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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pr 10. 2021

고작 그 정도라 해도, 행복이야

나빌레라(tvN, 2021)

월요일을 앞둔 주일 밤은 정말이지 잠이 오지 않는다. 늦잠을 잔 까닭도 있겠지만 주말 동안 끊어 놓은 일에 대한 생각이 작동하면서 생기는 염려가 잠을 쫓는 듯하다. 금요일에 받은 폭탄을 안고 주말을 보내야 했던 언니는 심란함에 더욱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한 참을 뒤척이길래 걱정이 많은가, 마음이 쓰였는데 뜬금없이 "내일 회사 가서 커피 마셔야지. ‘하나둘 반’ 마실 거야. 아, 맛있겠다"  이러더라. 걱정하던 마음이 머쓱해졌지만 냉장고에 사다 놓은 단골집 커피를 떠올리니 나 역시 갑자기 행복해졌다. 월요일이 어서 왔으면 좋겠을 정도로. "그렇지. 그 집 커피 진짜 맛있지." 그렇게 우리는 누워서 입맛을 다셨다.


고작 커피 한 잔에 언니의 걱정이 전부 사라진건 아니다. 하지만 커피 한 잔이 걱정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킬 수 있다면 다행인 일이다. 그리고 이런 다행을 나는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이 별건가. 맛있는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으면 행복한 거지.


라고 말했지만 나는 얼마 전까지 '행복'과 '성취'를 혼돈했다. 무언가를 이뤄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좋아하는 것보단 할 수 있는 것에 매달렸고, 할 수 있는 것은 해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부담과 조급함이 따라다녔고 매일 숨이 가빠 올랐다.  성취하지 못한 것은 그 과정이 어떠했더라도 의미를 갖지 못했기에 내게 있어 행복은 매일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곰돌이 푸가 말하던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은 매일 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 쫓으며 자신을 괴롭히던 날 중 만난 어느 밤이었다. 홀로 깨어 있던 그 밤에 식탁에 앉아 일기를 썼다. 목적 없이 써 내려가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피곤하지도 괴롭지도 않은 그야말로 평온한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종종 혼자 깨어 밤을 맞는다. 노트북도, 아이패드도 아닌 종이에 글을 쓰고 낙서도 하며 멍을 때린다.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에 비 소리까지 들린다면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행복을 누리는 시간이다.


드라마 <나빌레라(2021, tvN)>


드라마 <나빌레라(2021, tvN)>는 꿈에 관한 이야기지만,  꿈을 찾는 과정에 '행복'이란 감정이 자주 등장한다. 덕출이 일흔이라는 나이에 발레를 배우려는 건 발레를 생각할 때 차오르는 행복 때문이다. 채록도 좋아하는 일이 간절해지자 힘들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그 과정 속에 놓인 작고 다양한 모습의 행복 덕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날아오르려 점프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두 사람처럼 행복을 발견하고 일상에서 누리는 건 아니다. 은호는 '언제 행복하냐'는 물음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은호는 좋은 고등학교, 유명한 대학교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을 하려 하는 소위 말해 인정받을 만한 코스를 걷고 있지만 그 시간 동안 행복하다 느낀 적이 없었다. 꿈과 함께 행복을 이뤄가는 두 사람을 보며 은호는 처음으로 누군가 설계해 놓은 또는 남들이 말하는 좋은 것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며 찾는 시간을 갖는다.


커피 한 잔이 주는 행복은 아주 작다. 한두 모금을 마신 뒤 차갑게 식어질 동안 일을 하느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좋은 날씨는 건물에 들어오는 순간 사실상 잊히기 마련이고, 너무 피곤한 날에는 좋아하는 늦은 밤 시간을 위해 깨어있을 순 없다. 하지만 채록의 대사처럼 내가 언제 행복한지는 나만이 알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은 행복과 아주 친밀하다. 그러니 자꾸 물어줘야 한다. 좋아하는 게 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드라마 <나빌레라(2021, tvN)>



가령 나는 맛있는 커피 한 잔, 좋아하는 책을 읽는 주말의 한 시간, 퇴근길에 걸어보는 산책로, 그 옆에 지나가는 강아지를 바라보는 순간에서도 입가에 미소가 걸리며 행복해진다. 아주 작은 행복의 감정이라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있다면 기억해두고 있다 자주 그 시간을 갖자.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루는 게 행복이라고 다를까. '행복이라는 게 그렇게 소소하고 구체적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발견한  행복을 일상에 콕콕 박아두자. 작은 행복을 발견했을 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큰 행복을 가져오고 누리게 해 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일은 자신을 아끼는 방법 중 하나가 되어줄 거라고도 믿는다.


행복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다. 많이 자주 행복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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