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은 덕출의 발레를 자신의 꿈처럼 응원한다. 덕출이 자신이 살아온 삶의 공로를 해남에게 돌렸던 일을 기억함으로 말이다. 이럴 때마다 떠오르는 #우리들의파리가생각나요 라는 책이 떠오른다. 자주 피드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내게 책 속 두 사람은 꽤나 이상적인 사이다.
"향안에게 예술가의 아내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하나의 직업과도 같았다. 프로페셔널하게 해내야 한다고 믿었다.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최대한의 노력을 함으로써 향안은 예술가의 아내로서 살기에 그치지 않고 주체적인 존재로 자신을 세웠다. 의미 있는 존재로 빛났다. 자기 자신으로서 당당히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모습 자체로 향안은 서울의 여자들에게 많은 것을 말했다. (p.133) "
화가인 남편 뒤에 있지 않고 그의 꿈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 향안의 모습에서 해남이 보였다. 해남은 덕출이 정신을 잃었을 때 그를 집이 아닌 발레 스튜디오로 데려갔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었어요?"라고 묻는다. 덕출의 꿈이 해남의 꿈이기도 했기에, 그가 가졌던 열심을 알았기에 그를 무용수로 존중했고 무대에 서지 못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때에도 직접 할 수 있도록 공연장으로 인도했다.
"붓을 든 것은 수화 혼자였지만 그림에는 함께인 생각이 담길 때가 많았다. 대화가 뜨거울 때는 물론 말이 없을 때조차 그들은 소통하고 있었고 따로 있는 순간에는 같은 것, 그림을 생각했다. 교감은 깊고 풍부했으며 쉼이 없었다. (P 96)"
'동림'이란 이름을 쓰던 그녀에게 김환기는 자신의 하오였던 '향안'이란 이름을 주었고, 두 사람은 부부이자 연인이자 예술적 동반자가 되었다. 해남과 덕출의 관계도 그렇다. 내조, 라는 피상적인 단어로 설명할 수 없다. 단순히 덕출을 돕는 것 이상이다. 해남과 덕출은 서로의 삶을 자신의 인생으로 사는 소울메이트이자 동역자였다. 그렇기에 덕출의 날아오름은 혼자만의 것이 아닌 해남의 날아오름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나빌레라가 남긴 감동은 더욱 짙었다.
아버지가 없어졌다는 소리에 성산은 아버지를 찾아 나섰고, 아주 먼 곳에서 홀로 있던 아버지를 발견한다. “아버지가 아무리 나이 들어도 아버지 저한테 큰 산이예요. 그거 절대 잊으시면 안 돼요. “
야구가 하고 싶었던 아들은 가난한 집에서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을 계속하겠다 말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자기 혼자 포기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밉기도 했지만, 맨날 지는 듯 살던 아버지에게도 꿈꾸는 발레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
사실 덕출도 비슷한 이야기를 채록에게 들려줬다. 그의 아버지도 자신들을 키우기 위해 포기한 무언가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고.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가, 딸이자 엄마가 되어가나 보다.
언제나 내게 산 같은 분. 나의 수비수.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일흔이 되어도 막막한 일 앞에 언제라도 부르게 되는 이름. 엄마 아버지... 기억을 잃어가는 시간 속에도 아들의 수비수라는 덕출의 응원은 마흔이 넘은 아들을 또 한 번 그라운드에 세우고, 승리투수가 되게 한다�
공연을 하루 앞둔 밤, 덕출은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아침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성산 아버지'를 외치는 여자는 누구인지, 여긴 어디인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낯선 아침이었다. 해남은 그런 덕출을 발레 스튜디오로 데려가 묻는다. "당신 뭐하던 사람이야?" 그리고 덕출은 천천히 자신이 발레 하는 사람임을 기억해 낸다.
잊히는 기억 속에도 그는 자신을 무용수로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은 그를 일흔의 연약한 노인이라 말할지 몰라도 그는 아니었다. 그도 한 때 늙은 몸뚱이로 추는 자신의 발레가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이 얼마나 발레를 사랑하는지 깨닫는다. 여전한 세상의 시선을 모르지 않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추는 발레를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올라선 무대다. 덕출만의 발레. 연약한 몸이지만 굳은 마음으로 추는 그의 발레는 포기하지 않던 그의 인생을 닮았다.
앞으로 그의 병은 더 심해지겠지만, 사라지는 기억 속에도 이 날은 자주 떠오를 것이다. 몸이 아픈, 나이가 든 '누구'로서가 아닌 그렇게 그와 가족들, 그의 주변에 그는 멋진 무용수로 기억될 것이란 사실이 눈물 나도록 마음을 벅차게 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무 말 못 하고 울기만 했네�
출근길에 ‘그래서 난 언제 행복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지금 하는 일은 적성과 맞지 않는 듯(7년 차가 할 소린 아닌 것 같지만). 언제 행복하게 일했는지는 힘들지 않게 떠올랐다. 다만 그 일을 다시 하기엔 겁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했다. 행복한 순간을 아는 나는 다행이다. 조그만 시작을 위해 뭐라도 해봐야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뒹굴거리고 있는데 엄마가 붓과 물감을 사야겠다고, 갑자기 이야기를 했다. 무엇을 할 때 행복했지 생각했봤는데 그림이었다고. 올 겨울엔 그림으로 불살라 봐야겠다고 하시는데 크게 웃었다. 불 살라 버린다는 표현이 엄마랑 안 어울려서도 웃었지만, 엄마도 하고 싶은걸 찾았다는 사실에 웃었다.
은호 말처럼 하루를 즐겁게,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일이 꿈이며 행복이다. 엄마랑 행복에 관해 생각해보는 시간도 즐거웠다. 행복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 줬던 #나빌레라 는 그래서 더욱 소중한 드라마로 기억될 듯싶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채록이 콩쿠르에 가면서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렇게 3년이 흐르는 동안 채록은 날아올라 유명한 발레리노가 된다. 덕출은 기억을 잃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지만 몸이 기억한다고 하지 않았나. 40년을 해온 집배원 일을 하듯 동네를 돌며 편지를 돌렸다. 그리고 눈 님이 오시길 기다렸다. 나이가 들면서 다시 좋아진 눈. 발레를 배우는 시간 동안, 행복한 시절 틈틈에 내리던 눈. 덕출이 기다리던 눈은 어쩌면 채록이었을지 모른다.
채록과 마주한 덕출이 그를 떠올리고 함께 나눈 발레 인사에 마음 가득 따뜻해졌다. 덕출의 몸에 기억되어 있는 또 하나의 삶의 모습은, 발레리노 무용수였기에. 채록뿐만 아니라 은호도, 호범도, 세종도 꿈을 찾았다. 첫째 아들 성산도 야구단에서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성산의 부인 애란도 상담 부서 팀장이 되었고, 성숙은 덕출의 집 근처로 이사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환자를 살리지 못 한 죄책감에 병원을 떠났던 성관은 덕출을 보며 의사를 필요하는 환자들 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덕출을 여전히 사랑하며 그를 지키는 해남까지
원작보다 훨씬 가득한 해피엔딩이어서 슬프지만 좋았다. 12회 내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