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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y 16. 2020

내가 나인 것을 증명하는 일

더 킹:영원의 군주(SBS,  2020)



“오늘 혼자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까 외로웠겠다.

내 세계에서. 내가 나인 걸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게 꽤 막막하더라.”


드라마 <더킹:영원의 군주>는 평행세계를 소재로 한다. 영과 일의 사이를 지나 맞닿아 있는 평행세계.

태을은 대한제국(대한민국의 평행세계)의 황제, 이곤을 따라 그의 세계로 온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잠시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녀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동하며 자신의 세계와 닮은 대한제국을 누빈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녀가 이 세계 사람이 맞는지, 신분 검사를 받지 않았다. 어디든 갈 수 있었으나, 누구나 만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고, 실제로도 닮은 평행세계의 사람들은 그녀를 몰랐다. 그녀가 사는 집은 태권도장이 아닌 한의원이었고, 그녀의 직장도 같은 위치에 같은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흔적만은 그곳에 없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선 곳. 외로움이란 거기서 왔다.


네 달 만에 그러니까 올해 들어 처음 친구들을 만났다.

주제가 널을 뛰는 대화였지만 고민을 나눴고 생각이 정리됐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에 서로를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치 않았음이 더 할 나이 없이 반갑고, 좋았다. 내가 나인 것을 증명하는 것은 신분증이 아니라 관계구나.


이곤은 대한제국에서 그녀가 외로웠을까 염려한다. 물론 작가의 필살기가 가동되어 오글거리는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누군가 내가 느낄 외로움을 염려해준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울컥해졌다.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눈동자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마스크를 쓰게 되는 순간부터, 나는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더 외로워지지 않았을까.


그래도 손을 뻗으면 잡히는 휴대폰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눔으로 마음의 거리는 좁힐 수 있다. 전화조차 걸 수 없는 저 두 사람보다 나은 듯하다. 누군가 나처럼 외로울까, 안부를 묻기 위해 메시지 창에서 당신의 이름을 검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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