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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n 27. 2021

불행과 행운의 얼굴이 같다면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tvN, 2021)

어릴 때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불행을 오래 곁에 두고 자랐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 나는 행복해지는 걸 겁냈다. 내게 좋은 일이 생기면 안 좋은 일이 가족에게 생겼다. 이를테면 생일이나 입학, 졸업 같이 일 년에 한 번 혹은 몇 년을 텀으로 두고 축하받는 그런 날, 내가 주인공이 되는 날이면 내가 행복해하는 만큼 불행이 왔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라고 물으면 딱히 말할 만한 일은 없다. 그저 엄마와 아빠가 다퉜고, 언니가 내게 화를 냈으며, 졸업식 날 눈이 너무 많이 정말로 많이 와서 짜장면 한 그릇도 먹지 못 한 그런 일들이다. 물론 나의 타고난 망각력 덕에 불행했던 일들이 기억나지 않은 것 일수도 있지만, 이렇다 할 기억이 없다는 건 무슨 대단한 사건사고 같은 건 없었단 소리다.


지금 와서 깨달은 거지만, 그때 내가 느낀 불행들은 내가 행복해서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다툼은 당시 일상에 가까웠고, 부모님의 사이가 안 좋으니 집안 분위기가 좋을 리 없다. 그런 상황에서 고작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가 동생의 기분을 지켜주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저 어린 나는 좋은 기분에 둥실둥실 떠올랐기에  작은 소란에도 큰 낙하를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번 생각이 고정되니 성인이 되어서도 꽤 오랫동안 행복한 기분을 누리지 못했다. 그러면 행복이 떠날 것 같아서. 언제 불행이 올까 눈치만 봤다. 내가 행복해서 누군가 불행해진다면,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게 맞다 생각했고 그런 식의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혀 불행을 오랜 시간 곁에 두었다. 특별한 이유로 내가 불행을 곁에 둔 것이 아닌 것처럼, 이 생각이 잘 못 되었다는 걸 깨달은데도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흥진비래 고진감래’라는 말의 뜻을, 그러니까 산다는 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이었음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을 뿐이다.



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tvN, 2021)>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행운이라고 친절하게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때로 불행과 행운의 얼굴은 같고 나는 여전히 그 둘의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동경(박보영 분) 인생에 찾아온 행운은 불행 속에 있었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동경과 조카들을 위해 먼 곳에서 한 걸음에 날아온 쌍둥이 이모(우희진 분)는  남매에게 행운이었다. 행운이라는 성질 때문에 언제나 친절하게, 모두가 알아차리는 모양으로 나타날 거라 생각했지만, 행운은 드라마 속 대사처럼 항상 친절하게 찾아오는 건 않았다. 그래서 때로 행운을 불행이라 혼돈해 놓쳤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살아가다 보니 행복의 총량이 점점 커졌다. 무더운 날씨에 스치는 바람에 행복했고, 지금까지 몇 백번을 먹은 엄마의 김치찌개는 먹을 때마다 오장육부를 행복하게 했다. 초여름 밤의 공기는 찰나의 순간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으며, 지겨운 감이 없지 않지만 출근할 수 있는 회사가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어떤 특별한 날만 ‘행복’이  짠! 하고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자주 행복해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불행이 그에 맞게 커진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다투는 부모님을 보며, 지겹게 싸우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두 분이 한 편을 먹는다는 사실에 더 이상 두 분의 다툼이 불행이 되지 않았다. 아픈 엄마에게 찾아오는 위험한 고비를 넘길 때 ‘근래 내가 행복했던 적이 있었던가’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적도 있지만,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지혜가 우리 가족 안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사랑이 더 커졌기에 우린 그 시간을 감사해 하기 시작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날 동경을 찾아온 ‘멸망(서인국 분)’이라는 존재를 사랑해 버림으로 그녀가 불행을 행복으로 만든 것처럼, 어떠한 불행은 행운 혹은 행복으로 잡으면 그렇게 변하기도 했다.


행운과 불행의 모습이 같다면, 나는 앞으로도 두 얼굴을 구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셈이다. 모두 행운으로 잡으면 행복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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