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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r 09. 2020

요즘 뭐 읽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JTBC, 2020)

지금은 좀 줄었지만 한 때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물어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3년을 서점에서, 그 후 1년을 출판사에서 근무해서 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일했던 곳은 주로  종교 서적을  다루는 곳이었고,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였기에 그 경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독서 생활을 묻는 적합한 이유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내 수다스러움이 좀 더 그럴싸한 이유가 될지 모르겠다.


나는 대화를 할 때 읽고 있는 책이나 보고 있는 드라마를 자주 인용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내 일상이고, 우린 만나면 일상을 나누니까. 내 친구들은 결이 비슷했기에 관심사나 고민도 닮았다. 그렇다 보니 내게 깊은 인상을 준 책은 친구에게도 그러할 가능성이 높았고, 우리 대화는 자주 나의 영업질로 흘러가곤 했다. 회사에서 팔라는 책은 못 팔았는데, 대화 속에 꽃핀 영업은 언제나 실적이 높았다. 그렇게 취향저격당한 지인들은 지금도 이따금씩 내가 뭘 읽고 있는지 물어오곤 한다.


요즘 나는 '읽기'와 '쓰기'에 관한 책을 보고 있다. '읽기의 말들',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 수 있나요', '글쓰기의 최전선' 등을 읽었다. 올해 목표에 ‘더 나은 글쓰기'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요가'는 이틀 전에 다 읽었다. 1년 만에 다시 요기너로 돌아온 삶이 반영되어있는 선택이었다.


이쯤 되니 우리가 하는 선택 중 책만큼 자신의 현재 상태를 노골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도 없단 생각이 들었다. '요즘 뭐 읽어'라는 질문이 안부를 묻는 것처럼 들리고 그럼 나는 읽고 있는 책 내용과 함께 일상을 나눈다. 자연히 간증과 영업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렇다고 항상 관심 분야의 책만 읽는 건 아니다.


얼마 전에는 '식물'과 관련된 책을 여러 권 들춰 봤다. 역시나 관심이 없기에 정독한 책은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 책들을 살펴 본건 한 사람 때문이다. 자신만의 공간이 생긴 그는 숙원 사업이었던 애완동물을 키우기 위해 알아보다가 반려 식물을 선택했다. 집에 혼자 두고 나가도 좀 덜 미안한 쪽을 선택했다고 했다. 우울함에 심란해하는 이를 위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고'를 읽었고, 활동량 때문에 외향인으로 오해받아 괴롭다던 이가 떠올라 '사실은 내성적인 사람입니다'도 읽었다.



jrbc #날씨가좋으면찾아가겠어요 4화


마치 은섭이 자신이 읽는 책을 해원이 따라 읽을까 싶어 평소보다 신중히 책을 골랐던 것처럼, 나도 요즘 뭘 읽는지 물어올 당신을 위해 책을 고르기도 한다  내 관심에 당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책이 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당신의 일상이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을 즐긴다.


서로가 어떤 책을 읽는지 물어봄으로 안부를 확인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잘 지냈냐는 말에 ‘잘’이 주는 부담보다 훨씬 아름다운 인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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