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보 Jun 22. 2020

한 숨 식힌 닭강정이 더 맛있는 이유.

마사지를 받으러 갔는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몸에 힘을 빼세요”였다. 마지막엔 한숨을 쉬면서 애원할 정도로 나는 60분 내내 몸에서 힘을 빼지 못했다.


구두도 뒷 굽이 빨리 닳고 축도 자주 깨지고, 집에 들어오면 앞 허벅지가 아프고 다리에 쥐도 자주 났다. 요가 선생님이 몸에 힘을 너무 주고 걸어서 그런 거라며, 평소 운동할 때도 자꾸 힘을 줘서 어깨가 뭉치고 바른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고 일러주셨다.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선에 머물러도 괜찮다고 말하며 선생님은 한껏 힘이 들어가 솟은 내 어깨를 살며시 낮춰 주셨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몸에서 힘을 빼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터득해 나갔다.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숙면에 들려면 생각을 비워야 했다. 이럴 땐 코로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깊이 뱉으며 호흡에 집중했다. 적어도 양을 세는 것보단 효과적이었다. 먼 거리로 외근을 갈 때는 가방을 비웠다. 혹시 몰라 챙기던 물건을 두고 필요한 것만 챙겼을 뿐인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구분되었다. 긴장되는 일을 앞두었을 때 평소보다 적게 먹어 속을 비우는 게 집중에 도움을 주었다. 음식물을 소화하는데도 상당한 에너지가 든다. 애석하게도 이제 나는 에너지 가득한 이십 대가 아니다. 이렇게 인정하고 나니 내가 쏟는 열심히 집착이라던 한 선배의 조언이 떠올랐다.


힘을 빼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에서 저 뒤로 확 밀려 날 것 같다는 불안, 놓으면 아니 놓치면 끝 모르는 곳으로 뚝 떨어질 것 같다는 공포가 만든 집착. 결국 오랜 긴장 상태는 번아웃을 불러왔다. 반강제로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게 되었다.


살짝 뒤로 밀려난 것도 같고 아래로 떨어진 것 같기도 했는데 그러는 동안 손에 꼭 쥐고 있던 나의 열심히 어떻게 변했는지 볼 수 있었다. 처음 모습은 온데 간대 없이 손아귀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모습. 변질된 열심은 집착이 맞았다.

 

 


닭강정을 먹는 방법은 실로 제각각이겠지만, 월주는 뜨거울 때 보다 조금 식었을 때 먹으면 더 맛있게 닭강정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한 숨 쉬는 동안 오히려 물엿이 딱딱하게 굳어 겉바속촉을 만든다고.


이 대사에 500여 개의 좋아요가 눌렸다. 이색적인 건 친구 소환 댓글이 많이 달렸다는 점. 보통 친구를 태그 하는 댓글은 이 드라마가 어떤지, 보고 있는지 아니면 보자고 하는 권유형이라면 이 대사에 달린 소환 댓글은 네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힘들고 아픈 시간을 지날 때 굳이 힘을 주기보단 한 숨 식을 때까지 마음을 내려놓는 건 어떨지. 세상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만 가르쳐 주는데, 월주 이모는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빼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한 숨 돌리는 시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힘은 빼도 괜찮은 게 아니라 그래야만 하는 거였다. 드라마 <쌍갑 포차, jtbc> 속 월주 이모 대사는 이렇듯 한 방이 있다.


이 대사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나는 '닭강정'이 되자고 적었다. 습관처럼 열심을 내고 전력을 다하려고 하는 자신에게 '너는 한 숨 쉬어야 맛있는 아니,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꼭 한 숨 쉬어줘야 하는 닭강정이야'하고 주문을 외우며 힘의 발란스를 맞춰본다. 우습기는 하다. 그 덕에 한 번 웃고, 덕분에 힘을 푼다면 괜찮은 힘 빼기 팁이지 않은가 :)

매거진의 이전글 뚜렷한 형태의 마음이 아니더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