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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Nov 29. 2020

경험자가 놓치면 안 되는 질문

스타트업(tvN, 2020)

근래 시청한 드라마를 살펴보다 이런 장르명을 붙여 봤다. “청춘 성장물”

‘성장물’은 주인공의 성장이 이야기의  가장 핵심에 놓인 드라마나 소설 따위의 작품을 말한다. 과거에는 ‘학교 시리즈’ 같이 중고등학생이 성장물의 주인공이었다면, 요즘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사회에 나오는, 스물 중반 무렵의 청춘이 성장물의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청춘 성장물’이라는 장르명을 생각하게 되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SBS, 2020)에는 음대생 주인공들이 졸업 연주회를 준비하며 연주자로서의 삶을 고민하는 과정을 담았고,  <청춘 기록>( tvN, 2020)에는 사회 초년생인 주인공들이 사회에 나오면서 부딪히는 사회적 기준, 잣대를 이겨내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통해 성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요즘 방영 중인 <스타트업>은 한국의 시리콘 벨리에서 성공을 꿈꾸며 스타트업에 뛰어든 청춘들의 시작(START)과 성장(UP)을 그린 드라마다.


위 드라마 속 주인공들을 보면서 그 시절 내가 가졌던 고민의 흔적을 보았다. ‘이 길이 맞나, 잘하고 있나’ 하는 불안감. 하지만 청춘들은 만물이 푸른 봄철이란 단어 뜻처럼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난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 그들에게 ‘지도 없는 항해’는 두려움보다 설레는 모험인 셈이다. 이런 드라마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주인공들 곁에 이미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경험자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주인공들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멜 때마다 지혜를 나눠준 차영인 팀장이 있었다. 언제나 침착하게 좋은 안내자가 되어 준 차 팀장은 내게도 닮고 싶은 롤모델이 되었다. 물론 자신의 성공을 위해 실력은 좋으나, 경험이 적은 주인공을 이용하려는 박성재 과장 같은 사람도 등장한다. 차 팀장과 비슷한 역할로 <청춘 기록>에서는 사혜준을 돕던 이민재가 있었고, 사혜준을 시기해 길을 막으려던 이태수는 박성재 과장도 닮은 구석이 있다. 경험자들의 모습은 청춘들의 비해 꽤 다양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박성재 과장이나 이태수 같은 인물을 보면서 절대 악역이라 몰아세우며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그들도 자신의 비겁함에 한숨을 쉬었다. 전쟁 같은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선하고 옳은 선택만 하는 주인공들보다 내게는 조금 더 현실감 있었기 때문일지도. 무엇보다 이들도 경험자일 뿐 완성형 인간은 아니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치열한 도전 속에 직면하는 질문만큼 경험자들이 고군분투하며 부딪히는 질문이 내게 의미 있게 다가왔다.

처음 일의 목적이 대해 생각해본 인재<스타트업>

<스타트업> 속 인재는 양 아버지 원 대표의 전폭적인 지지로 단기간에 시장을 장악하고 성공한 젊은 대표다. 하지만 양 아버지의 변심으로 하루아침에 자신의 공을 전부 이붓 오빠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를 계기로 인재는 누구의 도움 없이 성공하기로 마음먹고, 창업하는 이들을 돕는 ‘샌드박스’에 지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투자 감각으로 억대 연봉을 받고 있는 투자자 한지평이 멘토로 있다. 두 사람은 앞서 말한, 경험자들이다. 세상이 얼마나 독하고, 자비롭지 않은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초반 인재는 달미를 견제하며 그녀가 선택을 내릴 때 혼란을 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악역인가, 박성수 과장 같은 존재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인재는 ‘샌드박스’에 들어와서도 가장 빨리 투자를 받고 수익성 있는 사업을 하며 자리를 잡지만, ‘왜’ 이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인재가 가진 경험은 대기업, 그녀의 양 아버지 회사에서 쌓은 경험이 전부다. 달미나 도산이처럼 거친 비포장 도로부터 시작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거나 틀렸다는 건 아니다. 또한 그녀의 경험이 이러한 이유로 평가절하되고, 그녀가 만든 결실이 무시되어서도 안 된다. 다만 모든 것이 준비된 링 위에서 싸움을 해 온 인재는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는지 생각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기업 경영의 목적은 당연히 이윤 창출에 있겠지만, 그건 경영학에서 정의한 목적이지, 그녀 스스로 찾은 방향성은 아니었다. ‘왜’라는 목적의식, 소명 같은 게 굳이 필요한 일일까? 하지만 그렇게 간과해버린 목적성으로 인해 그녀는 계란 테러를 받는다. 인재 회사가 개발한 무인경비 시스템으로 인해 해고당한 근로자가 찾아와 계란을 던진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자신의 방법에 처음 의문을 가진 지평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투자자 지평도 인재처럼 한 사건을 겪게 된다. 실력 좋은 투자자인 그의 결정에 누가 감히 이의 제기를 할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강한 확신으로 임했을 것이다. ‘내가 잘하고 있나,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걸까?’하는 질문은 경험 많은 지평보다 모든 게 낯선 도산과 달미에게 더 어울릴 것이다. 그러다 자신의 독설에 누군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물론 그 일의 모든 책임이 지평이에게 있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그도 인재처럼 경험자가 되었기에 놓친 질문이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생각이 깊어졌다. 경험자라고 해서 질투가 없고, 모든 상황에 답을 알아 여유로우며 관대하거나 하지 않다. 조금의 경험이 있지만, 눈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점은 이제 막 지도 없는 항해를 떠난 달미, 도산과 같다. 오히려 그 조금의 경험을 맹신하는 바람에 방심하게 되는 우를 범하 수 있다. 그러니 경험자가 되어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을 멈춰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어쩌면 잘 알지 못해 이리저리 부딪히며 온 몸으로 배우고 있는 도산과 달미, 시작하는 청춘은 앞서 걷고 있는 선배들이 부러울지 모른다. 그들은 안정적으로 보이고 때론 지혜로워 보이기까지 할 테니까. 하지만 앞에 놓인 이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고독하고 외롭게 걷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경험이 남긴 상처로 더 큰 두려움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청춘 드라마에서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이끌며 함께 나가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다행히 인재는 ‘왜’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다. 계란 테러 사건과 목적성을 갖고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눈길’ 서비스를 개발한 달미는 인재가 답을 찾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달미가 인재의 회사로 들어가면서 인재 컴퍼니가 개발해 온 감시 시스템은 감시 영역과 방법을 확장하는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 고용 유지 방법도 찾아간다. 그리고 지평은 자신의 독설을 잘 머금고 자란 삼산텍을 보며, 필요한 말일지라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이제껏 자신이 갖고 있던 투자에 대한 선입견도 극복하는 성장을 보인다. 앞서 말한, 경험자와 초심자들이 서로 어우러져 건강한 영향을 미치는, 바라던 모습이 그려진 듯했다.

인재가 자신의 소명을 찾고, 앞으로 나가아야 할 방향성을 얻은 장면

이젠 내가 그들의 질문을 이어받는다. 연말을 앞두고 벌려 놓은 여러 일들에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렇게 해도 괜찮은지’ 생각하며 한 발씩 내딛는 중이다. 부디 이 질문들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길에 좋은 등불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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