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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Nov 23. 2015

엄마는 여전히 힘이세다.

응답하라 1988(tvN,  2015)


어릴 때부터 엄마가 아프셨다. 초등학생 몸무게즘 되는 엄마는 내게 보호해야 할 사람이었다. 그렇게 15년이 흐르는 동안 효녀라는 말도, 딸들이 참 잘 컸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어릴 땐 그 말들이 좋았다.  칭찬받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엄마도 우리의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항상 고마워하셨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 말들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엄마가 몸을 회복하시면서 알바라도 해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올해 유독 허리가 아파 일을 자주 쉬는 아빠를 보면서 나는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며 머리를 굴렀다. '대출은 받고 싶지 않은데... ' 혼잣 말을 하며 돈 계산을 하고 있는 나에게 결혼을 앞두었던 친구가 뭐하냐고 물었다. 나는 부모님이 하실만한 업종으로 가게를 차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조건이 까다로운 엄마의 알바 자리를 찾는 것보다 쉽고, 육체적인 노동이 많은 아빠가 조금은 덜 힘들지 않을까 해서였다. 친구는 손사례를 치며 말했다.

"결혼해야지 그 돈으로 뭘 하려고!"

'아.. 결혼도 해야 하는구나...'

"결혼할 생각 없어"

"결혼을 생각 갖고 하냐? 눈 맞아 좋으면 가는 거지. 결혼이 젤 큰 효도야"


어린 시절 설거지를 해 놓거나, 청소기를 밀고 빨래를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 무언가- 더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점 점 커지는데 나도 M포세 대었구나.. 싶어 한동안 우울함이 컸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것이다. 부모님을 향해 커져가는 책임감 혹은 부담감.



추억의 타임머신을 타는 듯한 기분을 주는 "응답하라" 시리즈는 가족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볼 때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세대 간에 소통을 돕는 드라마는 모처럼 리모컨 쟁탈 없는 평화를 가족에게 주는 고마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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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5회 내레이션, 양보 손글씨


1988의 5회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부모님을 향해 가졌던 얼마나 어이없는 것이었는지... 당혹스럽고 창피함을 느꼈다.


몇 년 안 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럽고 치사한 경우도 많았고 그래서 때려치우고 놀러 다닌 적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차례진 밥상 먹는 것도 피곤하다, 힘들다 하면서, 퇴근 후엔 친구들 만나느냐 늦게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아빠는 그 더럽고 치사한 경우를  몇십 년을 참았고, 엄마는 나보다 몇 시간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리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도 몇 시간을 더 서서 일하셨다. 단지 나의 부모란 이유로 그 시간을 그렇게 참아오셨다. 그런데 나는 부모님께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을 드리며 큰소리를 치고, 주말에  한두 번 집 청소 도와주며 유세 떨며 효녀란 소리를 챙겨 들었다. 여전히 지치는 하루를 보내면 집에 들어와 엄마 밥을 찾고, 힘이 들면 그 앞에 나가 울고, 무섭고 겁이 나면 아빠를 찾는다.


부모님이 약해지고 늙어진 것 같아 슬플 때가 많다. 그러나 여전히 두 분은 내게 있어 강하다. 그 어떤 것도 부모라는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엄마도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짓다가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남겨주신 사랑의 기억에 위로받고 다시 힘을 낸다. 과거 오랫동안 엄마를 돕고 그래야 한다고 배워와서 그런가, 나는 그렇게 강한 분들을 전부 내가 커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감히 주제도 모른 체 책임지려 했고, 주제 모르고 나선 책임감에 혼자 짓눌려 버겁다는 망상을 했다.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난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막내딸이었다. 부모님이 내게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닐 텐데 말이다


허리가 아프다던 아버지는 이번에 수술을 받으시기로 하셨다. 수술 날짜가 잡히고 검사를 앞두면서 병원비, 재활비용, 그 사이 멈춰지는 수입 등을 걱정했지만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건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고 무사히 회복되시기를 기도하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또 내가 해야 하는 건  쓸데없이 부풀려진 책임감에 머리를 싸매는 게 아니라 부모로서 자식들 앞에 오랫동안 푸르게 굳건하게 계실 수 있도록 바라보고 믿고 존경하는 것뿐이란 걸. 두 분이 60여 년의 인생을 부모로서,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헤아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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