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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n 26. 2020

드라마로 사색하기

거실에 드라마를 보다 보면 어김없이 질문이 들어온다.

"쟨 왜 저렇게 말한 거야?"  
"방금 그 장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어떻게 풀릴 것 같아?"   등.


그러면 나는 생각나는 대로 떠든다. 물론 내 예측이 틀릴 수 있음을 전제로 하지만 그동안의 스토리와 전작들로 미루어 짐작한 작가의 세계관, 때로는 기자간담회나 배우의 인터뷰를 토대로 해석한 생각을 떠든다. 그리고 가끔은 주인공들과 나눈 대화에서 내 삶의 한 부분을 떠올리며 느낀 생각을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엄마와 언니의 감탄사를 들을 수 있다. 언니에게 있어 드라마란 재미있거나 재미없음 둘 중 하나인데 반해, 내가 느끼는 드라마는 너무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무슨 드라마를 그렇게까지나  어렵게 보는지, 평론가나 컬럼리스트가 돼보는 건 어떻겠냐는 레퍼토리가 나온다.


이제는 이런 반응이 익숙하지만 한동안 드라마를 보는 나의 자세가 너무 진지한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이런 표현이 있다.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내 생각이 딱 이런 반응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드라마를 유희적 차원으로 본다. 주인공을 보며 행복해하거나, 안타까워하거나, 설레기도 하고 여러 감정을 느끼며 궁극적으로 재미를 느낀다. 나 또한 그렇다. 다만 내게 있던 지난 일을 떠올리며 느껴지는 감정 위로 생각을 확장시켜 나가는 한 단계가 더 있을 뿐이다.


드라마는 엄밀이 따지면 현실에 없는 이야기지만, 현실을 기반으로 현실을 담아낸다. 영화나 연극도 마찬가지다. 창작된 모든 이야기는 완벽한 허구일 수 없다. 그 안에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으니 더욱이 더. 그렇다 보니 드라마라 할지라도 나는 책을 읽듯 영화나 연극을 보듯 진지해진다. 삶을 반추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드라마를 보며 생각에 잠기는 건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었다.


지인들이 어떤 드라마를 보고 있는지에 따라 내 기분의 고조가 바뀐다고 하더라. 드라마 장면마다 길게 적힌 코멘트와 댓글들에 대답하는 나를 보며 즐거워서 보는 게 맞냐고 묻는다. 부쩍 이런 질문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된 건지도.


즐겁다. 즐기고 있다.

물론 대사 양이 많으면 작업하는데 힘이 들긴 하다. 회사 일도 있고 개인적 약속도 있으니 작업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 지칠 때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럴 땐 쉰다. 억지로 하는 건 없다. 대사 하나하나에 의견을 세우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그냥 느껴지는 것을 풀어내는 것뿐. 물론 개인적 감상을 SNS에 올리고 있기 때문에 혼자 떠드는 긴 코멘트가 다른 이의 감상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고 앞으로도 고민할 것 같다.


다행히도 나와 함께 인스타에서 드라마를 보는 (팔로워)분들은 이런 나의 사적인 수다를 좋아해 주시는 듯하다. 댓글에서 팔로워분들끼리 대댓글을 달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나만 즐거운 건 아니구나, 우리 함께 즐거운 게 맞겠지 조금 안심을 한다.


글이 주절주절 길어지는 걸 보니, 어쩌면 드라마를 심각하게 본다는 주변 사람들 말이 역으로 내게 드라마는 심각하게 보면 안 된다는 편견을 만든 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따지면 드라마를 보며 사색하는 행위를 꼭 '심각하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일 이유도 없는데, 이번에도 생각이 길었다. 누군가에겐 드라마를 보며 삶을 고민한다는 게 당연한 일일 수도 있는데 이 생각을 소심한 나는 오래 고민해 왔다. (물론 고민하는 것 마저 '양보'다움이라는 걸 그대들은 알 테지만)


그러니 걱정하지 말길. 내게 있어 드라마를 보며 사색하는 함이 드라마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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