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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ug 15. 2021

아직 끝나지 않은 오월의 이야기

<오월의 청춘> (2021, KBS)

역사가 스포라는 말이 있다.

통곡과 낭자한 피, 함성과 매운 연기로 가득했던 80년 5월의 광주. 우린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안다. 세드 길이 예상되는, 그날의 광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오월의 청춘>은 그래서 시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드라마를 다 본 지금은 한 번 즘은 꼭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명희(고민시 분)가 친구 수련(금새록 분)을 대신해 선자리에 나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수련은 대대로 광주지역을 주름잡고 있는 유지 집안의 외동딸로 유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그녀는 노동자의 권리를 부르짖으며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고 있었다. 그런 수련이 대공과장의 아들 희태(이도현 분)와 선을 본다는 건, 수련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수련은 명희를 자기 대신 선자리에 보낸다. 어디가 어설픈 명희의 모습에 희태는 그녀가 수련이 아님을 진작에 눈치챈다. 하지만 그도 좋아서 나온 자리가 아니었다. 엄마 밑에서 홀로 자라던 그의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빠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도 지켜야 할 게 있었기에 나온 선 자리였다. 어쩌면 수련이 아닌 명희를 만난 게 희태에겐 다행이었을지 모른다.


이런 시작은 로맨스 소설에 종종 등장한다. 거짓된 상황은 나중에 두 사람이 마음을 확인했을 때 갈등의 원인이 되지만, 그 갈등이 전화위복 되면서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로맨틱한 전개로 흐른다. 하지만 그런 해피엔딩을 기대하기엔 안타깝게도 역사가 스포다. 명희와 희태는 희태의 아버지 황기남(오만석 분)에 의해 시대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당한다. 죄 없는 사람들이 이유를 모르고 겪어야 했던 그 시절의 아픔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담겨 보였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희태와 명희는 자신보다 상대를 생각했고, 도망쳐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다친 이들을 치료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길거리에서 군인들에게 희롱당하는 여고생을 돕다 잡혀간 수찬은 혼자서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에 부끄럽고 무력함과 죄책감에 사로 잡혔으나, 무언가를 바꿀 순 없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은 있다는 동생 수련의 말을 듣고 의약품을 납품하던 자신의 공장 창고를 열었다. 무섭고 두려웠지만 시민들은 음식을 만들어 주변에 나누었고, 헌혈에 동참했으며, 아닌 일에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를 내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방법들로 해나갔다. 별 일 아닌 듯 보여도 그때는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지켜진 오늘의 평화다.


이제껏 광주의 5월을 소재로 한 영상들이 보통 그날에 집중되어 있거나, 주인공들이 사랑을 나누는 배경으로 쓰였다면 <오월의 청춘>은 천천히 그날로 다가간다. 평화로이 사랑을 이야기하던 80년 5월의 아름다운 일상이 변해가는 과정은 희태와 명희, 수련과 수찬의 이야기가 드라마 속 이야기 끝나지 않고 지금을 사는 내게까지 와닿게 하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느낄 수 있게 풀어낸 <오월의 청춘> 서사에 감사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41년이 흐른다. 80년 5월의 광주에서 있던 일은 이제 모두 끝났을까?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진 그렇다고 생각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기도 했고, 내게선 먼 일이라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 이후에 대해 그리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희태를 비롯 살아남은 이들에게 그때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다시 돌아오듯, 그날의 오월은 그들을 자꾸만 그때로 되돌려 놓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살아가는 이의 슬픔과 남겨진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드라마 <도깨비-쓸쓸하고 찬란하신> 속 대사가 떠오른다. 사랑받은 사실을 기억하기에 너무 오래 슬퍼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담담한 고백. 그 마음을 예쁘게 볼 수 있었던 건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는 다시 만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원치 않은 이별을 겪어야 했던 희태와 명희를 보며 나는 남겨진 자의 슬픔이 얼마나 크고 괴로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큰 사랑이어야 가능한 건지, 더 깊고 짙게 깨달았다.


원하지 않게 계속 그날의 오월 혹은 어느 계절과 시간으로 돌아가버리는 인생이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겐 아직 끝나지 않은 오월이고, 계절이고 시절일 테다. 그러니 이젠 그만해라, 괜찮다 말할 수 없고 나는 그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책임을 느낀다. 그리고 지금도 지구 어디에서는 지켜야 할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는, 아직 오월을 보내고 있을 그들을 생각한다. 이 글이 어느 정도 스포를 띄고 있지만, (어차피) 역사가 스포고, 직접 볼 때 각 자에게 전해질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오월의 청춘>을 조심스레 추천해본다(<오월의 청춘>은 웨이브에서 관람 가능).




<오월의 청춘> 은 총 12부작으로

연출 송민엽 극본 이강 원작 ‘오월의 달리기'

제작사 이야기 사냥꾼 방송사 KBS

이도현, 고민시, 이상이, 금새록, 오만석, 김원해, 엄효섭, 황영희, 심아영 등이 출연합니다.


본 원고는 wavve 리뷰단 활동의 일환으로 ‘웨이브(wavve)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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