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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Sep 11. 2020

이번 생은 처음이라 : 대사 편 3

이 드라마에서 '19호실로 가다'라는 소설을 알게 되었다. 19호실. 타인이 없는 공간, 오롯이 자신을 쉴 수 있는 곳. 나 역시 작업실이라는 명목 하에 그런 공간을 원하고 있다.


함께 있으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함을 이해 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고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온다.


피치 못 할, 나 자신을 위한 거짓말이다. 이해받지 못하는 걸 설명하는 것보다 미친년이 되는 게 더 쉽다는 말. 지금 들어도 백번 공감한다.


이해시키는 일 역시 사랑이 필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구차해지고 싶지 않아 미친년이 되겠다는 수지 말도 이해 간다.

이해시킬 필요는 없지만 반대로 이해하려는 노력마저 하지 않았던 시간들도 잠시 스쳤다.


그러면서 만약 부인의 남편이 부인 말을 그 속에 담긴 진심을 들어주려던 사람이었다면 19호실을 이해시키려 노력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친년이 되는 건 모르는 사람한테만이 다. 나를 아는 사람은 내가 미친 짓을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나의아저씨 에서 내가 밉지 않냐고 물었던 지안에게 동훈은 "내가 너를 알아."라고 말했던 것처럼.


지켜주지 못했다는 상실감과 미안함에 사랑보다 집을 선택했던 세희의 짙은 상처는 따뜻한 말에 녹았다. 그리고 지난 연인이 들려준 조언으로 그는 마침내 표현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 준다.


드라마 <한 여름의 추억> 속 대사가 생각났다. "모두 다 내 지난 연애를 통해 배웠어요."


다만 말은 마음보다 언제나 늦으니, 서둘러야겠다.

솔직한 상구 씨는 순수하기까지 하다. 그의 말처럼 모난데 없이 평범하고도 화목하게 자랐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고 해서 그가 갖고 있는 순수함이나 밝음이 나쁜 것일 수는 없다.


다만 수지는 부담스러워서 부러워서 그리고 뾰족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더 날을 세웠다. 그녀가 자라온 세상은 한 번도 그녀에게 살갑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상구 씨 말처럼 내가 날을 세웠기에 날 선 사람들만 곁에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상구 씨처럼 다가와주는 사람마저도 밀어낸 걸 보면.


뾰족함이 버거울 때가 있지만 그 창이 무뎌질 수 있다면 내가 찔려도 다행이라는 상구 씨 말은 진심이다. 그러니 그가 수지에게 해주는 조언도 입바른, 바른말이 아니다.


덕분에 수지는 오랜 꿈을 이룬다. 결혼도, 부부도 잘 모른다. 다만 나는 서로가 함께해서 더 나은 상황이 되었으면 싶다. 마일리지를 나눠 쓰게 된 두 사람의 마지막도 그러해서 좋았다.


요즘 여러 곳에서 결혼 소식을 듣고 있다.


생애 처음 하는 결혼이라 안 그래도 서툰데 코로나 19라는 유례없는 상황을 만나 더더욱 혼란스러운가 보다. 하지 않을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두 걱정되는 마음이고 축하하고 싶은 마음임을 알지만, 정민(#이청아 분)의 말처럼 그 예쁜 것들도 얽히고설키니 어떤 모양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염려 속에 담긴 마음들을 보고 싶지만, 결혼이 정말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만 보는 듯하다. 정말 대단하고 무서운 일이다. 부부가 된다는 것.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로 온다는 것. 가족이 된다는 것.


모든 대사 하나, 하나가 주옥같다.


엄마 말은 옳다. 차곡차곡 행복한 기억을 쌓아 놔야지.

참 따뜻했던 대사다. 만, 앞 뒤로 너무 재미있게 풀어서 그런 분위기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은 드라마인 듯.

세희를 사랑한다고 깨달은 지호가 이혼을 선언하고 돌연 떠나는 게 과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간 동안 찾으려고 한 답이 명확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덕분에 로봇설 돌던 세희 씨가 어리광을 부리는데 귀엽고 설레 미쳐버리는 줄 알았네.

달라진 결혼관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거나 아예 비혼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만큼 일관된 주제로 설득력 있게 전한 작품이 없는 듯하다.


이런 시대에 사랑은 사치라며 그런 소비적인 감정보다는 집을 선택했던 지호는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있어 포기할 수 없는 게 다름 아닌 사랑임을 깨닫는다.


결혼이 신성한 게 아니라 사랑이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지호는 결혼의 역할을 사랑을 지키는 용도로 둔다. 세희도 이에 동의한다.


그리고 다른 누가 아닌 자신들만의 방법을 찾는다. 다시금 처음 사는 이번 생, 다른 사람에게 기준을 두지 말고 자신에 대해 고민하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진로도 사랑도 결혼도.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만큼 만났으면’, ‘사랑하니까’ 결혼을 선택한다.


동화는 주인공의 키스로 이야기가 끝나지만 현실은 키스 후부터가 진짜다. 괴테의 말처럼 결혼 생활은 그런 의미에서도 연애의 시작이다.


그러니 결혼식이 아닌 결혼에 대해 생각하라고 말해준다. 때마다 보면 좋을, 아주 좋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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