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보 Nov 11. 2020

버린다는 말  싫어.

경우의 수(JTBC, 2020)

지난 2주간 집을 치웠다. 처음 이 집에 이사 올 땐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 내 후년에 다시 큰 집으로 이사 가자, 그렇게 생각한 부모님은 튼튼한 원목으로 만든 큰 침대와 책장, 소파를 버리지 않다. 그렇게 십 년 동안 가구가 주인인 집에서 살았다. 자가도 아닌 전세 집을 그것도 십 년이나 살았으면서 갑자기 웬 대청소인가.


사실 작년 말, 이사를 하려고 집을 알아봤다. 하지만 너무 높게 뛴 집 값에 이사를 포기하고 전세 계약을 연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가장 열심히 집을 알아보던 사람이 언니였다. 언니는 주객 전도된 집을 몹시도 못 마땅해했다. 이사가 좌절된 마당에 코로나 19가 유행하면서 집에만 있게 되자, 뭐라도 해야 겠다 싶었나 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리모델링이다.


언니의 추진력이 이렇게 뛰어난 줄 몰랐다. 마음먹은 지 한 주 만에 친구 찬스로 가구 배치가 된 3D 도면을 보여줬다. 시뮬레이션과 견적 등 리모델링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펼친 뒤 부모님과 내게 비용을 받아갔다. 그렇게 부모님과 나는 뭐에 홀린 듯 리모델링 사전작업으로 대청소에 참여하고 있었다.


먼저 다락과 롱에서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은 상자들을 꺼냈다. 그중엔 초등학생 때부터 쓴 일기장과 주고받은 편지가 담긴 박스도 있었다. 이제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친구들의 증명사진이 꽤 많았다. 학생증을 바꾸면서 찍은 증명사진을 한 장씩 나눠가졌던 것 같다. 지금은 막역한 사이가 되어 반말을 하는 동생이 예의를 갖춰 존댓말로 쓴 편지도 있었다. 이런저런 추억에 빠져 있는데, 언니가 이럴 정신없다며 빨리빨리 버릴 건 버리라고 다그쳤다.


순간 섭섭했다. 십 년을, 아니 어떤 물건은 그보다 더 오래 나와 함께 했다. 물론 고장 나거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물건은 진작 분리해 버렸다. 하지만 그런 물건조차도 버리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정든 물건을 낡고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버려야 한다니, 미안했다. 자주 사용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물건도 있는데 그런 사정보다 현실적인 공간 문제만 강조하는 언니 말이 섭섭했다.


물론 안다. 버려야 한다는 걸. 언니도 수납공간에 맞춰 많은 물건을 버렸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동해야 하는 것 사이엔 언제나 큰 간극이 있고, 이번에도 그 간극은 매우 컸다. 고작 삼십여 년 살아온 내가 이 정도인데 육십 생을 산 엄마는 어떠할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간 우리 집은 버려야 한다, 버릴 수 없다는 실랑이로 시끄러웠다.


이수가 말했다. 버려졌으니까 새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게 아니겠냐고. 하지만 그건 버린 사람의 입장이 아닐까. 버려진 쪽은 다르지 않을까. 이수는 버리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사정을 따지고 보면 그도 이 말을 할 때 즘엔 버려진 쪽이었지만, 줄곧 버리는 사람이었던 이수였기에 그의 말에 반감부터 든 게 사실이다  그래도 버리는 쪽이든, 버려지는 쪽이든 그냥 ‘버린다’는 말 그 자체가 싫다. 그동안 우리 사이에 어떤 마음이 오고 갔는지 이제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등을 돌리는 것 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물건을 버릴 때마다 작별 인사를 했다. “고마웠어, 수고 많았어”. 언니 눈치를 봐야 했지만 추억이 짙게 묻은 물건을 버릴 땐 생각나는 이야기를 가족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지난 내 물건과 그 속에 담긴 추억과 이별을 했다. 그리고 언니에게 가, 엄마에게 조금 시간을 주라고 말했다. 물건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던 것들을 버린다는 건 어쩌면 엄마 인생 한 분기를 정리하는 일일지도 모르니,  잘 이별할 수 있도록 조금 기다려 주자고 말했다. 언니가 내 말을 이해했는지, 이 후로 버리라는 독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부엌에 쌓아 논 그릇과 컵, 작고 귀여운 소품들이 집 밖으로 나왔다. 엄마가 버려도 된다고 했다. 엄마는 내게 당신 마음 알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우리 가족을 떠난 물건 중 일부는 집 앞 나눔 센터로 보냈다. 그곳에서 깨끗하게 새 단장을 한 물건들은 또 다른 사용자를 만나 오래 쓰임 받을 것이다. 이수 말처럼 버려졌으니까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는 셈이다. 그래도 여전히 버린다는 표현은 싫다. 추억 하나, 이야기 하나 버리지 않고 마음을 담아 이별했으니, 버려진 물건이 아니다. 새로운 환경으로 ‘떠난’ 물건이다. 애정을 받아 ‘보내진’ 마음이다. 그렇기에 이 물건들이 다른 곳에서 가서도 내게 그랬듯 사랑받고, 새로운 추억을 예쁘게 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가족도 비어진 공간에 새로운 추억을 예쁘게 쌓아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속 관계가 엇나가고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