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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Sep 26. 2020

악의 꽃 :악의로 뒤덮인 곳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14년간 사랑해 온 남편이 피도 눈물도 없는 연쇄살인마로 의심된다면?’


드라마 소개는 딱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영화 소개 문구에서 본 듯 한,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연상시켰다. 거기다 연쇄살인마로 의심되는 남편을 둔 여자는 직업이 형사다. 한국 드라마 정서 장 주인공은 절대 범인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형사인 부인이 남편을 도와 의심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지. 대략의 스토리가 머릿속에 펼쳐졌다.


실제로 드라마는 내 예상과 비슷하게 흘러갔지만 정말 그렇기만 했다면 드라마 편성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적절한 타이밍에 살짝 방향을 튼다. 그리고 그 점이 잘 만든 드라마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이준기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안다. (이준기의   배역 이름이 스토리에 중요한 단서가   있어   명이 아닌 배우의 이름을 사용하여 글을 적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시청자로 하여금 그를 의심하면서 동시에 범인을 추리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추리물일수록 중요한 건 시청자와의 호흡이다. 작가만 알고 즐기는 이야기가 아닌 보는 사람도 범인을 찾을 수 있게 ‘적당한 ‘떡밥이 있어야 하고,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인물이 범인이 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적당한’ 뒤통수를 쳐줘야 하는데, 이 드라마는 그런 요소가 아주 잘 살아 있다.


사실 ‘악의 꽃’이 절반쯤 흘렀을 때 드라마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사실 볼 생각이 없었다. 첫 문단에서 말한 예측 때문에 흥미가 없었기때문다. 그래서 드라마 계정들로부터 맘 편히 스포를 당하고 있었는데, 매일 나와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과장님의 간곡한 권유로 뒤늦게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반전은 다 알고 보는데도 장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잘 짜인 극본 위에 제대로 일 할 줄 아는 연출이 만나 순간적으로 집중하게 만들었고 엔딩 직전에는 한 여름밤에 어울릴만한 공포감까지 조성했다. 그리고 엔딩은 이전에 볼 수 없던 엔딩이었다는 점에서 아주, 아주 멋진 드라마로 기억될 듯싶다.


가능한 리뷰 글을 쓸 때 스포를 방지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어딘가 두리뭉실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드라마를 보고 나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꼭 보시라는 이야기 :)




이 드라마를 추천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드라마 소개글을 보면 드라마의 장르를 ‘고밀도 감성 추적극’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추적과 감성은 어쩐지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마치 제목 속에 담긴 ‘악’이라는 단어와 ‘꽃’이라는 단어가 상반된 느낌을 주듯 말이다.


유정희 작가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천진난만하게 사랑만 하면 되는 여자’와 ‘지고지순한 기만’을 하는 남편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태에 놓인 부부를 떠올리며 “만약 죽는 순간까지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상대에게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그 삶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하는 재미난 물음에서 극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제목은 ‘샤를 보들레르’이 시집 ‘악의 꽃’에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악으로 뒤덮인 곳에서도 꽃은 피어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9/2자 마이데일리 김나리 기자 ‘악의 꽃: 유정희 작가가 직접 밝힌 제목 의미’ 인용 )


그래서 시집을 찾아 읽었다. 현대 시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내게 프랑스 낭만주의를 거친 시인의 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자연과 신앙심을 노래하는 듯 보였으나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전체적인 느낌에서 드라마를  접하며 가졌던 ‘상반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 ‘악’이라고 표현한 단어의 ‘Mal’는 라틴어 ‘malum’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통이나 불행의 원인, 번민 혹은 괴로움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를 보며 이준기의 삶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지원이 그 속에 핀 꽃이 된다는 것인가.


“결국 <악의 꽃>은 그가 살면서 겪었던 고뇌와 질병들이 꽃처럼 피어나 시로 승화된 것이며, 또 한편으로 그가 느낀 삶의 역경 그 자체를 표상한 것이다.” [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 해설 중 발췌]


시인은 자신이 겪은 불행한 성장기와 파리에서의 방황 모두를 그가 사랑하는 시라는 꽃으로 피어낸 것처럼 이유도 모른 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이준기도 그를 사랑하는 지원의 시선 속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된다. 이 드라마는 실상 이준기가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추적극이다. 그렇기에 스릴 넘치는 장면들을 보면서 나는 내 삶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리뷰가 되었을까. 글 솜씨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혹 이 글이 무슨 말인지 궁금하다면 다시 한번 권하지만, 드라마를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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