에서 소시오패스는 악역이나 살인자로 등장한다. 이서도 사람을 필요에 의해 만나고, 이용하기 위해 관계를 만들고,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물불 가리지 않는다. 기본적인 도덕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녀가 부당한 상황에서 선을 넘어 사이다 행동을 보이면, 양심에 덜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해방감을 준다는 부분에서 할리퀸과 이서를 비교하기도 한다. 고리타분해 보이는 새로이 곁에 이서가 있음은 이 드라마 신의 한 수다.


그리고 이제 그녀가 박새로이를 만났다. 그녀의 엄마도 그녀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며 살게끔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이와 함께 가기로 하면서 그녀는 그가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한다. 사랑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히 사랑 때문만은 아니다. 이서도 새로이를 본 순간 인생을 걸어야 하는 사람이라 느낀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이서를 비롯 그 주변을 물들이는 과정이다.



나는 정직한 신념이 지켜지는 자유를 이태원에 비유하여 그리고 있는 이 이야기가 좋다. 열심히 하면 나도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희망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저렇게 살려고 하면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럼에도 박새로이처럼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한다.


이미 웹툰을 보았기에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결과를 안다. 세부적인 내용과 스텝을 조금 바꿨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승자는 새로이. 그럼에도 우린 매 화를 기다린다.


사람을 믿고 자신을 걸고, 옳은 길이라면 느리더라도 천천히 만들어가는 박새로이의 모습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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