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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n 07. 2020

엄청난 손해 같지만, 우리는 지구를 지키고 있는 중이야

인스타그램에 #blacklivesmatter 해시태그를 단 블랙 화면이 올라오고 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의미를 담은 이 문구는 2019년부터 흑인에 대한 과도한 공권력 사용에 항의할 때마다 사용된 시위 구호다. 지난 5월 미국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아프리카계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일로 미국 전역을 비롯 전 세계와 SNS 상에서 흑인 인권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던 중 한 영상을 보았다. 이 영상이 진짜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 미국에서 진행 중인 흑인 인권운동에 대한 상반된 두 모습이 담겨 있었다.

검은 복면을 쓴 남성 셋이 상점을 약탈하기 위해 창문을 부수고 있었다. 이때 마스크를 쓰고 손에 종이 피켓을 든 한 여성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여성의 모습에서 그녀가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해 평화 시위를 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약탈을 감행하던 무리는 여성을 거칠게 밀어내고 내 팽개쳤지만, 그녀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 상점 문 앞에 섰다. 그저 서있었다. 눈을 마주치며 피켓을 보이는 모습 속에서 ‘나는 당신과 다툴 마음이 없어요. 그저 이 일을 멈춰주세요’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결국 폭도 셋은 그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른, 비어 있는 가게를 찾으러 갔을까? 나는 왠지 그들이 복면을 벗어버리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갔을 것 같다. 자신보다 작고 약해 보이는 한 여성은 난폭함이 아닌 그저 침묵함으로 상점을 지켰다. 선한 마음과 그곳에 뿌리를 둔 행동이 갖고 있는 강인함을 직접적 겪은 폭도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분노가 만든 행동이 얼마나 힘없고, 가치 없는 행동인지 느끼지 않았을까? 순수한 상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복면이 아닌 앞선 그녀처럼 마스크를 쓰고 거리에 나와 함께 피켓을 들고 평화 시위에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더 순수한 바람이 생겼다.


내게도 화를 낼 것인가, 숨을 고르며 반응할 것인가 선택의 순간이 하루에도 여러 번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후자를 선택하려 애쓴다.

물론 내 잘못이 아닌 억울한 상황에 웃음을 유지하며 차분히 대응하고 나면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스스로 호구 짓을 한건 아닌가, 지금 이 한 번이 다음에도 그래도 된다는 당위성을 준건 아닌가, 그래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 무례를 겪으면 어떡하나... 여러 생각으로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가능한 웃으며 일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난폭한 반응 앞에 함께 선을 넘지 않고 해결하려는 방법을 고민한다. 물론 상을 뒤엎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들고, 주장해야 해! 밟히면 꿈틀 해줘야 해! 외치기도 하지만 답답한 마음을 공감해주다가도 마지막엔


“원래 세상은 조금 더 착한 사람들이 조금 더 애쓰고 살 수밖에 없어요.

  그게 막 엄청난 손해 같지만, 나쁜 사람들한테 세상을 넘겨줄 수 없잖아.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구를 지키고 있는 거야.”

라고 멋지게 말한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나온 대사다. 나는 이 멋진 대사를 종종 사용함으로 선한 마음을 지키려고 한다.


선한 마음은 바람 앞의 촛불과 같다. 그냥 두면 여러 입김에 스르륵 꺼지고 만다. 하지만 함께 모이면 큰 바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강하고 따뜻한 빛을 비춘다. 여전히 사회에는 답답한 상황과 분노하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이 마음을 지키고 행동하려는 이들이 모여 건강한 발전을 이뤄왔다고 믿는다.


사랑만 돌아오는 게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호의도 삶에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그렇기에 지금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해시태그를 달고, 침묵 속에 걸으며 이 사태의 변화를 촉구하는 뜻을 같이 하는 당신과 같은 선한 히어로를 통해 인종 차별의 문제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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