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을 위한 세 가지' more 1.
머리로는 나를 위로하는 말이란 걸 알았으나, 그 마음을 헤아려 반응할 만큼 에너지가 충분치 않았다.
결국 "네가 거기서 일해봐!"라는 말로 대화를 피했다.
회사를 옮긴 지 고작 3개월이 지났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 본부장님이 내게 일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기대하고 있다는 그 눈빛에 나는 정말로 보여주고 싶었다. 통통 튀는 아이디어와 이를 실행해 내는 능력 그리고 그 결과까지!
하지만 마음만큼 실력이 발휘되지 않았다. 조직 안에도 잘 녹아들지 못하고, 점점 위축되어가자 몸 이곳, 저곳이 아펐고 회사 가는 게 괴로워졌다. 생각해보면 바뀐 분위기와 업무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스스로를 다그치다 지쳐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만은 내 입으로 할 수 없었다. 고작 3개월 만에 그만둔다니... 자존심이 상했다. 마음에 우울이 쌓일 때면 사직서를 썼다. 정말 내일은 가서 말해야지, 말해야지 했는데 건네지 못 한 사직서가 서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얼굴빛이 점점 어두워지고 예전과 다르게 말수가 줄어드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걱정을 했다.
뭐가 그렇게 힘든지 물어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어디나 그렇다. 조금 더 지나면 적응될 거다. 그래도 1년은 버텨야 경력에 도움이 된다.
너는 운이 좋다,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 등.
나 역시 1년도 안 겪어보고 회사에 대해, 직무에 대해 나와 맞다 안 맞다 논하기 어려웠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도 힘들었지만, 설명한들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엇이라 말해도 합리적으로 퇴사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더더욱 입을 닫았다.
사람도 안 만나고, 그렇게 죽은 듯이 일 했다. 순종적인 타입이라 그런지 나는 1년이 되는 날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사를 했다. 팀장님은 아쉬워하셨지만 그래도 오래 버텼다면서 가라 가! 소리 한번 질러 주시고 보내주셨다.
오기로 버틴 1년이었다.
처음 하는 사회생활이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뭐든 잘해 낼 거란 나의 자만이 무너진 첫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뼈아픈 경험이 훗 날 다른 직장에 적응하는데 마음적 여유를 가져다준, 귀한 배움이 되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잘할 수 있을까? 결단코 아니다.
어느 시의 제목처럼 지금 깨달은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달라졌을 수 있지만, 죽은 듯이 간신히 버틴 그 1년을 경험하지 않은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달라질 건 없다. 또다시 울면서, 기면서 교만함을 깨트리는 배움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1년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돌아갈지언정 겪지 않고 뛰어넘을 시간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활 중 한 번은 겪을 성장의 시간이었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어린 나이에 이 성장통의 시간을 겪은 게 복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지금은 '버텨 보라'는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말에 그토록 발끈했던 내가,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 들어간 후배에게, 야근에 특근에 시달리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동생에게 우선 버텨 볼 순 없는지 묻고 있다.
그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그 '최소한 1년'이 일을 배우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어떤 곳인지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사회생활을 한 지 4년 만에 왔다. 오는 시기는 제각 기여도, 오지 않은 시간은 아니다. 한 번은 부딪히게 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야근하고 특근을 해도 퇴근하면서 술 한잔 마시며 회사, 상사 욕 할 수 있는 건강한 때에 겪어 놓으라고 농담 섞어 말한다. 그래도 당신이 버티는 시간이 그런 와중에도 행복하면 좋겠다.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사회초년생을 위한 세 가지"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싶어서 써봤습니다.
아마 세 가지였으니 두 편의 글이 더 나오겠죠.
나중에 늙어서 이 글을 보면 정말 웃길 것 같아요.
저때-뭘 안다고 이렇게 썼을까. 하고
그래도 그 순간들에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소중한 거라 여기며 적어 봅니다.
#2019년 12월에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