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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r 30. 2020

날씨가좋으면찾아가겠어요

북현리라는 시골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추운 겨울에 시작된다. 그곳에는 '굿나잇 책방'이라는 이름으로 서점을 운영하는 은섭이 살고 있고, 크리스마스와 설날에 맞춰 내려오던 해원이 올 해는 조금 이른 겨울에 내려왔다.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어도 존재가 희미했던 은섭과 해원은 그녀가 머무는 호두 하우스에 문제가 생기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갖고 있는 각자의 시린 겨울이 서서히 풀려 봄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제목부터 너무 예쁘다. 내게 겨울은 견디기 힘든 계절이다. 제목처럼 날씨가 서서히 풀릴 때 드라마는 찾아왔다.




 첫 회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다. 해원이 왜 서울에서 내려왔는지 그렇게 온 호두 하우스에서 마주한 이모와는 어떠한 사연이 있겠구나 하는 정도. 그리고 은섭이의 첫사랑이 해원이구나 딱 그 정도.


요즘 드라마는 1회에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몰아치듯 전개되는 속도로 몰입시키고, 사람들은 그러한 속도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낯설다. 이야기보단 북현리 풍경 묘사가 더 많고, 대사는 하나같이 천천히 느릿느릿하게 나눈다. 그런데 어느덧 한 시간이 흘렀다. 별 내용 없어 보이는 서사 가운데에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였나 보다.


잠 못 이루는 새벽이 길어지고, 해원이 도망쳐 온 서울 생활이나, 늘 그 자리에 존재하고 오래 봐 왔기에 알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사실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느껴지는 감정이나, 애써 외면한 과거를 마주 대할 때 나타나는 유약하고 초라한 나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 등. 고요하고 천천히 흐르지만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으로 깊이 들어오는 감정들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소설 날이좋으면찾아가겠어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이도우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1회 분 대사를 올리는데 많은 분들이 꼭 원작을 읽으라고 강력 추천했다. 본래 원작을 찾아 읽지 않는 편이다. 원작이 드라마보다 더 좋은 것도 싫고, 원작이 드라마보다 나은 건 더더 싫다. 그저 지금 보는 현재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방송이 1주 결방됐다. 안전히 제작해야 함에는 동의하지만 내용이 너무 궁금했다. 결국 소설을 사서 하루 만에 읽어버렸다.


원작과 드라마는 느낌이 아주 조금 미묘하게 다르다. 원작은 처음부터 따스하다.

드라마에서 해원은 첼로를 전공하지만 원작에서는 그림을 전공했다. 이 설정이 좀 더 마음에 들지만, 원작보다 차갑게 그려내는 드라마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어쩌면 평온한 시골 풍경과 공백이 긴 대사에 느껴지는 지루함을 피하기 위한 미스터리 한 호기심을 만들기 위해 해원을 조금 더 차가운 인물로 그렸을지도.


원작을 읽어버린 탓에 드라마가 갖고 있는 미스터리한 느낌은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대사를 통해 감정이 드러나는 해원과 달리 은섭은 블로그 비공개 글에서 조금, 그의 심경을 나타낸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은섭의 짧은 말 한마디에 그의 눈빛과 음악이 더해져 풍성하게 다가온다. 해원이 느꼈을 차가움과 은섭이 주었던 따뜻함이 확연히 느껴져 좋다. 원작도 드라마도 각 가의 매력이 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장면. 은섭의 대사는 짧은 ‘어둡다 마디지만, 해원의  길을 비추는 렌턴 조명과 이를 알아차리고 먼저 웃어보이는 해원의 표정, 비록 특별한 대사가 없는 장면이지만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무엇보다 책 속의 문장이 대사화 돼가는 과정이 무척 설레다. 몇 안 되는 구절과 대사라지만 와 닿는 글이 많다. 책의 글귀와 대사는 다른 포스팅에 업로드하려 한다.


이런 책방이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 :)

봄이 올 때 쯤 찾아볼 드라마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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