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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n 04. 2020

인터넷이 끊겼다.

지난주 목, 금 이틀간 집에 인터넷이 끊겼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인터넷 망을 변경하는 가운데 커뮤니케이션의 미스로 S사 인터넷 망이 설치되기 전, 사용 중이던 K사의 인터넷 망이 먼저 회수된 것이다. 


엄마는 집에 혼자 있는 자신을 아무도 배려해주지 않았다며 크게 섭섭해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날은 엄마의 아침은 "헤이 카카오"를 부름으로 시작한다. 날씨, 주요 뉴스, 아침 QT까지 카카오를 통해 한다. 말만 하면 알아서 반응해주는 카카오 미니는 엄마의 단짝이었다. 그리고 그 날은 엄마의 최애 임영웅을 볼 수 있는 '사랑의 콜센터'가 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날 저녁에는 핸드폰과 텔레비전을 연결해서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해 드렸지만 문제는 S사 가입에 문제가 생기면서 인터넷 설치가 다음 주 월요일에야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핸드폰 어플로 '헤이 카카오'와 '멜론'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렸지만 기계 작동이 미숙한 엄마에겐 버거운 과정이었다. 출근해 있는 딸에게 계속 전화를 할 수도 없고 우선 참아보겠다며 마음을 비우신 듯했다. 


우여곡절 끝에 토요일에 기사님이 오시면서 인터넷 설치가 완료되었고, 텔레비전을 비롯 엄마의 기계 친구들에게도 생명이 들어가면서 혼란스러웠던 집에 평화가 찾아왔다. 자신이 인터넷과 밀접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엄마는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하셨다. 그 말에 영국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어즈 앤 이어즈'는 영국의 한 가정을 중심으로 2019년부터 2034년까지 가까운 미래를 정치, 기술, 사회, 환경 등 다양한 소재로 풀어낸 SF블랙코미디다. 비약적인 기술 발달은 사람이 디지털(Data)이 될 수 있는 '트랜스 휴먼'에 까지 이르지만 모두가 배불리 잘 사는 구조를 만들진 못 한다. 오히려 사이버 공격과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정전이 일상이 되면서 정보는 인쇄되어 케비넷에 보관되고, 신문이 재 등장하며 화상 상담은 대면 상담으로 역행하기에 이른다. ('이어즈 앤 이어즈' 포스팅 글)


인터넷이 안 되는 게 그렇게 큰 일인가? 하루 이틀 없이 살 수 있지 않은가? 의도적으로 단절된 삶을 선택하는 게 아니고서야 단연코 그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인터넷이 안되면 가장 타격받을 곳은 내 일상을 기준으로 보면 회사다. 인터넷이 원활하지 않은 날에는 인터넷 선으로 연결된 전화부터 먹통이 된다. 프로그램에 접속이 안되면 이러다 정보가 다 날아가버리는 건 아닌가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리고 이제 추억을 상기시키기 위해 묵직한 앨범을 꺼내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검색한다. 싸이월드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이런 이유에서다.


편리한 시스템 속에서 여유 있게 생활하던 라이언즈 가는 극변 하는 정세에도 이렇다 할 행동을 하지 않는다. 정치와 참여에 관심 없는 건 비단 라이언즈 가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2023년을 맞이한 '이어즈 앤 이어즈' 속 영국은 극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일부 세력에 의해 악의적으로 퍼진 전염병으로 사람이 사람을 경계하게 되고,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엄격한 지역 봉쇄가 이뤄진다. 발전된 기술은 사람을 일터에서 몰아내고 이익과 해택은 소수에게 집중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 자리에 모인 라이언즈가 사람들은 할머니의 기가 막힌 축배사를 듣는다.


"우리 탓이 맞아.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 축하한다. 다들 건배하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는다고, 정보화 시대에 문서를 출력해서 보관하고 다시 두꺼운 앨범을 만들자는 건 아니다. 인터넷이 안 되는 이틀 동안 침묵과 함께 찾아온 불편함 속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편리한 기술적 삶에 내가 무방비하게 휘둘리고 있었던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할머니의 자조적인 축배사가 떠올려졌을지도. 


더욱이 드라마 보여준 2023년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애석하게도 현재 상황이 돼버렸다. 무한히 발전하는 시대 속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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